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정육점 가게를 뒤덮은 희한한 글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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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연, 손채연 기자]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도깨비 정육점, 이곳은 어딘가 이상하다. 정육점에 적혀있을 법한 '싱싱한 고기 세일합니다', '특가상품 팝니다'와 같은 글이 아니라 다소 생뚱맞은 글이 적혀 있다.
"수행이란 어리석음을 깨우쳐 지혜를 얻는 것이며, 깨달음이란 마음 속에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맥에 관한 것, 용서에 관한 것, 친구에 관한 것… 쇼케이스 위에 진열된 글귀를 읽다가 고기를 썰던 이와 눈이 마주쳤다. "글귀가 멋지다"고 하니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게 안에도 글귀가 있다"며 자랑했다.
직접 글씨를 썼다는 강성구(62)씨, 올해 38년 차 정육사이자 도깨비 정육점 사장이다.
좋은 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
▲ 공릉동 도깨비 정육점을 운영 중인 강성구 사장님 |
ⓒ 주소연 |
"요즘은 글도 잘 안 읽고 삭막해진 사회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직접 쓴 좋은 글을 공유해 주고 싶었어요."
그는 예전부터 메신저를 통해 지인들과 좋은 글들을 공유해왔다고 했다. '오늘의 어록'을 모아두고, 글을 주고받을 때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한 번쯤 읽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은 가게에 '좋은 글귀 붙이기'로 이어졌다. 글귀를 붙이기 시작한 건 11년 전, 정육점 안에 운영하던 식당에서 손님들이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가게 내부엔 B4용지를 꽉 채워 적은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비록 강 사장님의 건강 악화로 이제는 식당을 운영하진 않지만, 좋은 글귀 붙이기는 멈추지 않았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글귀를 볼 수 있도록, 고기 쇼케이스 위에도 써 붙였다.
"좋은 글을 보면 일부러 메모해 둬요. 그리고 글로 써서 모아둬요. 나중에 가게에 부착하려고요."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테이블엔 상자째 쌓인 종이가 보였다. 메모해 두었던 좋은 글을 종이에 적어둔 것이다. 휴대전화 속 메모장은 이미 용량 포화상태였다. 책이나 칼럼을 읽다가 마음을 울리는 글을 보면 모조리 적어 두었다고 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면 요약해서 읽어주는 유튜브 영상이라도 챙겨 본다고 했다.
▲ 가게 내부 글귀 가게 내부엔 사장님이 직접 적은 글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었다. |
ⓒ 주소연 |
왜 이렇게 할까. 강 사장님은 "베풀고 살다 보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사소한 것이더라도 좋은 것을 나누며, 행복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베풀고, 나누기를 일상화하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고기 쇼케이스 위 적혀있는 "인맥이라는 건…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의 수가 아니라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의 수를 말한다"는 글귀처럼, 강 사장님이 좋은 것을 나누도록 힘을 주는 인맥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보육원 봉사를 다니고 있다"며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레크리에이션 자료를 보여줬다. 메모장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은?', '치자가 들어가는 물고기는?'과 같은 퀴즈도 적혀 있었다.
"보육원에 봉사하는 사람들끼리 가서 맛있는 밥도 차려주고, 고장난 데 있으면 고쳐주기도 해요. 특히 저는 고기를 만지는 일을 하고 요리도 할 수 있으니까 주방에 들어가서 맛있는 밥을 해주곤 해요. 다 너무 좋은 아이들만 있거든요. 제가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 이상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사회적으로 소외 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역시 평소 지로인 '나눔'과 관련있는 활동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
"옛날에는 시장이 정겨웠는데 말이에요. '이거 하나 더 주세요' 하며 쉽게 말도 붙이고 하는 것들이 참 좋았어요."
그는 "요즘엔 시장이 퇴색됐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예전 시장은 정겨웠던 기억이 많은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글귀를 찍어가는 손님들을 보곤 금방 웃으며 말을 붙였다.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 나누는 세상이니까요.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살다 보면 더 아름다워질 거 같아요."
오늘도 강 사장은 메모장을 펼친다. 도깨비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길 바라며 글을 적는다. 빼곡한 그의 메모장에는 '좋은 마음'이 가득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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