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문제, 일본만의 문제일까
[박성우 기자]
▲ 박광홍,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제국 시대 일본군을 인터뷰하다> |
ⓒ 오월의봄 |
이 책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는 생존한 일본 제국군 히로토 아키라씨(해군), 기시 우이치씨(해군), 코타니 히로히코씨(해군 군속)를 인터뷰한 책으로 세 인물의 개인적인 체험과 <오마이뉴스>에서 '일본史람'을 연재 중이기도 한 저자가 설명해주는 당대의 배경설명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당대 일본 제국군의 망탈리테(심성)를 철저히 파헤친다.
책은 천황을 필두로 하는 일본제국의 국체사상이 집합의식으로서 어떻게 개인의식을 억압해왔는지 인터뷰이들이 전쟁 기간 겪은 상세한 경험들을 통해 풀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패전 이후 그들이 억압 속에서 동요해 온 개인의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또한 책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위 내용만으로도 이 책이 일본 제국군 개인을 심층적으로 파고든 훌륭한 저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책의 핵심내용은 바로 제목에 나오는 야스쿠니 신사를 다루는 대목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 참전자들에게 호의적인 까닭은
해군으로 복무한 두 인터뷰이는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이다. 기시씨는 "그렇게 배척할 만한 것은 아니다", "(유가족을 위로한다는 측면에서) 훌륭하다"고 호평했고 히로토씨는 "어느 나라든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을 위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두둔했다.
천황의 전쟁 책임이 없다고 단언하며 쇼와 천황을 "좋은 천황이셨다"라고 그리워한 기시씨는 물론이고 그와 정반대로 패전 이후 천황도 일개 국민이 된 현실을 두고 "무혈혁명"이라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히로토씨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호의적인 모습은 꽤 당혹스럽다.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를 향한 두 인터뷰이의 평가를 두고 "전시와 전후의 급격한 변화에도 전쟁 중에 주입된 의식이 여전히 개인의식에 남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평한다. 하지만 국체인 천황마저 부정한 히로토 씨조차 야스쿠니 신사를 긍정하는 모습을 전쟁 당시 주입된 집합의식에 의한 것만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시씨와 히로토씨는 이미 살아남은 사람들로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 숨 쉬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전쟁의 경험은 과거로 남을 수밖에 없다. 패전 이후 쉴 틈 없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전쟁은 더 이상 고귀한 헌신이 아닌 고요한 반성으로서 일본 사회에 표면상으로나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는 당연히 그들과 같은 주도적인 변화의 기회는 찾아올 수 없다. '신주(제국주의 일본이 자국을 신의 나라라고 일컫은 칭호)'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이들의 명예는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부정되었다. 이는 곧 그들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의 죽음에 무관심한 국가를 대신해 이들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신으로 모신 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였다.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할 전우들 때문이라도 기시씨도, 히로토씨도 야스쿠니 신사를 향해서 만큼은 호의적인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생존 일본군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호의적인 까닭은 전시 일본 사회가 주입한 의식의 잔재가 아니라 오히려 전후 일본 사회가 전사자들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즉 전후 일본 사회가 전사자들을 '국가를 위한 희생자'와 '국가에 의한 희생자' 중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전자로 대하길 택했기 때문이다.
고인 향한 일면적 규정으로 일본 사회 전철 밟지 않길
개인의 목숨을 천황과 국가를 위해 존속하게 한 일본의 국체 사상은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라는 말대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그들은 정말로 죽어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지는 걸 원했을까 아니면 살아남아 가족 품에 안기는 걸 원했을까.
있잖아요, 죽은 사람들은요, 그 당시에는 모두 "나는 나라를 위해서 죽어간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라를 위해 죽어간다고 하면서도 역시 부모님을 생각했지요. 네, 말로는 나라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속마음은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는 어떠실까?'라는 게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전후 일본 사회는 이러한 물음을 거부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평범한 젊은이들을 도조 히데키 등 전쟁 최고책임자 등과 함께 나라를 위해 죽은 호국신으로 규정한 채 야스쿠니 신사에 모셨다. 아니, 가뒀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이들의 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채 산 사람들의 잇속에 따라 입방아에 오르게 됐다.
현재 한국에서도 죽은 이들을 향한 국가적, 사회적 규정이 시작되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 장군을 두고 "이념과 진영에 따라 선대의 업적을 축소하거나 왜곡한다면, 우리에겐 기념할 그 어떤 역사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자유대한민국을 만드는 건국운동하고 일치되는 것"이라며 이념을 내세우며 독립운동가 배제를 얘기한 것과 모순된다.
전후 일본 사회가 국가폭력 피해자로서의 일본 제국군의 모습을 가리고 영웅으로 숭배한 것이 오늘날의 야스쿠니 신사 문제로 남아 있듯이 현재 보훈부가 양면적인 역사적 인물의 특정 모습을 가리고자 하는 시도 역시 후일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부의 공식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우리는 전후 일본 사회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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