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프랑스의 교육불평등
프랑스는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공교육이 무료다.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를 치르면 파리 1대학, 2대학처럼 번호로만 구별되는 평준화된 대학에서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학비·학벌 없는 사회’로 알려졌다.
실상은 다르다. 부유층 자녀는 값비싼 사립학교에 다니며 질 좋은 교육을 받고, 빈곤층 자녀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는 곳이 공립학교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고, 예산은 바닥났으며, 교사가 부족해 과학·수학 등 주요 과목조차 개설되지 못한다. “부모에게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다니는 곳”(유로뉴스)으로 불린다.
학령이 올라갈수록 가난한 이들은 차근차근 배제된다. 초교를 마친 뒤 직업과정(2년제)과 바칼로레아 준비과정(3년제) 중 택일하는 데, 대다수 이민자 자녀들은 직업과정에 쏠린다. 이들은 육체노동, 저임금, 실직 위험에 내몰리며 사회적 신분이 굳어진다.
바칼로레아를 치른 뒤엔 일반대학과 그랑제꼴로 또 갈린다.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리는 그랑제꼴은 소수 정예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하는 엘리트 양성소다. 프랑스의 각 분야 고위직은 그랑제꼴 출신이 대다수다. 1959년 이후 프랑스 전·현직 대통령 7명 중 니콜라 사르코지를 제외한 전원이 그랑제꼴 출신이다.
문턱도 높다. 바칼로레아 고득점자에 한해 2년 준비를 마쳐야 입시 자격이 주어진다. 한번 떨어지면 재응시 기회조차 없다. 학비는 일반 대학의 60배다. 온갖 특권을 거머쥘 수 있는 그랑제꼴의 문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만 열려 있는 셈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프랑스는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 간 학습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학교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작동하지 못하자, 프랑스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가장 작은 나라’(가디언)가 됐다.
지난달 27일, 이민자 출신 나엘 메르즈쿠(17)가 경찰 총격에 사망했다. 10대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관공서를 습격하고 자동차에 불을 질렀다. 외신들은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불의는 교육이며, 학교는 희망이 아닌 굴욕”이라 분석했다. “틱톡 등 SNS가 시위 격화의 원흉”이라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지적이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다.
박형수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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