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큰손' 30대]①"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사" 금리정점론에 마음 급해졌다
청약 당첨자 10명 중 6명 '30대 이하'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박모씨(31)는 최근 4억원대 경기도 부천의 구축 아파트를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해 매수했다. 월세로 살던 기존 아파트에 4년 정도 살 계획이었지만 마침 원하는 가격대의 매물이 나타나면서 1년 만에 이사를 결심한 것이다. 박 씨는 “올해 초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구매에 나섰다”며 “특례보금자리론이 체증식 상환방식이 가능하고 나중에 수수료 없이 다른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점도 장점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0)는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분양한 단지들에 빠짐없이 청약을 넣었다. 추첨제 물량이 늘어난 데다 중도금 대출 규제도 풀리면서 청약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고 생각해서다. 이 씨는 “분양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데 손을 놓고 있다가는 도저히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서울 내 분양하는 단지에는 무조건 청약을 넣고 ‘선당후곰’(선 당첨 후 고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30대 청년들이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30대는 올해 1~5월까지 아파트를 사들인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과 함께 특례보금자리론 신설 등으로 대출 여력이 확대되면서 적극적으로 급매물 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가점이 낮아 청약에서 소외됐지만, 추첨 물량이 늘어나는 등 청약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이들은 청약시장도 주도하고 있다.
부동산 급등기 ‘학습효과’…특례보금자리론에 대출 여력 늘어
한국부동산원의 매입자연령대별 아파트매매 거래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거래 신고 건수는 총 16만3815건으로, 이 가운데 30대 비중은 26.6%(4만3590건)를 차지했다. 이는 2019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1~5월 기준으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2019년 23.5%, 2020년 22.9%, 2021년 25.2%, 2022년 22.9% 등을 기록했다.
그동안 아파트 매매시장은 경제적으로 안정도가 높은 40대가 주도해 왔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아파트 매입자 연령대별 거래에서 30대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매년 1~5월 기준으로 40대 비중은 2019년 28.1%, 2020년 27.4%, 2021년 25.8%, 2022년 24.2% 등을 기록하며 30대보다 높게 조사됐다. 그러나 올해는 25.9%를 기록해 30대와 비교해 0.7%포인트 뒤처졌다.
서울에서 거래된 30대와 40대의 아파트 매입 비중은 전국 비중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올해 1~5월 서울 아파트 30대 매입 비중은 32.9%(전체 1만3373건 중 4397건)를 기록했지만, 40대는 27.8%(3716건)에 머물렀다. 특히 서울지역은 30대 아파트 매입 건수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5월 서울 아파트 거래 총 3711건 가운데 1286건을 30대가 사들였는데 이는 2021년 9월 1505건 이후 20개월 만에 최다치다.
30대들의 매수세가 늘어난 원인은 지난 부동산 급등기 이후의 학습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급등기 때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했던 이들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 올 초부터 쏟아진 급매물들을 적극적으로 매수했다는 것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지금의 30대는 부동산 급등기 5억원의 집이 10억원으로 급등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라며 “시장을 관망하던 30대들도 올 초부터 고점 대비 20~30% 하락한 7~8억원의 급매물은 상대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판단해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1월 말부터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도 30대들의 아파트 매수세에 불을 붙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 교수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득이 부족한 30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의 기준으로 대출 여력이 상당히 제한돼 왔었다”며 “올해 9억원 이하 주택을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낮은 고정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게 되면서 눈여겨보던 중저가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한 문턱이 대폭 낮아진 것도 매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맞춤형 대출규제 완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주택가격과 지역에 상관없이 일괄 80%로 높였다. 대출한도도 4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하면서 청년층의 내 집 마련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추첨제 확대에 저가점자 기회↑…"분양가 지금이 가장 싸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도 30대 이하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공개한 연령별 청약 당첨자 현황을 보면 올해 1~5월 새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 총 2만5525명 중 30대 이하가 1만4125명으로 비중이 55.3%에 이른다. 당첨자 10명 가운데 6명가량이 30대 이하인 셈이다.
이는 청약제도 개편으로 가점 중심 제도에서 소외됐던 젊은 층도 추첨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가 확대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정부가 규제지역을 대거 풀면서 투기과열지구 내 100% 가점제로만 공급되던 전용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의 추첨 물량이 최대 60%까지 늘어났다. 또 정부가 분양가에 상관없이 모든 주택에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전매제한 기간도 대폭 줄이면서 젊은 청약 수요자의 자금조달 부담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분양가격이 갈수록 오를 것이란 관측도 젊은 수요자들이 청약시장에 몰리는 이유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는 941만4000원으로 지난해 대비 10.11%, 전월 대비 1.38% 올랐다. 3.3㎡(평)당 3100만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전반적인 공사비가 오른 데다 금융비용 역시 급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자재비를 비롯한 각종 물가가 오르고 있어 분양가격이 지금보다 떨어질 가능성은 적다”면서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젊은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분양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청약 통장을 쓰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덩달아 청약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 주택시장이 거시경제 변수, 경기침체 등의 위험요인이 잠재된 만큼 집값 하락기, 금리 인상에도 버틸 수 있는지 충분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회복되고 있지만, 추가 상승 동력이 얼마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남아있다”며 “자신의 자금 역량을 충분히 살피고 과도한 대출을 이용한 주택 구매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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