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언니처럼, 동생도 우승 시동
신인 고지원(19)이 13일 제주시 더시에나 골프장에서 개막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에버콜라겐·더시에나 퀸즈크라운 1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를 쳐 단독 선두에 올랐다. 이정민이 5언더파로 2위다.
고지원은 올시즌 톱 10에 입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최근 3개 대회에서도 연속 컷 탈락하는 등 부진했지만, 이날은 고향인 제주에서 모처럼 실력 발휘를 했다. 고지원은 “땡볕 아래서 퍼트 연습을 한 덕을 봤다”고 했다.
언니 덕도 있다. 고지원의 언니인 고지우(21)는 2주 전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고지원보다 두 살 많은 언니 고지우는 지난해 KLPGA투어에 데뷔했다. 고지원은 “언니 우승에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동안 우승하고 싶었지만, 언니가 우승하는 것을 보니 더욱 열정이 불타올랐다”고 말했다.
자매가 함께 골프를 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언니 고지우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다. 고지우가 골프를 시작하게 되면서 부모님이 동생 고지원에게 “언니가 낯을 가리니 연습장에서 적응할 때까지 가서 말동무를 해주라”고 했던 것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언니를 따라 고지원도 골프 클럽을 손에 쥐게 됐고, 그는 곧 운동 소질을 발휘했다.
언니 고지우는 지난해 유해란과 함께 KLPGA 투어에서 가장 많은 버디를 잡은 선수다. 그래서 ‘버디 폭격기’라는 별명이 있다. 매우 공격적으로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다. 2주 전 우승할 때도 경사지에서 숲을 넘겨 핀을 노리고 직접 샷을 해 갤러리를 놀라게 했다. 고지원은 “나 같으면 좋은 곳으로 빼낸 뒤 안전하게 마무리해서 파 세이브를 노렸을 텐데 언니는 다르다. 나는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하는데 언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그게 참 멋지다”고 말했다. 언니 고지우는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동생 고지원은 노래방이나 영화관에 가서 푼다고 했다.
자매는 우애가 유난히 깊다. 어릴 적엔 언니가 운동을 시작할 때 동생이 지켜줬지만, 올해는 1부 투어에 올라온 동생을 언니가 이끌어준다. 고지우는 “예전부터 동생과 1부 투어에서 함께 뛰는 게 소원이었다. 올해 그 꿈을 이뤘다. 동생도 곧 우승했으면 좋겠다. 지원이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스윙이 좋다. 교과서 같다”고 칭찬했다.
고지원은 “부모님이 맞벌이셨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언니와 24시간 붙어 다녔다. 전지훈련도 부모님 없이 우리 둘이 같다. 언니가 나를 많이 챙겨줬다”며 “언니가 우승한 뒤 둘이 서로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제주 고(高)씨 여성 중엔 유명한 골퍼가 많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과 전 1위 리디아 고, 한국과 일본에서 23승을 거둔 고우순 등이다. 탐라국 개국 설화에 따르면 고씨 시조 고을나는 한라산의 삼성혈 또는 모흥혈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혈(穴), 그러니까 홀에서 태어난 제주 고씨는 ‘골프 고’씨라는 농담도 나온다. 고지원은 “우리 자매도 거기에 낀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올해 KLPGA투어에는 걸출한 신인이 많다. 고지원은 “특급 루키 3인방이라는 방신실·황유민·김민별과 친하다. 그들의 우승은 언니의 우승 못지않게 자극을 준다. 특급 루키 4인방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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