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물 시음은 민주적 설득 아니다...당정일체, 당론 강요가 정치 망친다 [하헌기가 소리내다]
최근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그리고 “오염수를 방류할 물보다 훨씬 진하다”며 횟감 생선이 들어있는 수조물을 손으로 떠마셨다. 80% 이상의 국민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5월 19~22일 ‘리서치뷰’ 조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느낄 불안을 몸을 던져 해소해보고 싶었던 걸까. 이 행동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오히려 ‘오염수 위험성이 과장됐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대통령실에 어필하려 하는 모습만 부각되지 않았을까. 이 의원이 마신 수조물이 후쿠시마 오염수와 연관이 없다는 ‘과학적 사실’은 여기선 접어두자. 대신 이러한 행동이 과연 민주주의적 태도에 입각한 설득인지를 따져보고 싶다.
민주적 설득보다 대통령실 정책에만 집중
민주주의는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고 검증하는 체계가 아니다.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결정 체계다. 80% 이상의 주권자가 우려를 표하면 무작정 그들을 ‘비과학’으로 몰면서 독선적으로 권력을 집행하기보다는 먼저 민주적 설득 작업부터 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정책 방향에만 힘을 실을 일이 아니다. 국회의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가 ‘민의를 대의하는 것’이지 않은가.
물론 여당 인사 중에도 대통령실이 하는 행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쉬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못한다. ‘내부총질’로 싸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 중에서도 대통령이 하는 일에 비판적인 국민의 의견은 정치에서 음 소거 처리된다. ‘당정일체’가 된 여당은 오직 대통령의 의중만 살핀다. 그렇게 집권여당은 공당으로서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 기능을 상실해 가는 모습이다. 공당이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면 자연히 민의의 전당인 국회 또한 고장 난다.
그렇다면 야당은 어떨까. 여당과 비교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다. 그러나 야당이라고 공당으로서 민의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데, 공당은 국민의 것이란 의식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당원의 총의라고 민주적으로 잘 모아내는 것도 아니다.
가령 다수 국민에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알려진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통과 국면을 떠올려 보자. 당시 이 법안은 민주당의 ‘당론 법안’이었다. 그런데 당론이라면서 정작 법안 자체는 제대로 성안되어 있지도 않았다. 형법 체계의 틀을 바꾸는 일인데 법안을 제대로 준비해 놓지도 않고 우선 당론으로 결정부터 하는 게 입법기관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으로서 말이 되는가.
헌법과 국회법 위에 있는 당론
당연히 민주당에 소속된 인사 중에도 이런 일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쉬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못한다. 그 자체로 ‘해당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견이 있어도 ‘당론이므로’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당론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당헌 제6조(당원의 권리와 의무)는 당원은 당헌ㆍ당규를 준수하고 당론과 당명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당규 제7호(윤리심판원규정) 제14조에 따르면 당의 강령이나 당론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징계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조항으로 징계를 받은 경우가 금태섭 전 의원이다. 금 전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표결 당시 찬성이 아니라 기권 투표한 게 당론 위반이라고 징계를 받았다.
당내에서 당론의 힘은 이를테면 헌법과 국회법도 초월한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명시한다. 국회법 114조의 2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의원이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해도 당론과 맞지 않으면 소속 정당에선 징계를 받는다.
이런 사례를 보면 정당에서 당론이란 거의 정언명령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당의 구성원들에게 당론은 그 자체로 무조건적인 수행이 요구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징벌까지 가능하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황당한 점이 있다. ‘당론을 따라야 하는 의무’와 ‘그러지 않았을 때 징계한다’는 조항은 당헌ㆍ당규에 명확히 규정이 되어있는 반면, 그래서 ‘당론이 어떤 절차로 정해지는지에 관한 규정’은 당헌에도 당규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적 절차 없는 당론, 100만 명 넘는 당원은 따라야
보통 정당에서 당론은 소수가 정한다. 지도부를 비롯한 기관에서 정하고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는 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의총에서도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도 않는다. 대충 눈치껏 한다. 당원 100만 명 이상의 구성원들은 그렇게 정해진 당론에 따라야 한다. 당론이 정해지고 나 같은 사람이 미디어에서 개인 의견을 피력하면 ‘당론에 따르지 않는다’라고 비난받곤 한다. 나는 당론 결정 과정에 참여해본 적도 없고 이견을 제출할 기회도 없었는데 당에서 당론을 결정하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규정상 개인의 의견을 조직에 기속시키고 이견을 표하면 징벌할 수 있는 권력이 당론인데, 정작 그걸 정하는 민주적 절차는 규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힘 있는 소수가 눈치껏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민주당만 이렇지 않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비대위를 구성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총에서 박수로 추인했던 정당이다. 집권여당 지도부 구성을 위한 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규정을 그런 식으로 바꾼 것이다.
두 거대 정당은 걸핏하면 ‘국민의 뜻’ ‘당원의 요구’를 입에 물곤 한다. 하지만 실제론 국민과 당원이 공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저 선거가 오면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국민과 당원이 가진 투표권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떠들어 댈 뿐이다. 정작 공당의 모든 의사결정은 소수의 권력자와 기득권의 입장에 따라 정해지고, 이에 이견을 표하면 ‘해당행위’ 혹은 ‘내부총질’이 된다.
민의 대변 기능 살려야 민주주의 복원돼
그렇게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을 대의해야 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단 대통령의 의지나 소수가 설정한 당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공당과 국회는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로지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의 권력자만 대변해야 하는 기관으로 전락한다.
우리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거대 정당들이 당론을 결정함에 있어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당헌에 제대로 규정하거나 당론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 토론과 숙의를 거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을 거쳐야 이견을 가졌더라도 민주적 결론에 승복할 수 있게 된다.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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