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일 외교 수장, 1년만의 만남…오염수 동상이몽

박현주 2023. 7. 1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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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ㆍ중ㆍ일) 회의에서 한ㆍ중ㆍ일 외교 수장이 1년 만에 마주 앉았다. 3국 외교장관은 아세안 및 3국 협력 강화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중국과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선 이날도 각을 세웠다.
박진 외교부 장관(가운데)와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화면 왼쪽),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화면 오른쪽)이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회의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 EPA. 연합뉴스.


공개 석상서 '3국 협력' 강조


이날 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아세안+3의 '3'에 해당하는 한ㆍ중ㆍ일의 협력에 새로운 활기와 동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기 있는 나의 두 친구(왕 위원과 하야시 외상)과 긴밀히 소통하고 올해 연말 3국 정상회의 재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날 회의에 앞서 하야시 외상과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왕 위원과는 손을 맞잡고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박 장관은 또 "한ㆍ아세안 연대구상(KASI)에 따라 한국은 아세안+3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데 헌신할 준비가 돼있고, 이는 아세안 중심성을 비롯해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에 기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ㆍ아세안 연대구상'(KASI)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한ㆍ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발표한 구상이고,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은 2019년 아세안 정상들이 인도네시아 주도로 제시한 구상이다. 정부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과정에서 KASI와 AOIP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이어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은 "국제사회가 역사적인 기로에 서있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성장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법치주의에 기반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를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역내 금융망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등 경제 협력 강화, 코로나19로부터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식량 안보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아세안에 하는 기여를 조목조목 짚기도 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이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 다음 발언한 왕이(王毅)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은 "동아시아 3국은 역내 주요국으로서 공동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를 강화하고 경제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인적 교류 강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ㆍ중ㆍ일 3국을 포함한 전 세계 29개국 외교 수장들은 이날부터 14일까지 이틀 동안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세안 관련 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여한다. 한ㆍ중ㆍ일 외교장관이 같은 자리에서 마주 앉은 건 지난해 아세안+3 회의 이후 이날이 처음이다.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이 1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비공개 회의선 '긴장감'도


3국 외교장관이 공개 석상에선 서로에 대한 껄끄러운 발언을 아꼈지만 비공개 회의에선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제기됐다. 왕 위원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우려를 제기했고, 이에 하야시 외상이 "국제 기준과 관례에 부합하게 이웃 국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방류를 하겠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해서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둘러싼 중ㆍ일 간 공방의 수위는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선 "중국이 14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보다 굵직한 회의를 앞두고 오염수 문제에 대한 발언을 이날은 일단 아낀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한국과 일본이 올해 들어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 등 과거사 문제 극복에 나서고 빠르게 밀착하는 반면, 중국은 최근 한ㆍ일 양국과 각각 외교적으로 갈등을 빚어온 측면이 있다.

한ㆍ중 간에는 지난달 8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소위 '베팅' 발언을 한 이후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앞서 대만 해협 문제를 놓고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하면서 중국이 크게 반발한 바 있다. 다만 지난 4일 중국 외교부에서 한ㆍ중 차관급 회담이 열리는 등 최근 고위급 소통의 불씨가 살아났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 외교장관회의에서 아세안 외교 정상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뉴스1.


北 '단호·단합' 대응 주문


이날 박 장관은 일본, 인도, 호주와 양자 회담 및 한ㆍ아세안 외교장관회담, 아세안+3 외교장관회담, 인도네시아 주최 리셉션 만찬 등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전날 북한의 ICBM급 중대 도발이 있었던 만큼 박 장관이 매 회담 계기에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을 주문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박 장관은 이번 회의 일정 중 왕 위원과도 별도 회담 일정을 조율했다. 원래 박 장관의 카운터파트인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이 건강을 이유로 ARF에 오지 못하자 친 부장보다 급이 높은 왕 위원이 이번 회의에 대신 참석했다. 중국 외교라인의 사실상 1인자인 왕 위원의 카운터파트는 원래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다. 왕 위원은 외교부장 시절이었던 지난해 8월 중국 칭다오에서 박 장관과 대면 회담을 한 적 있다.

자카르타=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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