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의 가장자리] 삭제해도 피어나는 꽃
다크투어(Dark Tour)는 끔찍하거나 역사적 사건이 있던 공간을 찾아가는 답사를 뜻한다. 지금도 몇 명일지 모를 유대인이 학살당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십 명이 총살당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제주도 곤을동 마을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다크투어를 하면, 두 가지 대립을 마주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비극적 장소를 삭제하려는 ‘삭제의 죄악’, 반대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는 ‘기억의 복원’이 충돌한다. 삭제의 죄악을 극복하고 기억의 꽃을 피워내는 과정에, 짐승이 아닌 인간 역사를 위하여 고통의 구심점 ‘곁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
「 간토대지진 학살 100주기 맞아
조선인 희생자 기리는 일본인
한·일간 더는 비극이 없기를…
사랑은 처절하게 발명하는 것
」
올해 9월 1일은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 조선인 학살 100년이 되는 날이다. 간토학살로 줄여 말하는 이 사건은 지진이 일어나고,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불안에 떨던 일본인이 9월 1일 밤부터 6일까지 6000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했던 사건이다. 이에 100년 전 간토학살의 비극을 영원히 기억하여 절대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는 일본인이 있다. 역사의 현장에 반기를 들고 참여하는 일본인이 있다.
현재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 자리는 본래 육군 군복을 만드는 공장터였는데, 간토대지진이 있기 전 이전을 하여 그 자리는 넓은 공터가 생겼다. 지진이 일어나자 약 4만 명의 사람들이 이 공터로 모였는데, 불회오리 바람이 덮쳐 무려 3만8000명이 이 공원에서 사망한다. 간토대지진 사망자 5만8000여 명 중 65%가 사망한 장소이다.
불안해진 일본인의 화살은 조선인에게 향했고, 그런 이유로 학살당한 셀 수 없이 많은 조선인을 추모하는 ‘간토대진재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을 1973년부터 50년 동안 매년 9월 1일 진행해온 일본인이 있다. 일본과 조선의 평화를 바라는 일조협회, 그 도쿄도 연합회장인 미야카와 야스히코(宮川泰彦·사진) 선생은 고령에도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죽였다니 일본인이 그럴 리가 없다며,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비극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불과 20여 년 전, 2000년 4월 9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일본이 혼란이 일어나면 조선인을 포함한 삼국인이 위험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현재 도쿄도지사인 고이케 유리코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인 학살 사건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죠.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이 자리에서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시끄럽게 헤이트 스피치(혐오연설)를 하는 일본의 극우들도 어떤 계기만 있다면 100년 전 자경단처럼 끔찍한 폭력을 행할 수도 있다.
1982년 조선인 학살사건을 접한 메이지 대학 4학년 학생이 있었다. 진상규명과 추도행사를 지속해온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사단법인 봉선화 이사는 비극을 애도하는 일에 40년 넘게 사비를 쏟아가며 헌신한다. 한국에서 비극의 장소를 찾아온 방문객을 위해 그는 조선인 학살지 아라카와(荒川) 강변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설명했다.
이 글을 쓰는 7월 7일,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교수)이 진행하는 일본 속의 항일운동 공간을 찾아가는 사흘간의 답사여행을 마친 나는 심야에 이 글을 쓴다. 우토로 마을, 윤봉길 의사 암장지,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미쓰비시 채석장, 독립선언문을 낭송했던 곳, 간토학살이 있던 곳,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변호했던 후세 다츠지 변호사의 묘지 등 다시는 한·일 간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일본인들과 그 공간을 걸었다.
일본 시민들과 함께한 이번 답사는 숫자는 적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일본인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 수는 적지만 열정은 놀라운 정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에서 열린 한일 심포지엄에서 “일본 시민운동은 힘이 없으니, 아예 연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는 대경실색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며칠간 나는 삭제의 죄악, 곁으로 가는 동행, 그 연대를 통해 이어지는 기억의 꽃을 보았다.
미야카와 선생이나 니시자키 선생 같은 분을 뵈면, 연구실에 갇혀 편하게 공부하는 가벼운 공부가 한없이 부끄럽다. 보고 아는데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사랑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발명된다. 사랑의 발명을 향해 희생되고 애써온 구도자들을 만나며 동행한 시드니대학 이다은 학생은 이 현장을 알리겠다며 눈물을 흘린다. 한편으로는 믿음직하고 든든했다.
다크투어는 단순히 끔찍한 곳을 확인하는 스릴러 여행이 아니다. 곁으로 가는 동행, 그 희미한 희망을 향해 나도 기억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야말로 다크투어의 알짬일 것이다.
김응교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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