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 4번 연속 동결…이창용 총재 "가계부채 우려 많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지난 2월과 4ㆍ5월에 이은 4연속 동결로 시장의 예상에 부합한 결정이다. 여전히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새마을금고발 금융불안이 더해지면서 기준금리를 올려 시장에 충격을 주긴 어려웠다. 반대로 기준금리를 내리기엔 심상찮은 가계부채 증가세, 물가ㆍ환율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인플레이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연말까지는 현재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은은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기로 했다. 금통위원 6명 전원일치였다. 한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1.4%)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3.5%)가 지난 5월 기준금리 동결 당시와 다르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다만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는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8월 이후 다시 3% 내외로 높아지는 등 상당 기간 목표수준(2%)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주요국의 통화정책, 가계부채 흐름 등도 지켜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했다. 기존과 달리 가계부채에 대한 언급을 추가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6월 말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원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은행 주담대는 4개월 연속 늘고 있는데 문제는 3월(2조3000억원), 4월(2조8000억원)에 이어 5월 4조2000억원, 6월 7조원으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가동 중인 데다 하반기 아파트 입주 물량도 늘어날 예정이어서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들도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했다”며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뿐만 아니라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든지 여러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과의 ‘엇박자’로 그간 금리 인상의 효과가 반감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해선 “정부의 역전세 (지원) 제도 등이 분명히 가계부채를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금융안정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미시적인 정책으로 자금시장에 물꼬를 터 줄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통화정책과 상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2021년 3분기) 106%에서 올해 1분기 103%까지 떨어졌는데 이게 다시 올라가는 추세라면 그때 과도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과도하다고 평가하기는 시기상조”라고도 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1분기 기준 가계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선 국가는 주요 34개국 중 한국(102.2%)이 유일하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 부담을 떨치기 어려운데,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걱정이 더해졌기 때문에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부동산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새마을금고 연체율이 치솟고 ‘뱅크런’ 우려까지 제기된 데 대해 이 총재는 “특정 섹터(부문)가 아닌 개별기관의 문제”라며 “연착륙 과정에서 순서있게 대처해 가면 쉬운 건 아니겠지만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4연속 기준금리 동결로 시장에선 연내 인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전날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2% 중반대를 유지할 것”이라며 “터널의 끝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물가 목표인 2%로 물가가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들 때 인하를 논의할 것”이라며 금통위원 6명 모두 향후 3개월 내 3.75%까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최근 물가가 꺾이면서 7월에 한 번 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은 후 긴축을 종료할 거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다만 이 경우 한·미 기준금리 역전차는 역대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지게 된다. 현재 1.75포인트 차에도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거나 달러당 원화가치가 급락하진 않은 만큼 당장 우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다만 한·미 금리차가 장기화하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등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희·오효정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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