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오해... 이주민 6명의 삶이 보여준 고고함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최문희 2023. 7. 1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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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등 이주활동가, <곁을 만드는 사람>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고정미 기자]

이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한 지역에 뿌리를 내려 정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사랑과 학업을 좇아 생면부지의 곳에서 제2의 삶을 산다. 나의 고향은 대구이지만 현재 사는 곳은 서울 한강 북쪽이듯이. 나는 지방으로 이주할 예정이며 낯선 그곳에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찾을 것이다. 이는 네팔, 미얀마, 베트남, 스리랑카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이주민과 비슷한 모양새의 삶이다.

비슷비슷한 저녁 밥상 위 깻잎, 양파, 마늘부터 우리가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불안했던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소비재는 이제 흔치 않다. 일부 내국민들은 이주민들과 닮은꼴로 살면서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일자리를 뺏는다는 기상천외한 오해로(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민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주노동자가 일으킨 경제적 효과는 자그마치 74조 1천억 원에 달한다) 이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쉽사리 위험한 곳으로 낙인찍는다.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청년이 목숨을 잃어도 "걔네들 돈 벌어서 자기 나라에서 떵떵거리며 살 텐데"라며 힐난하며 그들이 일군 농작물로 만든 밥상 위에서 숟가락을 뜬다. 인력이 부족한 국내 뿌리산업(주조, 금형, 용접 등 기술을 이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에 필수 노동을 충당하고자 한국 정부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서. 우리가 그들을 먼저 필요로 했기에 물 건너 땀 흘리는 오늘의 사람이 있다.

'피해자 너머' 이주민 서사의 빈곤
 
ⓒ 고정미
1980년대만 해도 한국은 간호사와 광부, 중동 건설업 노동자 등을 '수출'했다. 이후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자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1993년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제도(아래 '산업연수제')를 실시한다. 당시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는 산업연수제를 통해 이주노동자에게 100만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탈취하는 전횡을 일삼았다.

고가의 수수료를 내고 배정받은 사업장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이주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낙후한 사업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고, 미등록 이주민의 신분으로 불리한 취업을 감행해야 했다. 출입국에 쫓겨 사고를 당하거나 강제 출국한 미등록 이주민의 이야기는 영화와 책 등으로 만들어져 우리 사회에 수없이 알려졌다.

바야흐로 2023년, 피해자로 조명받는 이주민 이미지 너머의 서사는 없을까. 노동자라는 기표에서 벗어나 시민으로서 떳떳하게 이따금 고국의 언어를 쓰고, 공공 병원과 도서관을 이용하며,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며 문화를 누리는 모습은 언제쯤 빈번하게 조명될까.

착취로 얼룩진 이주노동의 현실이 개선되려면 갈 길이 멀기에 실태를 고발하는 이야기는 산재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제 국내 인구의 5퍼센트에 달하는 이주민을 '피해자'가 아닌 '당사자'로 바라보고 목소리를 싣는 매체와 출판이 필요하다(방송에선 선진국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생활, 한국문화에 매료된 결혼이주민의 삶을 보여주는 콘텐츠에 편중돼 있다). 보편적인 우리 곁 이주민이 인터뷰이가 아닌 인터뷰어가 되는, 자기만의 언어로 질문을 던지는 주체적 서사가 긴요한 시점이다.
 
 책 <곁을 만드는 사람> 표지 사진
ⓒ 오월의봄
<곁을 만드는 사람>은 그래서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라는 단어 대신 이주노동의 현실을 다채롭게 드러내고, 일하는 이주민의 건강한 오늘을 회복하고자 분투한 여섯 '이주활동가들' 삶과 목소리를 청취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자 분투해온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은 여섯 사람이 고국에서 불렸던 고유명사, 즉 각자의 이름과 그 안에 품은 뜻을 각 챕터의 서두마다 구술한다. 한 개인의 노동 이전 시간을 복원함으로써 이주민을 '한 존재'로서 호명한 것이다.
김나현, 섹 알 마문, 샤말 타파, 또뚜야, 차민다, 놀리(가명)는 1990년대~2000년대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와 방방곡곡에서 일했다. 퇴근 이후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책자를 번역하거나 통역·상담에 주력해왔다. 국내 이주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거나 동료들을 모아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농성의 최전선에서 투쟁했다. 이들 대부분은 고국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한국에서 지낸 시간이 더 오래되었다. 산추련이 소개하는 여섯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마트를 이용하고 짠내나고 기쁜 이야기에 울고 웃는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다.
 
"제가 한국에 온 지 25년이 됐어요. (중략) 노조 간부로서 활동을 그만두더라도 영화로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일을 계속할 것 같아요. 한국사회는 집회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저희가 소수 집단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문화예술은 그런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이주노동 현실을 담은 영화 열두 편을 제작한, 한국 생활 25년째인 '섹 알 마문'의 말 중에서.
 

꺾이지 않은 여섯 이주활동가의 삶과 정신

고고함. 한 권으로 압축하기 녹록지 않았을 여섯 사람의 삶 이야기를 읽다 보면 떠오르는 단어다. 한국 사회가 자행한 인권침해에 맞서 노동자와 예술가, 활동가로 분투한 흔적이 담긴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솔직히 고민이 들었다. 곡기를 끊어가며 싸우고, 버티고, 일궈낸 이주민의 열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여섯 이주활동가 삶의 이력을 조심스레 옮겨 본다.

