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퍼스펙티브] 사우디·이란 국교 정상화, 그래도 갈 길 먼 중동 평화
중동에 이는 화해 바람
중동 정세를 잘 모르는 사람은 화해의 악수보다도 “이렇게나 많은 나라가 그동안 서로 척지고 있었던가?” 하고 놀란다. 또 여러 나라가 관계를 개선했거나 하려고 시도하는 나라가 시리아라는 사실에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복잡한 사연의 주인공이 시리아인 이유는 이란의 중동 지역 내 영향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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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 지난 3월 이란과 적대관계 끝낸 데 이어 시리아와도 화해
이집트·튀르키예 관계 정상화 등 적대적 국가간 해빙 무드 본격화
국제전 양상 시리아 내전이 변수…각국 이해 얽혀 정리 쉽지 않아
미군은 이라크 접경서 이란군 진입 막고 시리아는 미군 철수 요구
」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란 영향력 커져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였다. 아랍 순니(20%), 아랍 시아(60%), 쿠르드인(20%)으로 구성된 이라크에서 소수 순니파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 친이란 시아파가 권력을 잡아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 우려하여 사우디는 미국을 말렸다.
2005년 1월로 예정된 의회 선거에서 시아파가 승리하도록 이란이 돕고 있다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던 2004년 12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가 이란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를 시리아, 헤즈볼라, 레바논의 관계에 비춰보면, 걸프 국가는 물론 (중동) 지역 전체를 매우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초승달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란 주도의 ‘시아 초승달’ 탄생을 걱정하였다. 결국 사우디와 요르단의 불길한 예감대로 판도라 상자가 열려 역내 질서가 무너지고 이란은 아랍국가의 공적이 되었다.
사실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이라크)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어 주변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이맘 알리의 무덤이 있는 이라크 나자프와 함께 카르발라는 시아파의 3번째 이맘 후세인이 순교한 성지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건재하는 한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었는데, 이란이 ‘거대한 악마’(Great Satan)라고 부르는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준 덕에 테헤란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시아 초승달’을 ‘이란의 육교(Iranian land bridge)’라고 부르기도 한다. 테헤란에서 지중해까지 이란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통로다. ‘시아 초승달’로 부르든 ‘이란의 육교’로 부르든 간에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란은 아라비아반도 북부에 진격할 공간을 만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물리친 ‘친이란’ 헤즈볼라
2006년 7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남부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맞닿는 국경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죽이고 2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34일간 전쟁이 벌어졌다. 헤즈볼라의 공세로 이스라엘 민간인 43명, 군인 1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규군도 아닌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이 처참하게 당한 것이다. 로켓 3970기가 이스라엘 땅에 떨어졌고, 이스라엘이 입은 경제 손실은 16억 달러에 이르렀다. 억압받는 자를 해방한다는 혁명 정신에 따라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해체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이란이 만들고 지원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의 무패 신화를 깼다는 선전전이 반이스라엘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혔다.
이란은 2006년 헤즈볼라의 무공을 예로 들면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국경선은 헤즈볼라의 거점인 남부 레바논이라고 자랑했다.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하는 이스라엘군이 이란군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최전선인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과 총을 겨누고 있는 ‘왕관의 보석’ 헤즈볼라에 자금과 무기를 건네려면 반드시 시리아를 확보해야 한다. 시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레바논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리아 붕괴에 함께했던 아랍국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은 종교적으로 알라위파로 넓은 의미에서 시아파에 속하긴 하지만, 시리아와 이란은 종교가 아니라 반미·반이스라엘 연대감으로 뭉친 나라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시리아 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이란은 전력을 기울였다. 2020년 미국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폭살한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부대 ‘고드스(예루살렘)군’ 사령관 솔레이마니가 시리아를 지키며 ‘시아 초승달’ 수호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란이 시리아를 지킬 때,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는 시리아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온 힘을 기울였다. 시리아 내전이 국제전이 된 이유다.
22개 아랍국가가 아랍의 대의에 맞게 의견을 조정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아랍연맹은 시리아가 2011년 ‘아랍의 봄’ 바람을 탄 반정부 시위를 가혹하게 진압하고 아랍연맹이 제시한 평화안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11월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였다.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확장하였는데, 이란의 지원과 러시아의 개입으로 시리아 정부는 12년째 건재하다.
반정부군 편에 섰던 아랍에미리트가 2018년 먼저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올해 2월 대지진 참화를 계기로 시리아를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지면서 사우디가 지난 4월 시리아와 대사급 외교를 재개하고 항공로까지 열기로 합의하며 시리아를 다시 아랍연맹의 품으로 보듬으려 움직였다. 물리적으로 싸워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뜻이다. 시리아 주민들에게 지진은 악몽이었지만, 알아사드에게는 기회의 창이 된 셈이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 갈등
아랍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대응하고자 지난 5월 3일 이란 대통령은 13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시리아를 방문했다. 이에 뒤질세라 5월 7일 요르단 주도로 아랍연맹은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되살렸다. 미국과 서유럽은 아랍연맹이 자국민 50만 명을 죽인 독재자를 인정하고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되살리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고 외쳤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회원 자격 부활 이전에 이미 여러 아랍국가와 시리아가 외교관계 정상화나 관계 회복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주 후인 5월 19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제32회 아랍 정상회담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복귀 무대를 화려하게 꾸며 주었다. 한껏 고무된 알아사드는 외세 개입 없이 아랍이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는 역사적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란과 러시아와 혈맹을 맺고 아랍 형제를 저버린 자의 오만한 발언을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카타르 국왕은 알아사드의 연설 직전 자리를 떴다.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가장 친서방적인 카타르는 시리아 내전에서 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서는 것을 돕고자 반군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줄기차게 시리아의 아랍연맹 재진입을 반대해 왔다.
12년 내전 시리아, 중동의 린치핀
사우디와 이란이 베이징에서 악수하면서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리아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외교관계 정상화 움직임과는 달리 내전을 가장한 12년의 국제전을 정리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리아 영토는 현재 시리아 정부군이 64%를 장악하였고, 나머지 36%는 쿠르드인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26%), 튀르키예군과 여러 반군(10%)이 차지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접경지역인 알탄프를 지키며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들어오는 이란군을 막고 있다. 시리아는 미군과 튀르키예 철수를 요구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와 같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군사기지를 이란이 시리아 땅에 건설하려고 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공습으로 가차 없이 파괴한다. 미국은 이란의 영향력을 이라크에서부터 막고자 1만4000명 정도의 미군을 이라크에 주둔시키고자 이라크 정부에 요청하면서, 이란을 경제적으로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에 이란은 이라크 정부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지 않는 법을 집행하라고 요구한다. 치열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마차에 달린 바퀴가 빠지지 않으려면 마차 축에 바퀴를 결속하는 린치핀을 끼워야 한다. 시리아는 중동의 린치핀이다. 시리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동에 진정한 평화란 없다.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정상화로 시리아 내전을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 같지만, 서로 지쳐 주먹을 잠시 내려놓았을 뿐, 시리아를 내 편으로 잡아두려는 치열한 눈치 싸움의 장이 열렸다. 갈 길은 여전히 멀고 먹구름은 가득하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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