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합차 계속 오간다"…文·트럼프 사진 뗀 인니 北대사관 분주
"매일 사람이 오가고 차도 드나듭니다. 바쁠 땐 수시로 정문이 열었다 닫혔다 해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인근에서 근무하는 현지인 A 씨는 13일 중앙일보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한눈에 보았을 땐 인공기만 나부끼며 적막한 모습이었지만 북한의 대(對)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의 중심부인 만큼 물밑에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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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 오가며 '분주'
주인도네시아북한대사관은 29개국의 외교 수장이 한 자리에 모이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최 장소인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로부터 차로 불과 6분 거리 도심 중심부에 있다. 대사관 맞은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수시로 사람과 버스가 다니고, 오토바이 무리가 쉴 새 없이 바로 앞 도로를 오갔다. 이날 이른 오전부터 대사관 정문을 드나드는 승합차도 눈에 띄었다.
북한대사관 인근 현지인들은 정문 옆 게시판에 걸린 사진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진에서 그의 조부인 고(故) 김일성 주석의 사진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실제 행인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게시판엔 '김일성, 북한의 영원한 수령'이라는 제목으로 김 주석이 백두산 천지에 오른 사진, 김 주석이 1958년 농부들과 농업 현안을 논의하는 사진, 1971년 섬유 공장을 현지 지도한 사진 등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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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따라 사진 교체
한때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가동됐을 때만 해도 북한대사관은 이 게시판에 남북,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사진을 전시했다. 그러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로 대화 시도가 실패로 끝난 뒤엔 당시 사진들은 한꺼번에 철거됐다. 그리고 이곳에는 최근까지 김정은이 현지 지도하는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 대사관 게시판 사진을 교체한 것에 대해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29주기 추모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김일성 혁명 업적을 게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추모 기간이 지난 뒤에는 다시 김정은의 사진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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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대표 이번에도 안광일
자카르타의 북한 대사관은 북한의 대 아세안 외교의 첨병(尖兵) 중 하나로 꼽힌다.
12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곳의 안광일 주아세안대표부 북한대사(주인도네시아 대사 겸직)는 지난 6일 아세안 회원국 대사가 다수 참석한 모임에서 한ㆍ미 연합훈련을 대놓고 비판하며 "아세안은 미국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안보 협의체인 ARF 개막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안 대사는 올해까지 4년 연속으로 북한 대표로 ARF에 참석했다. 13일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주재로 열리는 만찬 리셉션 행사장에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박진 외교부 장관과 조우는 없었다고 한다. 안 대사는 장관급 인사가 아닌 대사급이 머무르는 장소에만 잠시 자리하다 떠났다고 하는데, 14일 ARF 외교장관 회의에도 참석할 전망이다.
과거 여론전 무대로 활용
북한은 과거부터 ARF를 미국의 이른바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판하고 자국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무대로 활용해왔다. 2015년 ARF에선 아예 공식 기자회견장을 빌려 영어로 일문일답까지 하며 "제2의 한국전쟁"을 운운했고, 2016년에도 이용호 당시 외무상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처해 "핵실험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위협했다.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로 중국마저 등을 돌려 북한이 사실상 '왕따' 신세였던 2017년 ARF 때도 북한 대표단은 숙소에서 일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단 성명'을 서면으로 뿌리며 "핵 보유는 정정당당한 자위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남북, 북ㆍ미 대화 무드였던 2018년 ARF에서만 이례적으로 북ㆍ미 외교 장관끼리 조우했고 정상 간 친서 교환도 공개 석상에서 이뤄졌다. 이후 2019년부터 북한은 코로나 19 유행과 대외 관계 냉각의 여파로 본국에서 대표단을 파견하는 대신 주태국대사, 주아세안대사 등 현지에 이미 파견된 공관장을 ARF에 대표로 보냈다.
北 도발에 등 돌린 아세안
다만 아세안을 향한 북한의 외교 공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명분 없는 도발이 거듭되자 아세안 국가들마저 이번 ARF를 계기로 이례적인 수위의 표현을 사용해 북한을 규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얀마를 제외한 9개국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13일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진행 중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깊이 경악한다"며 "북한이 긴장을 완화하는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을 향해 "경악", "규탄" 등 표현을 쓴 건 전례 없는 수위라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에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나라들에게서 뼈아픈 이야기가 나오면 북한에게도 상당한 부담일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 관련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리는 등 그런 쪽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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