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J팝이 돌아왔다

2023. 7. 14.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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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90년대 말에 이어 유행 중인
일본 대중음악…동시대 감성
기반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어

얼마 전이었다. 나이 차가 좀 나는 동료가 노래 하나를 흥얼거렸다. “어? 그거 오오츠카 아이 ‘사쿠란보’ 아냐?” 그는 가수 이름까지는 모르고, 숏폼 플랫폼에서 챌린지를 하도 자주 봐서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외워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사쿠란보’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오오츠카 아이의 메가 히트곡으로 2003년 12월 17일 발매돼 2000년대 초반 일본 음악계를 강타한 노래였다. 호적을 꼼꼼히 파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동료가 갓 태어나 직립보행이 겨우 가능해졌을 즈음 발표된 곡이란 건 확실했다.

최근 일본 대중음악, 즉 J팝이 한국에서 다시 환영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띈다. 조짐은 수년 전부터 있었다. ‘사쿠란보’처럼 언제 누가 부른 곡인지도 모른 채 숏폼 챌린지로 사람들에게 친숙한 J팝이 탄생하는 사례가 해마다 늘어났다. 지난 7월 기준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밴드 요아소비의 ‘아이돌’이다. 인기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1기 오프닝 곡으로 발표된 노래는 J팝 특유의 짜릿한 멜로디와 속도감으로 사람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최애’라는, 아이돌 문화에 익숙한 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품어 본 단어 덕분에 K팝 아티스트와 팬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는 중이다.

유행의 바탕에 챌린지만 있는 건 아니다. 올 상반기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의 새 역사를 쓴 ‘더 퍼스트 슬램덩크’ 주제가인 텐피트(10-FEET)의 ‘제제로감’은 시원시원한 록 사운드에 목말라 있던 음악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지난 4월 영화와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기에 라이브 이벤트로 보답했던 이들은 15일 한국에서 첫 단독 내한 공연을 갖는다. 싱어송라이터 유우리의 ‘드라이 플라워’와 ‘베텔기우스’는 K팝 아이돌에서 유튜버까지 노래 커버 영상을 올리는 이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지 오래다. 국내 음원 사이트 멜론의 ‘톱 100’ 차트에서 10위권까지 오르며 화제를 모은 ‘나이트 댄서(NIGHT DANCER)’의 주인공 이마세는 기세를 몰아 얼마 전 첫 한국 쇼케이스를 열었다. 하이브에서 운영하는 팬 플랫폼 ‘위버스’에 커뮤니티를 오픈해 한국 팬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기도 하다.

J팝 유행은 나의 인생을 기준으로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국가 주도하에 이뤄지던 1990년대 말, 두 번째는 바로 지금이다. 25년 남짓한 시간을 두고 참 많은 것이 새삼스럽게 변했다 싶다. 90년대의 J팝은 이웃에 자리한 확실한 문화강국으로부터 흘러나온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음악의 양과 질, 잘 다져져 있는 인프라와 넓은 저변에 알면 알수록 놀라고 감탄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일본 음악시장의 큰 규모는 그러나 J팝의 든든한 자산인 동시에 성장의 걸림돌이 됐다. 본격적인 문화 개방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들어 시들해진 국내 J팝 수요는 좋게 말해 안정적이고, 나쁘게 말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외면이었다.

2023년은 다르다. 지금의 J팝 유행은 어디까지나 동시대 감성을 기반으로 한다. 요즘 J팝을 듣는 이들 가운데 일본 음악이라 J팝을 듣고, J팝만을 전문적으로 판다는 마니아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유튜브, 숏폼 플랫폼, SNS, 각종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한 음악 가운데 우연히 J팝을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J팝 인기의 중심에 선 후지이 가제, 요아소비, 이마세, 유우리 같은 이들이 모두 데뷔한 지 3∼4년이 갓 지난 신인 음악가라는 점이 대표적 증거다. 국가 우위나 역사 감정과 다른 곳에 만들어진 흐름 가운데 우리 세대 음악을 우리 방식대로 들려주는 이들이 동 세대와 호흡하는 과정 사이에 J팝 유행이 놓였다. 인터넷과 새로운 세대를 매개로 K팝이 세계에 스며들었듯, J팝 역시 한국의 지금에 그렇게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 시대의 흥미로운 변화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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