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 앞에서 선뜻 차를 태워준 노부부의 선의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7. 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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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석회의 도시

[김찬호 기자]

튀르키예 셀축에서 기차를 타고 네 시간 정도를 달려, 이제는 아나톨리아의 내륙으로 올라갔습니다. 튀르키예는 철도 교통이 크게 발달한 국가는 아닙니다. 방대한 영토를 주로 버스가 연결하고 있죠. 하지만 이즈미르에서 셀축을 거쳐 데니즐리까지는 철도가 연결하고 있더군요. 망설임 없이 기차표를 구매했습니다.

데니즐리 역에서 내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저와 같이 무거운 배낭이나 캐리어를 든 여행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하에 있는 미니버스 터미널로 내려갑니다. 막 출발하려는 미니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목적지는 파묵칼레
 
 튀르키예의 기차
ⓒ Widerstand
제 목적지는 파묵칼레였습니다. 버스는 30여 분을 달려 파묵칼레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어디쯤에서 내려야 할지 지도를 보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는 그새 숙소 근처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내리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돌아갈 때를 생각해 봐야 했습니다. 버스의 종점이 어디인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종점인 차고지가 가깝다면, 괜히 더운 길가의 정류장에서 오래 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차고지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라타 출발 시간까지 기다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오판이었습니다. 아까 막 출발하려던 미니버스를 바로 잡아서 탄 탓에, 버스 앞에 붙어 있던 목적지 안내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죠. 버스의 종점은 파묵칼레가 아니라 더 윗마을이었습니다.

눈치를 채고 내렸을 때는 이미 버스가 마을을 나와 큰길에 접어든 뒤였습니다. 내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 어차피 도보 여행을 즐기는 터라 이 정도는 자주 걷던 거리이지만, 아무래도 배낭이 있다 보니 무리가 될 것 같기는 했습니다.
 
 길 한복판에 내렸다.
ⓒ Widerstand
건너편 길가에 서 있다 내려오는 버스를 탈까? 아니면 올라오는 버스를 타고 아예 윗마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나? 고민이 좀 됐지만, 일단 걷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걷기에 무리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잠깐 걸어 내려오니 흰색의 산기슭이 보입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흰 산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 산이 파묵칼레를 방문한 이유인데, 이런 방식으로 이 산을 처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파묵칼레는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합니다. 작은 산에서 따뜻한 지하수가 흘러나오는데, 이 지하수에 탄산칼슘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물에 포함된 탄산칼슘이 지표면에 퇴적되며 석회석을 이루었죠. 흰 색의 석회와 여전히 흘러나오는 온천수가 몽환적인 경치를 만들어냅니다.
 
 파묵칼레 석회층
ⓒ Widerstand
그렇게 멀리 보이는 산의 경치에 홀려 10분 정도를 걸었습니다. 내리막길이라 걷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갈 길이 멉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낡은 자동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섭니다. 차 없는 도로를 후진으로 달려와 자동차는 제 옆에 섰습니다.
자동차의 창문이 열립니다. 어느 노부부가 앉아 있습니다. 저를 부릅니다. 튀르키예어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뒤에 타라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평소라면 안전 문제도 있고 하니 사양했겠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것을 따질 사정이 아닙니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올라탔습니다.

노부부는 아무 말도 없이 도로를 달렸습니다. 그리고는 파묵칼레 마을 입구에서 저를 내려주고는 저쪽으로 들어가라고 알려 줍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내렸습니다. 노부부는 다시 큰길을 타고 더 아래쪽으로 내려갑니다. 파묵칼레가 목적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따뜻한 물의 감촉을 느끼며
 
 파묵칼레
ⓒ Widerstand
덕분에 손쉽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석회의 산에 본격적으로 오른 것은 다음날이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석회석 지형으로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맨발로 길을 걸어봅니다.
석회석 위로는 따뜻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석회석은 매끄럽습니다. 거친 부분들도 있었지만, 또 수천 년의 퇴적과 침식을 거치고 나면 또 매끄러운 석회석이 되어 남겠지요. 맨발에 닿는 돌의 감촉과, 따뜻하게 감싸는 물의 감촉이 좋았습니다.
벌써 여행은 5개월을 넘어섰습니다. 아시아 대륙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보스포러스 해협에 닿았고,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산을 오른 것은 처음입니다. 발을 물에 담근 것도 처음입니다. 맨발로 걸어본 것도 처음입니다. 긴 여행을 지나왔지만, 그런데도 아직 처음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파묵칼레
ⓒ Widerstand
지하수가 깊게 고인 곳에서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면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의 유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온천과 휴양을 위한 도시로 개발되었다고 하죠.
시간은 2천 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기둥과 벽돌은 무너지거나 쓰러져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온천은 남았습니다. 석회의 산은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흰 산의 절경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습니다.
 
 산 위의 히에라폴리스 유적
ⓒ Widerstand
여행이 길어지며 어느새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도, 돈도, 여유도 부족해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파묵칼레에 닿았던 때가 그렇지 않았나 합니다. 하지만 석회의 산과 폐허가 된 도시는 위로가 되는 풍경입니다. 수천 년이 지나 우리의 이름조차 지워지는 때가 오겠죠. 그 때가 되어도 따뜻한 지하수는 산비탈을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석회석은 쌓여갈 것이고, 또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 사실에 저는 어쩐지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라져도 이 풍경만은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도 이 풍경을 지나는 조그만 흔적에 불과하다는 사실. 조급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묵칼레
ⓒ Widerstand
다만 배낭을 메고 길을 가고 있는 여행자를 위해 기꺼이 차를 세워준 어느 노부부의 선의를 생각할 뿐입니다. 어차피 무너진 흔적으로 남을 우리라면, 그저 서로에게 그런 선의를 베푸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천 년이 지나고 우리 모두가 사라졌을 때에도, 이 길을 지나는 인류가 서로에게 베풀 선의와 작은 신뢰를 상상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산의 석회처럼 남을 수 있는 유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최선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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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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