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 비아냥 차버렸다…중·러에 맞짱 뜨는 '나토의 다윗'

박소영 2023. 7.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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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발트해의 소국 리투아니아가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품으며 국제 정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2일(현지시간)까지 이틀간 수도 빌뉴스에서 나토 정상회의를 개최한 리투아니아는 한반도 면적의 30%, 인구는 280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립한 지 32년, 나토 가입 후 19년 만에 31개국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 정세가 혼란한 가운데 리투아니아는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유럽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왼쪽),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지난 11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빌뉴스에서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만난 후 “과거 미국 의회에서 나토 확장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나는 가치가 매우 높았던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국가들이 나토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면서 “(지난 4월 가입한 핀란드를 포함한) 31개 회원국이 처음으로 모이는 중요한 시기에 역사적인 정상회의를 개최한 리투아니아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나우세다 대통령은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는 (러시아·벨라루스 등) 적대국들과 절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상징적인 행사로, 나토가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 합의가 이뤄지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 등 중요한 의제가 논의되는 올해 나토 정상회의를 리투아니아가 개최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위상을 떨쳤다고 보도했다.


강대국 중·러에 맞선 작은 나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러시아 등과 미국 등 서방의 갈등이 커지면서 ‘골리앗’ 중·러에 맞서온 ‘다윗’ 리투아니아는 동맹국의 안보와 이익을 보호한다는 나토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국가로 부각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가 외교 무대에서 주목받게 된 건 지난 2021년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다. 리투아니아는 그해 5월 중국과 중·동유럽 국가 간 ‘17+1’ 경제협력체에서 탈퇴한 뒤 자국민에게 검열 기능과 보안 결함을 이유로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촉구했다. 11월엔 유럽 전역을 통틀어 18년 만에 빌뉴스에 대만 외교공관인 ‘대만대표부’를 신설했다.

지난 2021년 11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신설된 리투아니아 대만대표부 사무실 앞에 달린 현판. AFP=연합뉴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자치권을 부정하고 있는 중국은 물론 반발했다. 당시 중국 관영매체와 평론가들은 리투아니아를 ‘쥐’, ‘쥐똥’에 비유하는 언사를 퍼부었다. 중국 정부도 리투아니아의 대사관을 대표부로 격하하고 영사 업무를 중단하는 한편 리투아니아행 화물 열차 운행을 중단하고 수입품 통과를 거부하는 등 무역 제재까지 단행했다.

중국의 경제보복에 당시 여론조사에서 리투아니아인 60%가 정부의 대(對)중국 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중국은 정치적 요구가 있을 때마다 힘을 휘두르고 모두 거기에 동조하는데, 이건 우리가 생각한 세상이 아니다”(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당시 외교부 장관)며 물러서지 않았다.

전유진 기자

리투아니아의 '배짱 외교'는 러시아에도 적용됐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리투아니아는 빌뉴스 주재 러시아 대사관 거리 이름을 ‘우크라이나 영웅로’로 바꾸고 러시아 국영 미디어를 금지했다. 지난해 6월엔 러시아 본토에서 서부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주(州)로 가는 러시아 화물 열차가 유럽연합(EU) 제재 대상 화물을 실었다는 이유로 자국 통과를 저지했다. 칼리닌그라드주가 고립될 위기에 처한 러시아가 “적대 행위”라며 반발했다. EU의 중재로 일단락됐지만, 러시아 해킹그룹 킬넷이 리투아니아 정부기관과 교통기관 등에 대대적인 사이버 공격을 가하는 등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됐다.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군사·인도·재정 지원 총액이 10억 유로(약 1조4200억원)로 리투아니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한다. 지원국 중 GDP 대비 최대 규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리투아니아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여전하다. 지난 2월 유로바로미터 여론조사에서 리투아니아인 90% 이상이 우크라이나 지지에 찬성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과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1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리투아니아 국민 앞에서 연설 후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러가 자극한 리투아니아 독립심

