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바꿀 동력은 치명적 선거 패배, 가능할까?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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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와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폴란드 방문을 위해 10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후 단지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라고 해서 행정부 특징 전반을 검찰 통치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질문이 많았다. 사실 행정부의 성격을 정의하려면 단지 대통령의 출신 배경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필자는 전반적으로 윤석열 행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와 담론(헌정주의와 법과 질서론), 통치의 방식(의회와 논의하기보다는 수사와 기소를 중심으로 국정운영)과 핵심 행위자(검사+관료 동맹) 등에서 검찰 통치가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노선에서 강조하는 헌정주의 메시지에만 국한해서 살펴본다. 주장의 핵심은 그의 헌정주의가 원래 취지에도 맞지 않고, 나아가 민주주의와의 긴장이 사라진 위험한 제왕적 통치체제라는 점이다.
윤석열 헌정주의, 강자 이익 견제하는가?
'헌정주의'란 국가가 헌법이 규정한 법의 원칙에 따라 통치되는 걸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이 가치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소명으로 강조해왔다. 검찰총장 취임사는 그가 검찰총장 시절이나 대통령으로서 중요시하는 가치를 잘 표현한다.
"형사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이고 가장 강력한 공권력입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톰 긴즈버그 시카고대 교수 등에 따르면 이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와 개인 존엄성의 보호, 그리고 법적 지배의 3가지 축이 원활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의 지배'란 원래 고전적으로 더 힘이 센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여 공동체 내의 공정한 균형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배태되었다. 그래서 고전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는 강자에게는 더 많은 형량을 부과하는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강조했다.
흔히 보수 우파로 분류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 국무회의에서 부자와 같은 강자들은 더 많은 교통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검사가 검찰총장에 이어 대통령이 된 과정도 강자와 싸우는 강골 검사이자 공동체 정의를 수호하는 공정한 법 집행자의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대선 주자로 부상하게 된 브랜드의 핵심이다.
사실 특정 사람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시스템에 대한 충성은 법의 지배에 기초한 헌정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반(反) 헌정주의자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 지방 행정부 등에 자신에 대한 무조건 충성 맹세를 강요했다.
반면에 바이든 행정부는 최소한 국내 정치에서는 강자에 대한 견제 및 공정하고 적법한 과정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심지어 바이든은 정치에서 가장 강자라 할 수도 있는 현직 대통령이면서도 자신의 비밀 자료 누락을 수사하는 특검 임명과 수색에 있어서 오히려 적극 협조하고 있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 측근이 아니라 초당적으로 존경받는 메릭 갈랜드 판사를 임명했고 철저하게 법의 논리만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지금 연방 차원의 법무부는 물론이고 맨해튼 지방검찰청 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했지만 여론 재판을 하지 않고 법치의 핵심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며 적법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 기소에 열정적인 민주당 내 진보파들은 갈랜드 법무부 장관에 매우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주당 소속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장은 트럼프에 대한 수사를 늦춘다고 일부 검사들이 사표까지 낼 정도이다. 이러니 기소를 결정하는 시민배심원단에 권력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다.
반면에 윤석열 행정부는 대통령 가족과 주변 핵심 인사에 대한 감사를 담당하는 특별 감찰관 임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또한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최측근들이 법무부 장관을 차지하고 대통령실은 물론 행정부 전반에 포진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가공할 만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검찰에 대한 인사권을 통해 수사에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다른 부처의 인사 실무까지 지휘한다.
지금 검찰은 과거 검찰들의 기계적 균형 시도조차 버리고 야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에 주로 집중하고 있다. 윤 대통령 등은 최종 판결이 나기도 전에 이들을 단지 혐의자가 아니라 이미 범죄자로 단정하고 정치적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이렇게까지 행정부 내 견제와 균형이 파괴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불법 기밀 반출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6월 13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자신의 전용기에 오르며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다. 국방 관련 기밀 정보를 의도적으로 보유한 혐의를 비롯해 총 37건의 법 위반 혐의로 연방 검찰에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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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횡포를 견제하고 불편부당하게 통치한다는 헌정주의의 원래 문제의식을 윤 대통령이 구현하지 못하는 점과 함께 헌정주의란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는 인식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점도 매우 위험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내 노선이든 국제관계이든 헌법의 가장 근간인 헌정주의 위의 통치자의 고독한 결단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이한 것은 과거 윤석열 검찰총장은 진중권 평론가와의 대화에서 칼 슈미트와 같은 독재 시절의 결단주의 패러다임이 가지는 후진성을 잘 지적한 바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윤석열 행정부의 통치는 오히려 슈미트 시각과 유사하게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중의 역사적 과제로서 교육, 연금, 노동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부문의 개혁 필요성은 초당적으로 공감대를 얻는 이슈라는 점에서 대통령다운 적절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과제를 위해 자신의 역사적 결단을 강조할 뿐 의회 내에서 초당적 기반을 형성하려는 치열한 노력은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은 전통적 노동운동 진영 전체를 마치 칼 슈미트의 친구와 적 이분법 구분처럼 '건폭'으로 규정하고 범죄와의 전쟁 같은 양상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극우적 조직인 자유총연맹 행사에서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는 반국가 세력들과의 싸움을 강조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그 세력이 누구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용한 단어의 맥락을 고려하면 평화 공존 노선을 추구한 문재인 전 정부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놀라운 건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거 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정치적 단어가 '국민과의 소통' 및 '초당적 협력'이었다는 점이다. 국민과의 소통이란 민주주의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는 문재인 행정부와 달리 빈번한 소통을 통해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강력한 의지를 표방한 바 있다. 더구나 작년 5월 국회 연설에서는 영국의 초당적 좌우 연정을 자신의 정치 모델로 표명하기까지 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과의 투쟁이라는 슈미트적 적대 메시지를 강조하고 집권당을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어 야권을 적대시하는 것은 그의 헌정주의 소신이 민주주의 사상으로 철저히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지난 1년간의 현실을 보면 윤석열 행정부는 '헌정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균형과 긴장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매우 희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은 단지 헌정주의가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이다. 법적 지배를 강조하는 헌정주의는 민주주의와 반드시 함께 가면서 때로는 역동적 긴장을 이루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국가적 정체성이자 원칙이다.
