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만 '이중과세 방지법' 시행 눈앞…반도체 기업 세부담↓

법제처, 양국간 '조세 이중과세방지·탈세예방법' 통과
"투자·교역 여건개선, 현지진출 기업 국내 면세 혜택"

한국과 대만 간 ‘이중과세 방지조약’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약이 발효되면 대만에 진출한 반도체 기업 등이 면세 혜택을 받게 된다. 표면적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을 견지하면서도 공급망 다변화 등 국익을 위해 대만과 물밑으로 협력하는 모양새다.

13일 기획재정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 10일 주(駐)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와 주(駐)한국 타이베이 대표부 간 ‘소득에 관한 조세의 이중과세 방지와 탈세 예방법’이 법제처 문턱을 넘었다. 오는 9월 국회에 법안이 제출되고 공포가 이뤄지면 법안의 효력이 즉시 발동된다.

관련부처 관계자는 “(대만과) 통상적인 정부 간의 조약을 맺을 수 없으니 경제나 문화 등의 분야에 한정해 약정을 맺고 국내법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한국에 들어온 대만기업의 세금 문제도 있어서 정부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고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경련과 대만국제경제합작회가 지난해 10월 공동 주최한 '제46차 한-대만 경제협력위원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해당 법안은 2021년 11월 한국과 대만 측이 합의한 과세 협정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만이 아닌 타이베이 대표부와 협정을 맺은 건 외교 문제 때문이다. 1992년 8월 한국이 대외적으로 대만과 국교를 단절한 이후 양국 대표부는 사실상 대사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조약도 국가가 아닌 민간 협정 형식을 띠고 있다.

협정을 적용받는 세목은 소득세·법인세·농어촌특별세·지방소득세다. 법안이 시행되면 부동산과 고정사업장에서 취득하는 이윤을 소득원천지에서 과세할 수 있게 된다. 가령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대만에 사업장을 두고 매출을 올리면, 세부담은 실질적으로 현지에서만 지면 되는 식이다. 또 상대국으로 지급하는 배당·이자·사용료는 총액의 10%를 넘지 않는 세율로 소득원천지에서 과세하고, 부동산 등 일부 재산을 제외한 양도소득세는 양도인의 거주지에서만 과세한다.

"투자·교역 여건개선, 현지진출 기업 국내 면세 혜택"

정부는 약정이행을 통해 한국 국민과 기업의 투자·교역 여건이 개선되고 시장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현지에 진출한 반도체·섬유·게임 기업이 사실상 국내 면세 혜택을 받으면서 수혜를 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수년간 이중과세 방지협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일본의 경우 2015년 협약을 통해 면세혜택을 누리면서 대만 수입 시장의 점유율을 10%대 중반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교역액을 꾸준히 늘려왔지만 대만 시장 점유율이 십수년째 6%대에 정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2월 23일 대만 재정부에서 우쯔신 재정부 상무차장 등과 만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번째, 당시 새누리당 의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016년 새누리당 의원 신분으로 협상차 대문을 방문해 한-대만 과세 협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당시 우쯔신 재정부 국세국 상무차장을 만나 “양측이 경제협력을 강화하면 전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제발전을 구가하는 좋은 경제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라면서 “협정은 때늦은 감이 있는데 마무리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과 대만 간 관계는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경제적 접촉을 늘리고 있다. 미·중 경쟁과 공급망 다변화라는 기류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6대 교역 파트너인 대만이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지난해 양국의 교역액은 564억달러로 전년 대비 11% 늘어났다.

대만 측도 한국과의 관계 강화를 희망하고 있다. 지난 2월 량광중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는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한국과 대만이 견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더욱 호혜적인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