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못 갚는 자영업자 갈수록 늘어나…‘자영업 4.0 시대’ 적응 못하면 도태
1033조7000억원.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대출 규모다. 한국은행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4분기 1019조8000억원에서 올 1분기 1033조7000억원으로 3개월 새 13조9000억원 불었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특히 저소득 자영업자 경영난이 심각하다. 소득 하위 30%인 저소득층 자영업자의 2금융권 대출 규모가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저소득 자영업자의 은행 대출 잔액은 1분기 말 기준 72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67% 증가했다. 은행권에서 밀려난 영세 자영업자들이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2금융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향후 대출 금리가 0.25%포인트 상승할 경우 전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1조8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한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펴내면서 올해 말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 위험률(5영업일 이상 연체, 세금 체납자 대출 비율)이 3.1%까지 상승할 수 있고, 이 중 취약차주(저소득, 저신용 다중채무자)의 연체 위험률은 18.5%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칫 자영업자 대출이 금융권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저금리 분할 상환 대출 등을 통해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얼마나 실효성을 낼지는 미지수다.
자영업자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생존 경쟁에서 이길 돌파구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 ‘기업가형 소상공인’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가형 소상공인이란 기업가 정신과 장인 정신을 갖추고 창의적 사업 모델을 통해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상공인을 의미한다.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일찌감치 기업가형 소상공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원래 ‘맘앤팝스토어(Mom-and-Pop Store)’가 유행했다. 맘앤팝스토어란 ‘엄마 아빠의 가게’라는 뜻으로 은퇴한 중년 세대가 운영하는 평범한 소상공인 가게를 의미한다.
하지만 1990년대 경기 침체를 맞아 미국 자영업 시장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대거 회사를 떠나면서 너도나도 소상공인으로 변신했다. 이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기업에서의 마케팅, 재무 분야 경력을 살려 전문적으로 가게를 경영하면서 다점포 확장, 기업화에 속도를 내왔다. 한 분야의 가게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가게를 경영하면서 ‘메가 프랜차이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눈여겨본 한국 정부도 자영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을 위해 창업-성장-도약 등 성장 단계별로 지원하기로 했다.
창업 단계에서는 올해 개방형 창업 공간인 ‘소상공인 혁신 허브’를 구축해 지원한다. 성장 단계에서는 강한 소상공인, 로컬크리에이터 등 유망 소상공인을 선정해 사업화 자금을 집중 지원한다. 유망 프랜차이즈를 매년 25개 육성하고 2027년까지 ‘백년가게’ 1750개도 발굴할 계획이다. 도약 단계에서는 ‘우리동네 펀딩’ ‘매칭융자’ 등 소상공인에 적합한 투자 제도를 신설해 민간 자금이 유입되도록 투자 환경을 조성한다. 여기에 필요한 성장 기반 자금은 올해 1조2000억원가량 투자할 예정이다.
정리해보면 소상공인에게도 벤처캐피털 같은 모험 자본 투입을 적극 권장해 전국권 로컬 크리에이터로, 나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소상공인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육성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기업가형 소상공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자영업 시장 패러다임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자영업 시장은 크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직자가 대거 자영업 시장으로 유입, 자영업자가 2~3년 만에 100만명가량 급증했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난립했고, 경기 침체로 상권의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며 ‘핫플레이스’가 잇따라 등장했다.
자영업자 대출 1033조 사상 최대
그전에는 모든 상권이 활황이었다면, 이후 골목 상권이 지고 서울 강남, 명동, 홍대 등 소위 ‘잘나가는’ 인기 지역으로만 돈이 몰렸다. 뜨는 상권과 입지에서 뜨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면 대박 나는 성공 방정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노동 집약’ 산업이었던 자영업 1.0에서 ‘자본 집약’ 산업인 자영업 2.0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러 대한민국 자영업은 3.0 시대로 접어들었다. 배달 앱, SNS 등 온라인 마케팅 트렌드를 못 따라가면 살아남을 수 없는 ‘기술 집약’ 산업으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자영업 관련 기술도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스레 쓰는 수준으로 흔해졌다. 누구나 쓰는 배달 앱, SNS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에 이제 충분치 않다. 바야흐로 자영업이 ‘종합예술’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고객 오감을 만족시켜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다. 미각, 후각 등 전통적인 외식 서비스 외에도 시각, 청각, 촉각을 자극하는 창의성 넘치는 공간이 돼야 고객의 발길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이종 업태를 포함한 다양하고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창의성이 필수가 됐다. 바야흐로 ‘창의 집약’ 또는 ‘네트워크 집약’ 산업이 된, 자영업 4.0 시대의 도래다.
이전 버전 자영업자들이 그랬듯, 4.0 시대에 적응 못한 3.0 자영업자는 자칫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조언이다.
자영업 4.0을 보여주는 사례는 꽤 많다. 인기 프랜차이즈 ‘달래해장’은 서울 삼각지 맛집 ‘몽탄’ 사장과 신논현 맛집 ‘혜장국’ 사장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새 브랜드다. ‘외식업 인싸’들의 협업은 새로운 흥행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받은 코자차의 최유강 셰프는 신라호텔 출신의 친한 셰프와 동업으로 창업한 지 불과 2년 만에 별을 따냈다. 여기에는 김기영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의 기획이 한몫했다. 김기영 교수는 ‘브랜드가 아닌 소비자’ 타이틀로 성공한 이마트 노브랜드를 브랜딩한 인물이다.
한 프랜차이즈 대표는 연간 수백만원씩 받고 전국에서 수백 명의 다점포 점주를 컨설팅하고 있다. 이들은 대표에게 컨설팅만 받는 게 아니고 서로 인맥을 공유받는다. 그리고 수시로 만나 세미나를 하고 좋은 강의를 추천하며 서로 투자, 동업도 한다. 사실 그들 한 명 한 명도 다른 외식업자를 컨설팅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맛집 사장들이다. 한 맛집 점주는 “매달 매출의 3%를 ‘공부’에 쓴다. 여기에는 네트워킹 비용도 포함돼 있는데 적잖은 부담이지만 치열한 자영업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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