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R&D 예산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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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구·개발(R&D)에 투입되는 나랏돈은 31조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R&D 예산을 원점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해 보건의료 분야 R&D 사업 예산이 과기정통부와 복지부가 6900억원대로 똑같은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 지시대로 단 두 달 만에 30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R&D 예산을 다시 '제대로' 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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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구·개발(R&D)에 투입되는 나랏돈은 31조원이다. 국가 전체 예산(638조원) 대비 5% 정도 되니 적은 돈이 아니다. R&D 예산은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로 부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R&D 예산을 원점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민간이 하기 힘든 분야에 대한 국가의 전략적 투자 성격인 R&D 예산은 과거 큼직큼직한 성과를 도출했다. 1980년대 D-RAM 기술 개발로 한국 반도체산업 육성 계기를 마련했고 90년대 CDMA 기술, 2000년대 LCD 기술은 모두 국가 R&D 사업의 성과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국가 R&D 사업은 이권 카르텔과 나눠먹기식 관행이라는 문제점만 부각될 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R&D 사업이 이처럼 성과 없는 함정에 빠진 이유는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불합리한 R&D 예비타당성(예타) 제도를 꼽고 있다.
예타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예산을 투입할지 말지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다. 처음에는 도로 개발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만 해당됐는데 2008년부터 R&D 예산도 적용 대상이 됐다. 언뜻 생각하면 줄줄 샐 가능성이 다분한 R&D 예산을 사전에 꼼꼼히 점검하는 예타 제도가 필요할 듯 보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도입 이후 15년 동안 예타 제도 부작용으로 인해 국가 R&D 사업은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R&D 예타는 도전적인 R&D 사업에 대해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다. 성과가 명확한 SOC 사업에 적용하는 경제성 분석(B/C·비용 대비 편익)을 R&D 사업에도 적용하면서 혁신적 사업일수록 ‘경제성 없음’ 결론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평가 주체도 특정 부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주무 부처의 논리는 무시되기 일쑤다. 한 예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신청한 ‘제2기 연구중심병원 R&D 사업’은 예타 심사에서 탈락했다. 바이오헬스가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진료 위주 병원을 연구 중심으로 키우기 위한 국가 전략사업이지만 과기정통부 측은 1기 사업의 성과가 부진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 사업을 보류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국가 R&D 예산이 필요한 수요자들이 주무 부처보다는 힘 있는 R&D 총괄 부처인 과기정통부에 줄을 선다. 그 결과 지난해 보건의료 분야 R&D 사업 예산이 과기정통부와 복지부가 6900억원대로 똑같은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어디에도 소관 부처를 배제한 특정 부처가 R&D 예타를 주도하는 경우는 없다.
결국 예타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부처들은 ‘R&D 사업 쪼개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500억원이 들어가야 할 사업을 예타 심사 대상이 되는 300억원을 넘지 않기 위해 250억원짜리 사업 2개로 나누는 식이다. 이런 소형·파편화는 과거 예타 도입 이전과 같은 대형 성과 창출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평균 2년이 넘는 예타 소요 기간과 기업·시장 등 수요자 위주가 아닌 학계 위주의 학문적 관점 심사 관행도 R&D 예타 제도의 폐해로 지목된다.
윤 대통령 지시대로 단 두 달 만에 30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R&D 예산을 다시 ‘제대로’ 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은 장기적으로 R&D 예산 편성에 함정 격인 예타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지 검토할 때다. 정부가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세계적 수준의 공동 연구와 민간 주도 R&D 확대 같은 청사진도 좋지만 정부 내부의 싱크홀을 메우는 일이 우선일 듯싶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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