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2023. 7. 1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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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서익(1542∼1592)

녹초 청강상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北向)하여 우는 뜻은
석양이 재 넘어가니 임자 그려 우노라
-병와가곡집

옛 선비가 사는 법

때는 한여름. 잘 자란 푸른 풀에 강물은 맑다. 벼슬을 던져버렸으니 굴레 벗은 말이 되었다. 대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때때로 북녘을 향하여 운다. 그 뜻은 석양이 재 넘어감에 임이 그리워 우는 것이다.

이 시조는 서익(徐益)이 의주 목사로 있을 때 정여립이 율곡 이이를 탄핵하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당해 고향인 충청도에 내려가 있을 즈음에 지은 것이다. ‘북향’은 신하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하는 것을 말한다. 북쪽에서 남쪽에 있는 임금을 향할 때도 북향이라고 한다. 인생이 저물어감에 왕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봄이 옳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로 멀리 계신 임을 그리워하는 연시(戀詩)로도 훌륭하다.

서익은 1554년(명종9) 13세 때 향시에 장원한 천재였다. 북방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12책(策)을 올리는 등 군사 방면에 다양한 건의를 하였다. 은퇴 후에는 은진현에 취규재(聚奎齋)라는 서재를 열어 후학을 양성했으며, 고산(高山)에 대나무 만 그루를 심고 만죽정을 지었다. 옛 선비들이 벼슬에 나아감과 물러난 후의 자세가 이러하였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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