“숨 쉬는 게 고통” 약값 부담에 치료 못하는 중증 천식
5가지 생물학적 제제 중 호산구성 천식 치료제 급여 빠져
‘싱케어’ 약평위 통과…“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
정부 “중증 천식 환자 신약 보장성 강화 위해 노력”
“밥 먹다가도, 자다가도 기침했어요. 기침이 시작되면 화장실에서든, 거실에서든 기침을 마저 하고 숨 돌린 후 움직이는 생활을 반복했죠. 사는 게, 숨 쉬는 게 고통이었어요.”
13일 전라도에 거주하는 김용진(70) 씨가 병으로 힘들었던 때를 회고하며 울컥했다. 김 씨는 중증 천식 환자다. 15년 전 새로 집을 구해 이사를 한 뒤 멈추지 않는 기침이 시작됐다. 처음엔 그저 오래 가는 감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2개월간 약을 먹어도 기침은 멎지 않았다. 대학병원을 찾은 김 씨는 천식 진단을 받았다.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호흡곤란이 오면 응급실에 실려가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흡입 약물을 쓰고, 독한 스테로이드제도 복용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천식에 좋다는 갖은 식이요법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침대맡, 소파 옆 탁자, 주방 찬장, 화장실 수납장 등 손닿는 곳 어디든 흡입제를 놔두었다.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하나” 김 씨는 덜컥 겁이 났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기침 때문에 주변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거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어요. 평범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부러울 지경이었죠. 집에서 전철역까지 1㎞ 정도인데, 남들은 10분 만에 걸어갈 거리를 저는 30분이 걸렸어요.”
힘든 나날을 버티던 중 김 씨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중증 천식 치료제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의 임상시험 대상자로 선정됐다. 또 글로벌 제약사인 제넨텍과 노바티스가 개발한 알레르기성 천식, 만성 특발성 두드러기 치료제인 ‘졸레어’(성분명 오말리주맙)에 대한 보험급여 혜택도 받게 됐다. 두 치료제를 투여한 후 김 씨의 상태는 날로 좋아졌다. 김 씨는 이 모든 게 “치료제 덕분”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상태가 좋아지니까 활기가 돌아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해외여행도 다녀왔어요. 다른 천식 환자들도 저처럼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통해 평범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김 씨의 바람처럼 중증 천식 환자들 모두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현실 속에서 그 날은 기약하기 어렵다. 알레르기성 천식 치료제는 급여화가 시행됐지만, 또 다른 형태인 호산구성 천식 치료제의 급여화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증 천식 환자들이 높은 의료비 등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조속히 효과 좋은 신약들을 급여화해 환자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산구성 천식 환자들 대부분 경제적 부담 감당 못해”
의료계에 따르면 천식은 폐 속 기관지가 예민해져 호흡곤란과 기침, 거친 숨소리 등의 증상을 반복적으로, 또 발작적으로 일으키는 질환이다. 감기와 천식의 증상은 비슷하지만, 대체로 천식에 따른 마른기침, 쌕쌕거리는 숨소리, 호흡곤란 등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천식은 만성적이고 재발이 잦은 질환에 속하지만, 꾸준한 진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으면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다만 중증 천식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천식 중에서도 발작성 호흡곤란을 동반하는 중증 천식은 흡입치료제 등 일반적인 치료요법을 이어가도 조절이 어렵다. 심한 호흡곤란이 일어나면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입원하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
천식은 크게 ‘알레르기성’과 ‘호산구성’으로 나뉜다. 김상헌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알레르기성 천식은 알레르기 기전 즉 면역글로불린E(IgE) 매개 반응이 주된 천식이다. 집먼지 진드기 등 흔한 흡입성 알레르기 원인물질에 대한 IgE 반응은 피부 시험이나 혈액 특이IgE 측정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IgE에 작용하는 항IgE 항체인 ‘오말리주맙’(Omalizumab)을 투여해 알레르기 기전을 조절할 수 있다.
반면 호산구성 천식의 경우 주로 제2형 염증 반응에 의한 호산구성 염증이 주된 기전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2형 염증에 관여하는 사이토카인인 인터루킨-5(IL-5), IL-4, IL-13 등의 작용을 차단하는 ‘메폴리주맙’(Mepolizumab), ‘레슬리주맙’(Reslizumab), ‘벤라리주맙’(Benralizumab), ‘두필루맙’(Dupilumab) 같은 생물학적 제제를 쓰면 염증 조절에 도움이 된다.
현재 국내에서 중증 천식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5가지의 생물학적 제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출시되는데, 문제는 알레르기성 천식 치료제인 오말리주맙에 한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호산구성 천식 치료에 사용되는 나머지 인터루킨 억제제의 약물(메폴리주맙·레슬리주맙·벤라리주맙·두필루맙)은 모두 비급여인 상태다.
김상헌 교수는 “생물학적 제제 중에서 항IgE 항체인 오말리주맙만 건강보험 급여가 인정되고 있다”며 “많은 호산구성 천식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약제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싱케어, 건보공단·제약사 약가협상 앞둬…“급여화 조속히 이뤄지길”
최근 호산구성 천식 환자들에게 빛이 보였다. 한독테바의 중증 천식 치료제 ‘싱케어’(성분명 레슬리주맙)가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은 지 6년 만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을 거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치기만 하면 된다.
김 교수는 싱케어의 약평위 통과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향후 싱케어의 보험급여가 이뤄지면 약제에 대한 호산구성 천식 환자들의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치료 옵션으로 권고할 수 있어 임상의사로서 급여화가 빨리 진행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증 천식 환자는 단순한 천식 환자가 아니다. 이들은 급성 악화로 인한 사망 위험이 크다. 입원 등 의료기관 이용, 높은 의료비 등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이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고가의 생물학적 제제가 하루빨리 급여화돼야 한다”며 “중증 천식을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해 산정특례 제도를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중증 천식 환자들이 고가의 생물학적 제제를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오창현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약평위 평가를 마친 약제는 건보공단이 제약사와 약가협상을 진행하게 된다”며 “임상적 유용성, 비용 효과성,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급여 적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약제도 순차적으로 심평원 평가를 마치면 건보공단과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중증 천식 환자들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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