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 교과서 ‘기업가 정신’ 수록… 정부에 제안할 것”
박재완 경제교육단체협의회(경교협) 회장은 널리 알려진 ‘기획통(通)’이다. 학교(성균관대)에서는 기획조정처장을, 이명박정부의 청와대에서는 국정기획수석을,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화려한 이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획’이다. 박 회장의 직함은 경교협 회장 외에도 여러 개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자 올해부터 성균관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기재부 민간 자문기구인 중장기 전략위원회 6기 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난 박 회장은 기획통답게 통찰력 있는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현안에 매몰돼 근시안 사고에 갇혀선 안 된다. 한 세대 뒤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에 경교협의 2대 회장으로 3년 임기를 시작한 박 회장은 역점 사업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2025년 교과 과정 개편에 따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경제 교과서의 집필을 돕는 것이다. 박 회장은 “경제 교과서에 들어갈 만한 경제 개념 해설집과 교수·학습 자료집을 편찬하고 있다”면서 “새 교과서에는 한국을 단기간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이끈 기업의 역할과 기업가정신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수록하자는 의견을 정부에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교협은 이달 중으로 초안을 마련하고 연내 정부에 제안서를 보낼 예정이다. 둘째는 기재부에서 구축하고 있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을 위한 ‘디지털 도서관형 경제교육 플랫폼’ 제작·활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박 회장은 “기재부가 ‘경제배움e’ 플랫폼을 디지털 아카이브 수준으로 재단장하고 있는데, 경교협은 회원사 콘텐츠를 디지털화해 제공하려고 한다. 내년 중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또한 경교협은 경제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군 장병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군 제대 후 사회에 첫발을 딛는 장병에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에는 군 전체를 대상으로 본격화할 계획이다. 경교협의 아이디어에 국방부가 흔쾌히 동의했고 기재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뒷받침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경교협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교육은 학교 안 교육과 학교 밖의 교육으로 나뉜다. 경교협은 학교 밖 경제교육의 구심점이다. 연령·계층 등 경제교육 대상자별로 필요로 하는 욕구가 달라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선진국이 있나.
“미국은 수학·과학·국사 등과 함께 경제가 9개 핵심 과목이다. 대학 진학 이전에 필수 교과로 지정돼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경제교육협의회(CEE)가 중심에 있다. 영국은 단위 학교가 기업가 역량과 금융 문해력을 가르칠 것인지 결정한다. 자금연금청이 금융·경제교육을 주도한다.”
-챗GPT 등 인공지능(AI) 기술 진보가 경제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것 같은데.
“경제뿐 아니라 모든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서책형 교과서는 점차 디지털 교과서로 대체될 전망이다. 국·영·수 등 필수 교과목은 이미 디지털 전환 계획이 있다. 경제 교과서도 디지털 교과서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초기에 투자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겠지만, 궁극적으로 교육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교과서 보급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자산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 투자 광풍은 경제교육 관점에서 어떤가.
“수익률 편차가 큰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자산 증식이나 자산 관리는 중요하지만 불로소득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돈을 버는 행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잠재성장률을 잠식하며 다양한 경제적 문제를 양산한다.
“2019년 미국 소비자금융 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 가구의 순자산은 흑인 가구보다 8배였으나, 백인 1인 가구의 순자산은 흑인 유배우자 가구의 절반에 불과했다. 가족의 힘이 근로 유인, 저축 동기, 책임·자조의식 함양에 결정적이라는 방증이다. 가족 가치의 복원이 시급하다. 경제적 유인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중요성을 각인하는 교육과 캠페인을 병행해야 한다.”
-윤석열정부의 연금·노동·교육개혁 중 가장 시급한 건 뭔가.
“완급으로 따지면 연금개혁이고, 경중으로 따지면 셋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연금의 경우 수혜 계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손해를 보는 계층은 줄고 있다. 연금 혜택을 누리는 고령층이 두터워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개혁은 더 힘들어진다.”
-미·중 패권 다툼은 어디로 흘러가나.
“양측의 갈등은 문명국과 패권국, 자유민주 진영과 전체독재 진영,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대립 구도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분단국이자 자원빈국인 한국에 외교·안보·통상은 국력의 핵심 요소다. 당장 아픔이 있더라도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호주 등의 선진국과 연대 강화가 불가피하다.”
-한·중 관계를 바라보는 기업인의 우려가 크다.
“한·중 관계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근원적인 요인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인구 배당효과의 희석, 진입장벽, 낡은 규제, 제조업의 비교우위 퇴색과 서비스업 낙후 탓이 크다. 우리 제조업은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의 상용화가 저조해 공유·개방·융합을 촉진하는 혁신 생태계가 취약하다. 제조업을 대체할 부가가치가 높은 전문서비스업 육성이 절실하다. 광공업 생산 역량이 정체한 사이 중국의 추격이 거세졌고 중간재 수출도 급감한 것이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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