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신용등급에 거품끼나…경기 어두운데, 신용 전망은 되레 상승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는 지난 3월 24일 현대캐피탈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이 회사의 신용등급 전망(향후 신용등급 조정 방향을 보여주는 신평사의 의견)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높인지 석 달이 채 안 되는 시점이었다.
나신평이 현대캐피탈 등급을 상향 조정하자, 곧이어 한국신용평가(한신평)와 한국기업평가(한기평)도 등급을 올렸다. 세 신평사 모두 현대차 그룹과의 긴밀한 관계와 자동차 금융 경쟁력 등을 등급 상향 사유로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크레딧 연구원은 “신평사의 신용등급 전망은 통상 6개월~1년 뒤 신용등급의 조정 방향을 보여주지만, ‘긍정적’ 전망으로 바꾼 지 석 달 만에 등급까지 상향 조정한 것은 당황스럽다”며 “깜빡이를 켜자마자 ‘칼치기’하듯 차선을 변경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신평사가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변동 현황 보고서를 속속 발표하는 가운데, 채권시장에선 신평사 등급 평가에 대한 신뢰도 하락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신용등급 상향 조정하는 속도는 이례적으로 빠르지만, 하향 조정에는 소극적인 탓에 부진한 올해 경기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신용등급에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우려다.
13일 중앙일보가 국내 3개 신평사의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변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나신평이 올해 상반기 장·단기 채권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기업은 총 11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곳 줄었다.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0.9%)이 지난해 상반기(3%)보다 부진했지만, 신용등급 하락 기업은 1년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서찬용 나신평 평가정책실장은 “전체 평가 대상 기업 중 한신공영·여천NCC 등 신용도가 악화한 기업의 비중이 다른 신평사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등급 하향 건수가 줄었다”며 “올 상반기 등급 상향 기업 수는 12곳으로 지난해 상반기(25곳)보다 크게 줄어든 만큼 경기 부진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크레딧업계는 등급 조정 결과를 볼 때 나신평이 한기평 등 다른 신평사보다 등급 하향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한다. 한기평이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을 강등한 기업은 15곳으로 지난해 상반기(14곳)보다 더 늘었다.
부진한 실물 경기와 괴리가 더 커진 건 신용등급 전망이다. 신용등급 전망은 신평사가 평가 기업의 신용등급을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통상 6개월~1년 뒤 신용도 변화를 전망해 긍정적(등급 상향 전망)·안정적(등급 유지)·부정적(등급 하향 전망)으로 평가한다.
올해 경기 전망은 밝지 않다. 정부는 지난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1.6%)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정부 예상대로면 올해 성장률은 건국 이래 6번째로 낮을 수 있다.
하지만 신평사의 신용등급 전망만 보면 이런 흐름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나신평은 올해 상반기 27개 기업의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하향 조정 건수(14건)보다 많았다. 한신평도 18개 기업의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해 역시 하향 조정 건수(12건)를 넘어섰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제2 금융권 신용경색,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등 신용 위험이 잠복한 경기 부진 국면에서 신평사가 정확한 등급 평가로 위기 경보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기업은 코로나19 리오프닝(봉쇄 해제) 효과로 신용도가 개선되는 곳도 있겠지만,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는 경기 부진 국면에서 신용도가 좋아지는 기업이 더 많을 것이란 신평사 전망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부진한 경기와 신평사의 신용등급 전망 간에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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