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오픈런과 뱅크런
지난해 말 만난 금융권 전직 고위인사 A씨는 배우자의 등쌀에 밀려 저축은행 정기예금에 가입했다고 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에서 연 7~8%대의 고금리 특판예금이 등장했던 시기였다. 정기예금에 가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서는 ‘오픈런’도 흔한 풍경이었다. A씨는 “지나치게 높은 금리를 주는 곳을 피해 적당한 수준의 금리를 주는 곳을 택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이자를 많이 주는 곳은 자금 수요가 그만큼 급한 곳인 만큼 탈 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의 말처럼 예금 오픈런으로 자주 입길이 오르던 새마을금고에서 결국 탈이 났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한 각종 대출 연체율이 치솟더니 부실지점의 구조조정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부실대출을 해결 못해 폐업하는 새마을금고까지 등장했다. 새마을금고 앞에 늘어섰던 긴 줄은 예금 인출을 위한 줄로 바뀌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도 오픈런을 해야 하는 웃픈 상황이 됐다.
다만 A씨의 조언은 아직 반만 맞은 상황이다. 탈이 난 건 분명하지만, 예금을 찾지 못할까 봐 발을 굴려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 새마을금고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물론, 기획재정위원회·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이 모두 진화에 나섰다. 정부가 예금자 보호 한도인 5000만원 초과 예금도 전액 보장된다고 밝히더니,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아예 새마을금고에 6000만원을 예금했다. 시중은행들도 6조원가량 유동성 지원을 하기로 했다.
새마을금고 사태가 더 번지기 전에 진화에 성공한 건 다행이지만 찜찜함은 남는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 때도 상황이 딱 그랬다.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고수익을 좇아 PF대출을 크게 늘린 증권사들이 위기에 몰렸다. 결국 정부와 시중은행이 돈을 풀었다. 위기 때마다 정부가 불을 꺼주니 시장에서는 위험신호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부의 후한 인심에 리스크 관리를 한 곳이나 그렇지 못한 곳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어졌다. 금융권에서는 “내년 총선까지는 큰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정부가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올 하반기부터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에서 지난해 고금리 특판 예금으로 유치한 자금의 만기가 본격적으로 돌아온다. 새마을금고에서만 이런 자금이 17조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왕 애를 쓰는 김에 정부가 잔불 정리까지 확실히 했으면 한다. 고금리 예금을 판매한 곳일수록 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A씨의 조언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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