중·러에 주눅들지 않고 맞서는 리투아니아의 민족주의 정서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 강점기로 점철된 근대사에 기원한다. 1865년 당시 리투아니아를 지배한 러시아 제국은 강력한 문화 말살 정책을 폈다. 징병제에 대항한 리투아니아 청년들의 무장봉기를 진압한 러시아 제국은 40년간 리투아니아어 사용과 교육을 금지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은 비밀조직을 통해 동프로이센 등 이웃나라에서 책을 제작해 도시 곳곳에 실어날랐고, 지하 교육시설과 가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언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이 무너지자 잠시 독립했던 리투아니아는 2차 대전 이후 독소불가침 조약 등의 결과로 1940년 소련에 병합됐고, 이듬해엔 나치 독일에 점령 당했다. 1944년 리투아니아를 다시 차지한 소련은 나치 잔당을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최소 13만명 이상을 노동교화소, 쿨라크(정치범수용소), 시베리아 등으로 추방하거나 강제 이주시켰다.

1989년 발트 3국 국민들은 도로에 늘어서서 각국 수도를 잇는 600km가 넘는 거대한 인간띠 '발트의 길'을 만들었다. 세계 독립운동사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소련의 서슬퍼런 압제를 40년 이상 견뎠던 리투아니아는 1989년 소련 붕괴를 앞두고 독립 의지를 세계에 과시했다. 같은 처지인 라트비아·에스토니아 국민과 함께,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까지 이어지는 675.5㎞길이의 인간 띠를 만들었다. 세나라 인구 3분의 1이 동원된 이 캠페인은 ‘발트의 길’이라고 불렸고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독립을 선언했고, 1991년 9월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독립 뒤 러시아가 주도한 독립국가연합 참여를 거절하고 바로 UN에 가입했고, 1994년 구소련 국가 최초로 나토에 가입 신청했다.

박경민 기자


러와 밀착한 中도 비호감 전락

중국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악화된 계기도 리투아니아의 역사와 관련 있다. 2019년 3월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홍콩인들은 손을 맞잡고 60㎞의 인간 띠를 잇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리투아니아의 ‘발트의 길’에 대한 ‘오마주’(homage·존경의 의미를 담아 모방하는 것) 성격이었다.

이에 감동한 리투아니아 국민은 그해 8월 빌뉴스에서 중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홍콩 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아울러 홍콩 시민을 응원하는 문구를 담은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민족의 성지(聖地)인 ‘십자가 언덕’에 세웠다. 그런데 한 중국인 관광객이 이 십자가를 훼손하고 리투아니아를 모욕하는 문구를 쓴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졌다. 리투아니아 국민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 중국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반중 정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 2019년 11월 리투아니아의 민족적 성지 '십자가 언덕'에 중국인 관광객이 홍콩을 지지하는 이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문구를 낙서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러시아와 더욱 밀착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한 무리로 여기게 됐다. 전쟁 발발 후 조사된 발틱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리투아니아인 64%가 중국이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콘스탄티나스 안드리야우스카스 빌뉴스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서로 별개로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리투아니아도 한때 경제적 혜택을 위해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참여하길 원했지만, 지난 2017년 중국이 처음으로 러시아와 함께 발트해 훈련에 참가하자 태도를 바꿨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 등 인권 유린 사태를 보면서 리투아니아인들은 구소련의 독재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이 가했던 공포 정치를 떠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리투아니아 편에 美·EU 섰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리투아니아의 거침없이 행보엔 미국과 EU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EU 입장에선 대표적인 친러시아 국가이자 러시아 서부 진격의 발판인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투아니아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리투아니아가 중·러와 충돌할 때마다 앞장서서 리투아니아를 감쌌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우리는 리투아니아를 지지한다”며 “나토조약 제5조(집단 방위)는 철통같이 지켜질 것”이라고 했다. 11일 바이든 대통령도 “리투아니아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U는 지난해 1월 중국이 리투아니아에 정치적 문제로 불공정한 무역 행위를 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리투아니아 편에 서고 있다.

중국의 무역 보복 조치에 대한 피해는 태평양 국가와의 교역 확대로 메울 수 있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리투아니아와 한국·호주·일본·싱가포르 등의 교역은 전년도에 비해 40% 증가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리투아니아에 대한 수출 금액은 전년 대비 71%, 수입 금액은 12%가 증가했다. WP는 리투아니아 정부 문서를 인용해 "중국이 리투아니아에 경제적·외교적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리투아니아는 사회적 회복력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으면 경제적 협박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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