따라서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법관들이 선거와 의회 과정을 결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수도 이전을 시민들 간의 공론과 시민들이 선출해 구성한 의회의 입법 과정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라는 희한한 논리로 결정했던 사례는 사법부의 민주주의 훼손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의회 다수가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검수완박)하면서 경찰의 수사권을 견제하는 힘을 약화시켜 이로부터 시민들이 민권을 훼손당할 가능성을 높인 것은 헌정주의의 원리를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헌정주의와 시민주권 간의 영원한 긴장은 마치 부단히 떨리는 나침반처럼 민주공화국의 길잡이다.
이 시민주권의 사상으로서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 절차의 공정성만을 의미하는 최소 규정보다 더 풍부한 함의를 가진다. 즉 선거에서 확인된 민의를 존중하고 다수와 소수 등 다양한 세력들이 부단히 논쟁하고 타협하며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갈등적 합의'(샹탈 무페의 표현)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반대자에 대한 적대적 낙인, '범죄와 처벌(crime and punishment)'의 패러다임, 그리고 엄격한 법률적 해석 및 의회에서의 민주 과정보다는 본인의 역사적 결단과 반국가 세력과의 투쟁을 강조한다. 이는 애초에 오랜 특수부 검찰 경험을 가진 그가 헌정주의와 민주주의의 긴장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에 대한 협소한 시야를 가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
ⓒ 유성호 |
윤 대통령의 헌정주의에 대한 특정한 관념은 수십 년의 위계적인 특수부 검찰 경험에서 형성되었기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 바꿀 수 있는 핵심 동력은 민주 국가에서 중요한 견제 기능을 담당하는 선거에서의 운명이다. 선거에서 치명적 패배를 당하면 누구이든 국정기조를 바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1년 남짓 지난 행정부이기에 이에 힘을 실어주려는 여론도 상당할 수 있다. 더구나 선거는 상호 게임이기에 다른 하나의 동력으로서 야권이 새로운 역동성을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은 이 헌정주의와 민주주의 측면에서만 한정해 보더라도 그리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자기 진영에도 엄격하고 공정한 법과 도덕의 적용 과정과 폭넓은 시민의 민주적 참여라는 가치에서 그리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도전자로 나선 소위 제3당 운동들도 현재까지는 유권자들에게 그리 대안적 가치와 세력으로 정립되고 있지는 못하다.
미국의 바이든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미국 민주당이 지속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내부 분파들의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헌정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에서는 강한 소신과 합의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력적인 인물도 부족하고 국정 운용 성과도 별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지만 최소한 내로남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서 다음 선거에서도 박빙이 예상되지만 희망이 존재한다.
미국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이상적 기준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민주공화국 가치에 대한 소신과 적용의 노력 없이 현 검찰 통치를 근본적으로 견제하거나 선거에서 여유 있게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현재의 검찰 통치를 변경시키려면 기존 야권 내부와 외부에 새로운 가치와 신뢰할 만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성장하여 기존 정치 질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 세력은 국내외에서 헌정주의와 민주주의의 대안적 가치와 어젠다(다른 표현으로는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로 기존 정치권에 전면적 노선 경쟁을 제기해야 한다. 윤석열 행정부의 헌정주의론 대 야권의 정치검찰 탄압론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축을 만들어 내야 한다.
▲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
ⓒ 안병진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안병진은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입니다. <중앙일보>와 <중앙선데이> 정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관심은 한국과 미국의 공화주의 및 자유주의 민주 정치의 비교입니다. 주요 저서로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공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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