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채의 덫]①대부업서 사라진 150만명, 어디로 갔나

심나영 2023. 7. 1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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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최고금리 계속 내려가자
합법 대부업체 문닫고 대출 안해
서민들만 불법 사채로 내몰려

150만명. 웬만한 광역시 인구다. 지난 6년 동안 증발한 대부업 이용자 숫자이기도 하다. 대부업자에게 손을 벌리는 사람이 줄어든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표정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대부 시장은 대부업법에 따라 등록하고 금융당국의 관리를 받는 합법 영역에 있다. 심지어 저축은행이나 캐피털론과 똑같은 수준의 법정최고금리 규제를 받는다. 반면 영화 범죄도시에서 나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조선족 사채업자는 말 그대로 불법 사채업자다. 둘은 완전히 다르지만, 밀접한 관계에 있기도 하다. 합법 대부업에서 돈을 못 빌리면 불법 사채로 바로 내몰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과 대부업계가 사라진 150만명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감독원의 '등록 대부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대부업 이용자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249만5000명을 찍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98만9000명으로 떨어졌다. 6년 동안 줄어든 대부업 이용자만 150만 6000명이다.

같은 기간 대부업 대출 규모를 보면 특이한 점이 또 있다. 담보대출(3조395억원→8조9048억원)은 증가했지만, 개인 신용대출(12조3957억원→6조9630억원)이 반토막 났다. 즉 '담보도 없고 신용도가 낮은데 급전은 필요한 사람들이 합법 대부업에서 밀려났다'는 의미다.

이재선 한국대부금융협회 전무는 "대부업 이용자는 신용평점 하위 20%인 저소득층"이라며 "사라진 150만명이 갑자기 살림살이가 좋아졌겠냐, 정부 정책대출을 받았겠냐. 아니다. 불법 사채시장으로 넘어갔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민생금융국 관계자도 "대부이용자 수가 줄고 1인당 대출액과 연체율이 오르는 추세를 볼 때 대부업 시장에서 소외된 저신용층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 최고금리 탓에 망가진 합법 대부업체

대부업은 망해가고 있다. 이용자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는 걸 보면 그렇다. 신용도 낮은 서민들이 마지막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합법 금융시장인 대부업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업계는 법으로 정해놓은 최고금리를 원인으로 꼽는다. 2010년 49%였던 법정최고금리는 현재 20%까지 낮아졌다. 대부업체들이 마진이 줄어드는 구조에도 몸집을 키우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법정최고금리가 27.9%였던 2017년까지였다. 2018년 24%로, 2021년 20%까지 떨어지며 대부업체들도 함께 나가떨어졌다.

이 전무는 이 현상을 최저임금 인상에 비유했다. "서민들 위한다고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올려주니까 오히려 가게 사장들이 사람들을 잘라버렸어요. 대부업도 똑같습니다. 서민들 위한다고 무작정 국회에서 금리를 내리니까 대부업자들이 마진이 남지 않아서 못 버티고 엑소더스 했어요. 1위 산와머니, 2위 러시앤캐시, 3위 웰컴까지 다 문을 닫았습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서민들이 대부업에서 돈을 못 빌려서 사채시장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현재 법정최고금리 20%도 너무 높은 수준이 아닐까. 대부업자들은 '대출 1억에 대한 20%'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한 대부업 관계자는 "개인 신용대출 첫 거래의 경우 대부분 500만원 이하다. 6개월 정도 이자 연체 없이 잘 갚으면 증액해 주는데 그래도 한도가 1000만원을 넘지 않는 게 이 업계의 '국룰'"이라며 "금리 20%짜리 500만원 대출이면 한 달 이자가 8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부업은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에서 연 9~10%짜리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한다. 여기에다 10%에 달하는 연체율로 인한 대손상각, 대출모집인 수수료, 운영비까지 더하면 금리 20%로도 남는 게 없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작년처럼 기준금리가 치솟을 때 조달금리는 더 오른다. 이럴 때도 최고금리는 그대로이니 대부업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대출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거나.

국회도 150만명 외면…불법 사채업자 배만 불려

서민 대출 숨통을 틔우려고 금융위원회가 나서기도 했다. 올해 초 금융위는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법정최고금리를 올리자고 건의했었다. 금융위가 대부업법 시행령을 자체적으로 고치면 법정최고금리를 27.9%까지 올릴 수 있지만, 금리는 워낙 민감한 부분이라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손사래를 치며 반대해 무산됐다. 자칫 여론이 잘못된 신호로 읽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계산된 외면이었다.

결국 대부업 시장에서 사라진 150만명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혀버렸다. 그 사이 불법 대부업 피해 신고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미등록대부·최고금리 초과·불법 채권추심 피해 신고가 지난해 1만 913건으로 전년(9918건) 대비 12% 증가했다고 밝혔다. 불법 사금융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3억원 빚이 있던 강모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업사 운영비가 필요했지만 대부업체에서 대출이 안 나오자 인터넷 대출 사이트를 통해 95만원 단기 급전(계약서상 140만원 대출)을 사용했다. 상환이 지체되자 불법 사채업자는 연장비 명목으로 10차례에 걸쳐 182만원을 받고도 원금은 미상환됐다며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에 불응하자 심한 욕설을 하며 가족들도 협박했다."(지난해 한국대부업금융협회에서 신고 받아 채무조정 한 사례)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대부업 잠재고객인 신용등급 하위 20% 인구(신용거래고객의 신용점수별 인원분포 기준)는 420만2242명으로 추산된다. 합법 대부업에서 급전 대출에 실패하면 불법 사채시장에 가야 하는 위기에 늘 놓여있는 사람들의 숫자이기도 하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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