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재고 리스크, 어떡하라고…‘곰표밀맥주 사태’로 본 ‘상표권 분쟁’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3. 7. 1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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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가장 성공한 컬래버레이션 사례라고 평가받던 ‘곰표밀맥주’가 진흙탕 싸움에 휘말렸다. 상표권자인 대한제분이, 기존 제조사인 세븐브로이맥주와 계약 종료 후 새 협력사 제주맥주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세븐브로이는 핵심 기술인 ‘맥주 레시피’를 갈취당했고 유사 신제품 탓에 재고 소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대한제분은 정상적인 계약 종료며 레시피 도용도 없었다며 맞서고 있다.

상표권 분쟁은 비단 곰표밀맥주만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 곰표밀맥주 성공 이후 업종 불문 컬래버레이션이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표권 계약 기간이 통상 3년에서 5년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표권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해서 터져 나올 수 있다. 컬래버레이션을 준비 중인 기업 입장에서도 향후 갈등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례’로서 이번 사태를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곰표밀맥주 논란 정리해보니

세븐 “너무 비슷한 신제품, 재고 부담”

2020년 4월,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는 상표권 계약을 맺은 후 ‘곰표밀맥주’를 내놨다. 패키지 디자인에는 대한제분이 보유한 곰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하고 내용물인 맥주는 세븐브로이가 만드는 형태였다. 세븐브로이 맥주 판매 수익 중 일부를 대한제분이 로열티로 받기로 했다.

곰표밀맥주는 누적 판매 6000만캔에 육박하는 ‘메가 히트’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판매 초기에는 제품이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곰표밀맥주를 단독 판매한 편의점 CU는 카스나 테라 같은 메이저 맥주를 꺾고 월 맥주 판매량 1위를 여러 번 차지했다. 수제 맥주 중에서는 유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대한제분이 세븐브로이에 ‘새로운 제조사를 구하기 위한 비딩(경쟁 입찰)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내심 재계약을 기대하고 있던 세븐브로이 입장에선 ‘날벼락’ 같은 일. 세븐브로이 관계자는 “사실 당연히 재계약이 될 줄 알았다. 제품이 꾸준히 잘 팔리고 있던 데다 그동안 계약 종료와 관련된 언급이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수출과 군납 등 예정돼 있는 납품 계약도 있던 터라 ‘설마’ 했다”고 말했다.

세븐브로이맥주가 만든 ‘곰표밀맥주(좌)’와 최근 출시된 제주맥주 신제품(우). 세븐브로이 측에서는 “디자인이 워낙 비슷하고 성분표도 유사해, 재고 소진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문제 제기를 한 상황이다. (윤관식 기자)
경쟁 입찰 결과 제주맥주가 새 협력사로 선정되면서 양 사 간 상표권 계약은 올해 3월 그대로 종료됐다. 그동안 만들어둔 저장주와 곰표밀맥주용 원부자재 등 재고 소진을 위해 세븐브로이는 부랴부랴 ‘대표밀맥주’라는 새 맥주를 내놨다. 패키지만 다를 뿐 내용물은 기존 곰표밀맥주와 동일한 제품이다. 원래는 곰 캐릭터를 활용할 예정이었지만 대한제분 측 지적에 따라 호랑이 캐릭터로 교체했다.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곰표밀맥주 사태는 대한제분이 ‘곰표밀맥주 시즌2’ 계획을 발표하면서 ‘소송전’으로 치닫게 됐다. 세븐브로이는 지난 5월 법원에 곰표밀맥주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데 이어 6월에는 사업 활동 방해 등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세븐브로이가 제기한 문제는 크게 2가지로 정리 가능하다. 첫째 새 제품 원재료 목록과 함량 비율 등이 기존 제품과 너무 유사하다는 점, 둘째 유사성 탓에 남은 재고 소진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존 계약상 올해 9월까지는 재고 판매가 가능한 만큼, 그때까지만이라도 신제품 판매를 미뤄달라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대한제분은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판단을 위한 심문 기일을 연기했고 그사이 곰표밀맥주 신제품 판매는 시작됐다. 덕분에 일부 편의점에서는 기존 재고로 남아 있는 곰표밀맥주 시즌1, 세븐브로이가 패키지를 바꿔 내놓은 대표밀맥주, 제주맥주가 새로 만든 곰표밀맥주 시즌2가 같은 진열장에 놓여 있는 진풍경(?)이 나타나기도 했다.

