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 앞에서 선뜻 차를 태워준 노부부의 선의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튀르키예 셀축에서 기차를 타고 네 시간 정도를 달려, 이제는 아나톨리아의 내륙으로 올라갔습니다. 튀르키예는 철도 교통이 크게 발달한 국가는 아닙니다. 방대한 영토를 주로 버스가 연결하고 있죠. 하지만 이즈미르에서 셀축을 거쳐 데니즐리까지는 철도가 연결하고 있더군요. 망설임 없이 기차표를 구매했습니다.
데니즐리 역에서 내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저와 같이 무거운 배낭이나 캐리어를 든 여행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하에 있는 미니버스 터미널로 내려갑니다. 막 출발하려는 미니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 튀르키예의 기차 |
ⓒ Widerstand |
여기서 내리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돌아갈 때를 생각해 봐야 했습니다. 버스의 종점이 어디인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종점인 차고지가 가깝다면, 괜히 더운 길가의 정류장에서 오래 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차고지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라타 출발 시간까지 기다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오판이었습니다. 아까 막 출발하려던 미니버스를 바로 잡아서 탄 탓에, 버스 앞에 붙어 있던 목적지 안내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죠. 버스의 종점은 파묵칼레가 아니라 더 윗마을이었습니다.
▲ 길 한복판에 내렸다. |
ⓒ Widerstand |
잠깐 걸어 내려오니 흰색의 산기슭이 보입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흰 산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 산이 파묵칼레를 방문한 이유인데, 이런 방식으로 이 산을 처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파묵칼레 석회층 |
ⓒ Widerstand |
자동차의 창문이 열립니다. 어느 노부부가 앉아 있습니다. 저를 부릅니다. 튀르키예어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뒤에 타라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평소라면 안전 문제도 있고 하니 사양했겠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것을 따질 사정이 아닙니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올라탔습니다.
노부부는 아무 말도 없이 도로를 달렸습니다. 그리고는 파묵칼레 마을 입구에서 저를 내려주고는 저쪽으로 들어가라고 알려 줍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내렸습니다. 노부부는 다시 큰길을 타고 더 아래쪽으로 내려갑니다. 파묵칼레가 목적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 파묵칼레 |
ⓒ Widerstand |
석회석 위로는 따뜻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석회석은 매끄럽습니다. 거친 부분들도 있었지만, 또 수천 년의 퇴적과 침식을 거치고 나면 또 매끄러운 석회석이 되어 남겠지요. 맨발에 닿는 돌의 감촉과, 따뜻하게 감싸는 물의 감촉이 좋았습니다.
▲ 파묵칼레 |
ⓒ Widerstand |
시간은 2천 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었고, 기둥과 벽돌은 무너지거나 쓰러져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온천은 남았습니다. 석회의 산은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흰 산의 절경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습니다.
▲ 산 위의 히에라폴리스 유적 |
ⓒ Widerstand |
그 사실에 저는 어쩐지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라져도 이 풍경만은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도 이 풍경을 지나는 조그만 흔적에 불과하다는 사실. 조급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파묵칼레 |
ⓒ Widerstand |
수천 년이 지나고 우리 모두가 사라졌을 때에도, 이 길을 지나는 인류가 서로에게 베풀 선의와 작은 신뢰를 상상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산의 석회처럼 남을 수 있는 유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최선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법관 후보 총 18억 로펌의견서'...이건 엄청난 불공정이다
- 특별감찰관 안 두면 김건희 여사 일가 의혹 더 나올 것
- 천공 의혹보도 <뉴스토마토> 기자 4명 소환... 천공은 서면조사로 끝
- 오세훈과 국힘의 가위질...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 내게 쓰레기를 던지고 간 사람... 그때 복수 못 해 괴로웠다
- 원치 않는 임신... 모두가 '우영우 아빠'가 될 순 없다
- 삼성중공업에 노조 생겼다...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갈 것"
- 아름답고 경이로운 순간들, 춤으로 표현한 인천 시민의 미래
- 전국에서 모인 재난 참사 유족들 "이상민 탄핵" 촉구
- 박지원 "원희룡, 김건희에게 잘 보여서 차기대통령 해보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