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르포]세계 커피 문화의 新 중심지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한국인들의 베트남 방문이 한창이다. 베트남이 다른 관광지와 비교해 편리하고 친숙한 이유 중에는 어디에나 한국형 커피숍이 즐비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호찌민, 하노이, 다낭 등 시내 도심 골목골목마다 우리에게 익숙한 커피전문점이 값싸고 향 좋고 얼음으로 가득 찬 커피 음료로 손님을 맞이한다.
전반적인 베트남 커피전문점 수준은 한국과 엇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생산과 소비 모두 강국이다.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인테리어를 꾸민 ‘콩 카페’는 2018년 한국까지 진출해 힙스터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누렸을 정도. 그런데 베트남이 커피 생산 강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커피는 중남미’라는 오래된 상식 탓이다. 이미 20년 가까이 절대 1위 브라질 생산량(연간 6000만 포대, 1포대=60㎏)의 절반까지 따라잡으며 전 세계 커피 생산량 2위에 올라선 게 베트남이다.
이 수치는 3위 콜롬비아보다 두 배, 4위 인도네시아보다는 세 배가 많아 당분간 순위엔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베트남이 커피 강국이 된 배경엔 제국주의 프랑스 지배의 유산과 더불어 천혜의 자연조건도 한몫했다. 베트남 중부 고원 지방, 특히 닥락, 람동, 자라이성 등은 기후가 좋고 적당한 고도(高度), 화산성 토양까지 풍부해 커피 재배에 최적지로 평가된다.
또 개혁개방 이후 꾸준히 이들 고원지대 농민에게 경제작물로 커피를 추천하고 재배를 부추긴 정부 역할도 칭찬할 만하다. 고급 품종인 아라비카 대신 커피믹스 등에 널리 쓰이는 로부스타 원두에 집중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됐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커피 수요가 급증한 시대에 저가 커피 수요를 대거 흡수하며 급성장한 것이다. 이제는 아라비카 경작지를 늘리고 자국 소매 브랜드도 여럿 키우며 뚜렷한 세계 커피 강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급성장한 중국 커피산업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의 커피 사랑은 최근의 유행만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커피보다 차(茶)의 소비가 높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엔 커피 수요가 늘어났다. 게다가 2000년 이후 미국의 스타벅스가 전 세계적인 유행을 선도한 덕분에 아시아 전 지역에서 ‘스타벅스 따라 하기 열풍’이 인 것도 영향을 끼쳤다.
최근 태국 방콕과 싱가포르를 방문하니 예전엔 없던 신생 커피 브랜드 ‘럭인 커피(Luckin Coffee)’가 커다랗게 매장을 내고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낯선 브랜드라 의아했는데 옆에 조그맣게 쓰인 한자 브랜드 덕분에 그 실체를 알게 됐다. 중국의 스타벅스로 알려진 루이싱(瑞幸)커피였다. ‘행운이 온다’는 뜻으로 영어 이름을 지은 것이다. 루이싱커피는 2020년 미국 나스닥증권시장 상장 폐지로 인해 한때 몰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뚝이처럼 재기해 매장 수를 1만개 수준으로 크게 늘렸다. 이제는 중국인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 중국산 브랜드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루이싱 커피의 중국과 아세안 국가 매장 수 1만여개는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 수 3만개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잠재력은 입증했다는 평가. 특히 중국의 청년 세대와 도시거주자가 커피 맛을 알아챘기 때문에 차세대 커피 스타는 중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커피와 관련된 거의 모든 기계와 제품은 광저우(廣州)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제조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도 커피 산업의 거인으로 커가고 있다.
루이싱에 도전장을 내민 태국 커피 브랜드는 ‘카페 아마존’이라는 저가형 커피 매장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석유공사에 해당하는 PTT라는 기업이 대주주인 이 전문점은 전국적으로 5000개의 매장을 확보하며 아세안에서 가장 큰 커피 브랜드가 됐다. 스타벅스와 루이싱커피 따라 하기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 절반 이하의 가격과 깊은 커피 맛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당연히 태국의 고산지대에 집중적으로 커피 재배를 늘려간 자국산 커피를 손님에게 내놓는다. 태국 역시 베트남 커피의 성공 신화를 따라 하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신생 미얀마, 전통의 자바
최근 태국에서 미얀마 출신 사업가를 만났다. 그의 여러 사업 가운데는 미얀마 중부 삥우린 인근의 대규모 커피 농장도 포함되었다. 미얀마 정부도 개혁개방 이후 산촌의 가난한 농부들에게 커피 농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뒤늦게 커피 산업에 뛰어들어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중이다. 과거 미얀마 산악지대 농부들은 은밀하게 양귀비 등 마약을 제조 유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3세계 산촌에서 뚜렷한 환금성 작물을 키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커피 원두 경작은 마약 산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 된다.
그 사업가의 고민은 200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커피 수출이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는 것. 심지어 필자에게도 한국으로의 미얀마 커피 수입을 부탁했을 정도다. 그분께 "기왕이면 미얀마 말고 ‘버마 커피’라는 표현으로 브랜딩을 다시 하시라"고 권했다. 커피 산업은 가난한 농부, 특히 마약 산업에서 탈출하고픈 이들의 마지막 희망일 수 있기 때문에 편견을 갖지 말고 소비해야겠다는 생각도 퍼뜩 들었다.
아시아 전통의 커피 강국은 인도네시아다. 17세기 이전부터 남예멘을 통해 중동의 커피 문화를 받아들여 자바(java) 섬은 아라비아 바깥에서 최초로 커피를 재배한 지역으로 기록됐다. 현재도 세계 4위권의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바 커피’는 고품질 아라비카 커피의 동의어이자, 심지어 컴퓨터 업계에 ‘자바 언어’라는 이름을 남길 정도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러한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고민은 뚜렷하게 개선되지 못하는 자국의 커피 경쟁력이다. 여전히 농부들은 영세하고 가공 산업에 대한 투자도 정체되면서 베트남에 밀린 지 오래고, 심지어 태국·라오스·미얀마 등 지역 후발주자들의 견제를 받고 있다.
여러모로 아시아의 커피 시장은 크게 낙관적이고 유망하다. 물론 아직은 가처분 소득이 유럽과 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해 커피 소비 액수에 있어서는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성장 속도만큼은 비교를 불허한다. 게다가 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생산보다는 커피 소비로 알려졌지만 조만간 아세안 10개국으로 따지면 브라질 커피 생산량을 제치게 된다. 커피 소비에서도 인구가 많은 아시아는 이미 최대 지역이 된 지 오래다. 글로벌 커피 문화의 중심은 이미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얘기다.
정호재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원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진정시키려고 뺨을 때려?…8살 태권소녀 때린 아버지 '뭇매'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