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중국의 허세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있어
보복 학습효과에 해법 마련
자국 경기 대응도 못하면서
으름장을 놓는 건 허세일 뿐
시진핑 리스크 반성 없이
중국 리더십 세우기는 불가능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기로 한 시점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계속 중국을 배제한다면 원재료 공급을 끊겠다는 의미다. 통신·군사 장비용 반도체에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 공급량의 각각 94%, 83%가 중국에서 나온다. 막강한 지배력에 세계가 바짝 긴장해 대응을 서둘러야 할 터다. 그런데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싱가포르국립대 총자란 정치학 교수는 “시장과 기업은 초기 약간의 충격을 받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된다”고 쿨하게 말했다.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애나 애슈턴 연구원은 “중국이 수출을 제재하면 시장 지배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에도 부메랑이 된다는 뜻이다. 중국 광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과거처럼 호들갑스럽지 않다. 미국 정부 공식 반응은 수출 통제 발표 나흘 뒤(7일)에야 나왔다. 그것도 국무부나 상무부가 아닌 국방부발이다. “게르마늄은 전략 비축량이 있지만 갈륨 재고는 없다. 이들 광물의 채굴과 가공을 늘리기 위해 적극 조치하고 있다.” 중국이 꺼낸 회심의 카드에 대한 답변치고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한다. 뉴스 관심도도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한참 떨어진다.
중국의 위협에 세계는 왜 이리 차분할까. 우선 학습효과다. 중국은 외교 사안이 발생할 때 툭하면 경제 분야 보복에 나섰다. 2010년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 금지, 2016년 대만 관광 제한 및 대한국 사드 보복, 2020년 호주산 물품 금수가 대표적이다. 동시에 이에 대한 노하우도 쌓여갔다. 수출입선 다변화, 판로 확충, 신제품 개발 등이 해법 매뉴얼로 각국에 전수됐다.
더 큰 이유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짚어줬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을 독재자라 불렀다. 발언 여파에 바이든 대통령은 “걱정 마라. 중국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China has real economic difficulties)”고 했다. 경제가 휘청이는 판에 무슨 대응을 하겠냐는 거다.
중국은 코로나 이후 ‘리오프닝(활동 재개)’ 효과를 보기는커녕 디플레이션(경기 부진 속 물가 하락) 위기 앞에 놓여 있다. 1년 반 새 기준금리를 3차례 내렸으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은 2년4개월, 생산자물가 상승률(-5.4%)은 7년6개월 만에 최저다. 중국인 식탁에 빠지지 않는 돼지고기 값이 7.2%나 떨어질 정도로 소비심리가 냉각됐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월 기준선(50)을 밑돌았고 6월 수출은 12.4%나 줄었다. 5월 청년 실업률은 20.8%로 사상 최고였다. 고용 문제는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다는 내부 경고도 나왔다. 지방정부 부채가 지난 4월 37조 위안(약 6640조원)으로 4년 만에 60% 늘어 경기 부양 여력도 부족하다. 위안화 가치는 이달 달러당 7.23위안대까지 떨어져 지난해 15년 만의 최저 수준인 7.3위안에 근접했다. 아무리 기준금리를 올려도 경기가 뜨거운 미국 경제와 천지 차이다. 그럼에도 타국에 “나 건드리면 가만 안 둬”라고 큰소리친다. 세계는 이를 위협이 아닌 허세로 본다.
중국 영향력이 추락하고 신뢰를 잃은 것은 시진핑 리스크의 자업자득이다. 코로나 이후 시진핑 정권의 영토 문제에 대한 강경책, 자의적이고 강압적인 경제 정책 운용, 제국주의식 외교 행태가 국내외적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전 세계의 중국 비호감도가 70%(지난해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달한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 대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와 반목을 일삼아 미국이 (가치)동맹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줬다. 대중 견제는 시 주석의 공이 크다”고 꼬집었다. 14억 시장을 의식해 많은 나라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겉으로는 공을 들여도 뒤로는 생산기지를 옮기느라 분주하다. 현대차그룹은 사드 보복 이후 탈중국에 나선 뒤 글로벌 완성차 업계 순위를 5위에서 3위로 끌어올렸다.
문제점에 답이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웃에 더 우호적이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전랑(늑대)외교에 묻힌 중국의 ‘구동존이(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정신 회복이 필요하다. 중국의 허세가 통할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반성하지 않으면 시간은 더 이상 중국 편이 아니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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