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베이비박스의 영웅, 생모

임성수 2023. 7. 14.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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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영아 유기·살해 사건 뉴스가 한국 사회를 가라앉게 만든 지난달 30일, 미국에서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됐다 입양된 '조이(Zoey)'의 이야기가 NBC 방송을 통해 전국에 전해졌다.

그들은 조이를 유기한 생모, 얼굴조차 알 수 없는 조이 생모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들은 조이 생모에게서 갓난아이를 유기한 무책임이 아니라 끝내 생명을 낳고 새길을 열어준 용기를 봤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오는 행동은 안락한 환경에 있는 생모가 양육과 유기 중 하나를 고르는 그런 편리한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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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사회부 차장


연이은 영아 유기·살해 사건 뉴스가 한국 사회를 가라앉게 만든 지난달 30일, 미국에서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됐다 입양된 ‘조이(Zoey)’의 이야기가 NBC 방송을 통해 전국에 전해졌다. 조이는 지난 1월 어느 새벽, 플로리다주 오캘라시의 한 소방서 베이비박스에 남겨졌다. 조이를 발견한 소방관과 그 아내는 입양 절차를 거쳐 4월 조이의 법적 부모가 됐다. 생방송에 출연한 양부모는 아이를 안고 감격했다. 예상 가능한 휴먼 스토리 속에 양부모와 방송 진행자들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들은 조이를 유기한 생모, 얼굴조차 알 수 없는 조이 생모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들은 “생모가 진짜 영웅”이라고 했다. 그들은 조이 생모에게서 갓난아이를 유기한 무책임이 아니라 끝내 생명을 낳고 새길을 열어준 용기를 봤다.

한국 사법제도 안에서 조이의 생모는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가 된다. 형법 제272조에는 영아 유기가 범죄로 규정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돼 있다. 베이비박스든 화장실이든 아이를 두고 오면 영아 유기다. 보도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유기한 혐의로 최근 10년간 재판받은 사건 17건 중 16건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이 중 1명만 실형을 받았고 나머지는 징역형의 집행·선고유예를 받았다. 집행유예가 많다는 건 법원도 점점 생모의 사정을 세밀히 살핀다는 방증이겠지만 여전히 범죄는 범죄다. 사회적 시선은 더 차갑다. 갓난아이를 두고 온 부모, 특히 생모는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무책임하게 낳았다”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플로리다뿐 아니라 미국 모든 주는 ‘안전한 피난처 법(Safe haven Law)’에 따라 신생아를 지정된 베이비박스에 맡길 수 있다. 안전한 장소에 아이를 두고 온다면 부모는 기소되지 않는다. 베이비박스는 병원이나 소방서 등에 설치돼 있다. 한국에도 베이비박스가 있지만 불법도 합법도 아닌 공간이다. 정부 기관이 아닌 주사랑공동체교회 등 몇몇 교회가 만든 작은 박스가 캄캄한 어둠 속에 놓인 생모들이 의지할 수 있는 등대가 됐다.

영아를 죽기까지 내버려 두는 유기나 방치엔 아동학대 못지않은 엄벌이 필요하다. 무방비 상태의 아이들이 그저 나쁜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게 놔둘 수는 없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그런 유기와 다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오는 행동은 안락한 환경에 있는 생모가 양육과 유기 중 하나를 고르는 그런 편리한 ‘선택’이 아니다. 10대 미혼모, 성범죄 피해자 등 제 삶조차 버거운 이들이 아이가 더 좋은 부모를 만나길 기도하며 찾게 되는 벼랑 끝의 선택이다. 그것조차 ‘내다 버림’이라고, 생모는 그저 범죄자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는 일이다.

출산한 부모가 양육까지 책임지는 사회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 사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사는 곳은 그렇지 않다. 언제 그런 사회가 올지 알 수도 없다. 세상엔 수많은 사연의 출산이 있고, 그 많은 출산 뒤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처연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베이비박스 유기는 비극을 막는 마지막 선택이고, 그 선택은 때로 영웅적일 수 있다.

조이의 소식을 전한 유튜브 영상은 220만명이 시청했다. 50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다수는 생모를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가장 많은 7000여개의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옳은 행동을 한 조이의 생물학적 엄마(the biological mom)에게 신의 축복이 있길 빈다”는 격려였다. 베이비박스를 제도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 ‘보호출산제’가 논의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떤 출산’이라도 보호하려는 따뜻한 눈길일 것이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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