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
50대 일본 공무원 A씨는 신체상으론 남성이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을 여성이라 느꼈고, 1999년 ‘성 정체성 장애(실제 성별과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이 다름)’ 진단을 받았다. 건강 문제로 성전환 수술을 하지 못해 서류상 성별은 그대로 두고 여성 호르몬 투여만 받았다. 2009년엔 자신이 일하는 경제산업성에 “여성으로 일하고 싶다”고 요청해 여성 복장으로 출근하는 것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A씨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하면 그를 아는 이용자들이 불편할 수 있으니 2층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여성 화장실만 이용하라고 했다. 이런 조치는 정당할까.
지난 11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정부 기관이 트렌스젠더 직원의 여성 화장실 사용을 제한한 것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A씨가 자유로운 화장실 사용을 침해당했다며 정부 인사원(한국의 인사혁신처에 해당)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 2013년.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고 1심은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중요한 법적 이익”이라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다른 직원들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이번 최종심에서 재판관 전원 합의로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은 것이다.
최고재판소 판결문은 변화하는 일본 사회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당사자가 스스로 인지하는 성에 어울리는 취급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하고 절실한 욕구”이며 “원고의 화장실 사용을 제한한 것은 다른 직원들을 지나치게 배려해 원고의 불이익을 경시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A씨의 화장실 이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직원 설명회에서 반대 의견이 없었음에도 직장에선 ‘누군가 불편해할지 모른다’며 화장실 이용을 제한했다. 그리고 수년간 이 조치를 재검토하지 않았다. 성적 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음에도 공공기관인 경제산업성이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고 진지하게 조정할 책무”를 방기했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은 지난달 일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등 이해증진법안’이 국회를 통과된 후 처음 나온 것이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도 여러 반대 목소리가 있었지만 주요 7개국(G7) 멤버인 일본도 ‘선진국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며 법안이 성립됐다. 어떤 측면에선 한국보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는 ‘소수자 인권 보호’ 문제에선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이영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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