상표권 종료, 제조사 부담이 더 커

남겨진 공캔…기존 계약 ‘파기’ 리스크

유통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이번 상표권 분쟁을 놓고 “세븐브로이가 섭섭할 수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곰표밀맥주 성공이 오롯이 ‘상표’ 덕분만은 아니라는 데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대한제분은 상표만 제공했을 뿐 제품 개발부터 제조·유통은 그동안 세븐브로이가 도맡아왔기 때문이다.

계약 종료 시, 상표권자보다는 제조사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도 이런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먼저, 재고 문제다. 사전 제조가 완료된 ‘저장주’, 기존 디자인으로 인쇄해놓은 ‘공캔’과 ‘공병’, 제조를 위해 매입해놓은 ‘원부자재’ 등이다. 한 맥주업계 관계자는 “맥주 제조를 위한 원부자재는 수입이 쉽지 않은 만큼 한 번에 대량 주문해놓는 것이 보통이다. 재고가 상당할 것”이라며 “공캔이 더 문제다. 재활용을 하려면 인쇄된 캔 위에 새 상표를 덧대는 방식을 쓸 수밖에 없는데, 추가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제품 완성도와 소비자 만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존 납품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지 못한다는 점도 제조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다. 예를 들어 세븐브로이는 올해 초 곰표밀맥주를 군대에 납품하는 ‘군납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상표권이 종료되고 곰표밀맥주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계약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계약상 다른 제품으로 대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5월을 마지막으로 군납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였다. ‘계약 불이행 시 향후 2년간 군납 계약 불허’라는 페널티도 고스란히 제조사 몫이다.

기술 이탈 리스크도 무시 못한다. 세븐브로이는 2021년 대한제분에 수출 업무를 이관하면서 곰표밀맥주 성분표와 배합 자료 등을 함께 넘겼다. “수출 계약 시 해외 기업이 진행하는 실사를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게 세븐브로이 측 설명이다. 대한제분은 “기술 도용은 없었다. 새 곰표밀맥주는 온전히 제주맥주와 독자적인 레시피로 생산한 제품”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도용 여부를 떠나 ‘노하우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 언제든 직면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제조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상표권 논란, 최소화하려면

재계약청구권·재고 관리 챙겨야

상표권 계약을 둘러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재계약’ 관련 사항을 보다 꼼꼼히 챙길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에서도 ‘당연히 재계약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세븐브로이의 안일한 생각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번 상표권 계약 종료 자체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일방적인 계약 종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제분은 계약 기간이 만료된 이후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것일 뿐,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파기한 것이 아니다. 제조사인 세븐브로이가 ‘사실상’ 계약 갱신 기대를 가질 만한 상황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런 신뢰가 침해된 사정만으로 ‘위법’한 계약 종료라고 평할 수는 없다는 평가다.

상표권 계약 시 재계약과 관련된 조항이나 특약을 미리 넣어두면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이한결 법률사무소 와이지 변호사는 “갑작스러운 계약 종료로 큰 피해가 예상된다면 ‘묵시적 계약 갱신’ 조항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계약 종료 몇 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조항이다. 제조사 ‘재계약청구권’을 특약으로 넣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재고 관리’와 ‘신제품 개발’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행 제도나 관행상, 상표권자가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든 제품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늘 차선책을 준비해야 한다”며 “계약 종료 기한이 다가올수록 재고 관리를 꼼꼼히 하고 재고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다른 제품 라인업을 미리미리 준비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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