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국·영·수 너머 ‘세상’을 배우게 하려면?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2023. 7. 13. 1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공정규의 우리 아이 뇌 이야기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실제로 영국의 모 신문사에서 ‘​영국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을 공모한 적이 있다. 독자들은 비행기, 기차, 도보 등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들을 제보했다고 한다. 1등으로 당선된 답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참 신선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해결책을 찾는데 초점을 맞춘다.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성적이 낮으면 어떻게든 올리려는 식이다. 그러나 자녀를 훌륭한 성인으로 길러내는 데 중요한 건 ‘문제 해결’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시험을 망쳐 나쁜 성적을 받았을 때, 부모인 독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나쁜 성적을 본 엄마(또는 아빠)가 말한다. “네가 공부를 안 하니까 그렇지, 학원 하나 더 다녀라” “너 때문에 엄마(또는 아빠)가 못 살겠다” “도대체 네가 잘 하는 것이 뭐가 있냐” “이것밖에 못 하겠니” “너는 누구 닮아 이러니”

그렇다면 필자는 마음속으로 넌지시 물어본다. ‘아이가 성적이 낮은 것이 왜 아이의 엄마(또는 아빠)가 살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지’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는 노력을 하기라도 한 것인지’ ‘아이 엄마(또는 아빠)의 학창시절 성적이 궁금하다’ ‘누구를 닮아 그런 걸까. 부모를 닮지 않았을까’ 성적이 나쁘면 미래에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부모는 미주알고주알 설교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아!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시니 고맙습니다”하고 눈물 흘리는 경우는 없다.

문제 해결보단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적이 안 나오면 누가 제일 속상할까. 청소년 자녀 본인이다. 부모는 “속상하겠다”고 먼저 아이에게 공감한다. 그리고 “원래 성적이라는 것이 한꺼번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고 말해주고, 아이가 국·영·수를 넘어 이 세상을 꾸준히 배워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인디언들은 16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고 한다. 2박 3일 동안 간단한 칼 한 자루만 가지고 몇 개의 산과 들에서 자고 먹으면서 주어진 코스를 통과해야 하는 험난한 의식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성인식에 참여한 모든 어머니는 아이가 주어진 코스를 통과하는 것보다 2박 3일 동안 무사히 돌아오길 정성껏 기도한다. 아버지는 아이가 아무리 험난한 코스라도 잘 이겨내 성인이 되어 돌아올 마지막 구간에서 기다린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이가 달려오는 것을 본 아버지는 말없이 뒤돌아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러면 아이는 피니쉬 라인(finish line)에 있는 아버지 어깨를 밟고 통과해 앞으로 뛰어나간다. 그걸 본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채로 "이 앞에 놓인 세상은 이제 너의 것이다"라고 하며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드디어 아이는 아버지를 넘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학업 성적이 좋다 나쁘다는 결과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생의 ‘진짜 진리’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도전을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가 살아가다 힘들 때 부모를 찾아와서 인생을 의논하게 하려면, 이렇게 부모-자녀 간의 신뢰와 사랑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본인의 팔자를 자녀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우선 부모 자신의 마음공부부터 하자. 아이가 문제점투성이로 보이고, 자신의 걱정을 모두 아이에게 말하고, 아이를 탓하기만 하고, 아이에게 ‘내가 어릴 때는…’ 하며 설교하고, 아이를 분노로 대해왔다면, 지금 바로 반성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보자. 아이가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녀 교육을 위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멘토를 찾아 조언을 구하자. 그리고 그 조언을 삶 속에서 실천하자.

예컨대 “공부는 잘 하고 있니” “학원은 잘 다니고 있니” “지난번 성적표 왜 아빠(또는 엄마)한테 안 보여줬어”가 아니라 “아빠(또는 엄마)가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같이 못 보냈네. 미안하다. 오늘은 너를 위해 시간을 비웠는데 뭐하고 싶어”라고 먼저 말해보는 게 어떨까.

그 다음엔 아이에게 "잘 돼라"고만 하지 말고, 본인이 아이 옆에서 잘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최고의 교육은 부모의 솔선수범이다.

그동안 ‘​사공정규의 우리 아이 뇌 이야기’​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칼럼은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의 기고입니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