첫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김나현(베트남 이름은 팜 티 안 뚜엣). 1974년에 태어나 1995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베트남에서는 22년, 한국에서 지낸 지 28년이 되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그녀는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아도 내국민과 달리 최저임금을 받아온 통번역·이중언어 무기계약직 종사자들의 노동 현실을 고한다.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의 센터장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다 먼저 프로포즈"한 결과라 말한다. 결혼이주여성이기 전에 그는 당당하고 진취적인 닮고 싶은 '언니'이다.

샤말 타파는 1994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2003년 11월부터 15일부터 380일간 이어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단의 대표였다. 명동성당 농성은 정부의 대대적 강제 추방에 맞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요구한 투쟁으로, 그는 출입국에 붙잡혀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가 네팔로 강제 출국 당했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샤말 타파는 고국에서 이주노동을 하고자 출국하는 네팔인들의 안전을 위해 네팔노조총연맹에서 활동 중이다. 투쟁의 보폭을 더 넓힌 그는 과거, 자신을 추방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제가 추방당했을 때 당시 한국 생활 10년째였어요. 20대에 한국에 가서 30대가 됐어요. 사람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나이라고 하는 시간을 모두 한국에서 보냈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중략) 한국에 가서 노동운동을 해온 선배들만 만난 게 아니라 학생이나 사회운동가도 만났어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이 줬던 기억으로, 그러니까 나쁜 기억이 아닌 좋은 기억으로 운동했던 거예요. 어릴 때 막연하게 꾸었던 꿈을 그렇게 이룬 게 아닐까요. 좋은 사람,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요." -네팔 노총에서 수많은 사람과 상담하고 협동조합에서 일자리 만드는 활동을 실천 중인 샤말 타파의 말 중에서

한국을 미워하지만은 않는 마음 앞에서 부끄럽고 숙연해졌다. 그는 결코 자신이 이주해 일하고 투쟁해온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팬데믹 상황이 심각했던 시기, 방역으로 인해 제조업 분야에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중단했던 한국 정부는 필요할 때만 이주노동자에게서 노동력을 갈취했다.

제조업 인력 상황이 나아지면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손쉽게 방침을 바꾼 것이다. 1974년 미얀마 도시 나따린에서 태어나 1998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온 또뚜야도 그중 한 명. 그는 같이 일하던 친구가 프레스에 손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자 일주일 후 공장을 나와 미등록의 이주민의 삶을 시작했다.

또뚜야는 동료의 사고 직후 귀에서 '우' 하는 바람소리가 날만큼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는 거듭 버틴 끝에 2008년 친구들과 '황금빛살미얀마공동체' 공동체를 세운다. 국적·종교·민족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현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노동인권 상담 활동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나 5·18 행사 참석할 거예요. 오늘 휴무!"라고 당당하게 고용주에게 의사를 밝히는 또뚜야에게서 용기의 모양과 색채를 엿본 것 같다.

우리 노동운동 역사와 닮은 이주노동 운동의 역사

25살에 한국에 들어온 차민다. 그는 십 년간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의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노조 조끼를 입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차민다는 2019년부터 대구 성서노조에서 활동가로 상근하며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이어 갔다.

그는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는 3년 동안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했고, 한국어가 능숙해질수록 동료가 겪는 차별을 선명하게 마주했다. 사업장 이동이 불가한 고용허가제의 허점을 낱낱이 짚어낸 그의 투쟁기를 읽다 보면 국내 노동운동의 역사와 이주 노동운동의 역사가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필리핀 정부의 인권 탄압 실태를 알려온 놀리(가명)는 한국 공장에서 만난 필리핀 이주노동자들과 유에라(New Era)라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만들었다. 1998년 한국에 있는 필리핀 공동체를 연합해 친구들과 카사마코(필리핀이주노동자단체연합)를 세웠다. 카사마코는 방글라데시, 네팔 등 다른 나라의 공동체가 클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에도 힘쓴다.

고고한 저항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여섯 사람은 국내 이주노동 역사의 산증인이자 차세대 이주민들이 안심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온 노동운동가들이다. 이 책은 일하는 세계시민들의 가장 센 고함과 용기의 기록이다.

"제가 이주노동을 한 지 20년 되고 있는데, 저희 다음 세대가 없어요. 이게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들리기 힘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거든요." 공론의 장이 생길법하면 고국으로 이주민들을 강제 추방해온 정부는 올해 대대적인 이주노동자 유입을 발표했다. 인구 절벽 시대의 위기 앞에서 한국 정부는 언제까지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있을까.

이방인이 아닌 시민으로 이주민을 환대하는 연습은 이미 인구 정책을 논하는 시점에서도 필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이는 종내에는 과제가 아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이주를 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결국 누군가의 선주민이자 이주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정책의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거울이자 이웃이다.

미약하게나마 이주민을 노동자 너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룬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이주노동을 마친 후 고국에서 따비에 도서관을 지은 일화를 담은 그림책 <미안먀, 마웅저 아저씨의 편지>, 자신의 일과 삶을 시로 노래한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명문장이 빛나는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일하고 투쟁하며 밴드를 이끈 네팔인 미누의 이야기 <나의 미누 삼촌> 같은 책들은 주도적으로 자기의 삶을 개척해낸 존재들의 고유함을 포착해낸다.

그리고 <곁을 만드는 사람>은 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세워 버팀목이 되어온 사람들 이야기다. 이들은 포카라나 카트만두, 양곤, 호치민에만 있지 않다. 안산, 포천뿐 아니라 성수동에도 청담동에도 있을 수 있다. 살아있음을 말하고자 숨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세계의 지붕을 만든다. 비를 막아주는 그 지붕에 찍힌 '메이드 인 코리아'에는 어떤 이의 숨결이 스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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