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받는 인류 평화·고속 성장 시대…세계화 붕괴 속 K-돌파구는 어디에
2021년 발발해 수많은 희생을 불러온 코로나19 팬데믹은 2023년이 돼서야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우려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전염병 사태가 주기적으로 창궐하고, 그 간격은 점점 짧아질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전망을 내놓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류는 전례 없는 물리적인 이동 단절을 겪었다. 경제라는 피가 돌지 않는 상황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도 확인했다. 또한 코로나19 때 풀린 천문학적인 자금은 超인플레이션이라는 ‘당연한’ 화살로 돌아왔다. 전염병이 가져올 ‘상시적인 위기’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전 세계가 맞닥뜨린 메가톤급 위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 양강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생산은 중국, 소비는 미국’이라는 공식이 성립했다. 두 나라의 밀월 관계는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이 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 나라의 갈등은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며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인류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준다. ‘21세기에 웬 전쟁’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상치 못한 전쟁이었지만 1년이 넘도록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정적으로 운용되던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자 에너지와 식량값은 급등했고, 각국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에 돌입하게 됐다.
지정학적 분열은 에너지 위기로
이어 총체적인 경제 불안까지 확산
최근 몇 년 새 이어진 위기는 하나의 사건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확대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상시적이고 영구적인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퍼머크라이시스’ 국면이다. 위기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것이다. 콜린스 영어 사전 편집자들은 2022년 올해의 낱말로 퍼머크라이시스를 꼽으며 2023년의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는 합성어라고 언급했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세 가지의 서로 연결된 위기 국면을 토대로 퍼머크라이시스를 분석했다. 요약하면 지정학적인 분열이 에너지 위기를 불렀고, 경제에도 충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위기는 미중 갈등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과 ‘나머지 국가’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최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정치적인 변수까지 추가되며 분열은 더욱 심해졌다.
전쟁은 즉각적인 에너지와 식량 위기를 불렀다. 러시아에 에너지 대부분을 의존했던 유럽은 ‘뒤통수를 맞은 듯’ 에너지 기근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치솟는 에너지 비용으로 유럽에서 가장 친환경을 내세운다는 정치인들조차 보류했던 석탄 발전소를 다시 가동하는 데 동의한다. 친환경을 향한 유럽의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는 퇴보의 수순을 밟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 급등은 또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깨버렸다. 주요국 정부가 속도감 있는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글로벌 경제를 위협한다.
어쩌면 더 심각한 위기 요인이 하나 더 있다. 기후변화다. 인류가 지구 자원을 소비하며 성장에 골몰한 결과는 전례 없는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라는 부메랑이 돌아왔다. 전 세계가 ‘넷제로’를 외치고 있지만 선진국과 신흥국 간 합의는 어렵고 진척은 더디다. 어쩌면 기후변화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 위기다.
탈세계화와 인구 감소는 붕괴 서막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 역시 그의 저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The End Of The World Is Just The Beginning)’에서 세계가 마주한 위험을 강조한다. 그가 꺼내든 키워드는 탈세계화, 무질서, 인구 감소다.
피터 자이한은 “지난 한 세기 남짓 동안 세계가 일취월장 진보했다”고 전제했다. 물자가 풍요로워지고 품질이 좋아졌다.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돈이 넘쳐났다. 그는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70년 동안 전쟁과 산업재해, 기아 발생 빈도가 줄고, 이에 따른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이 낮았던 적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한마디로 지난 수십 년은 우리 생애에서 다시없을 최고의 시대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황금기가 저물었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미국이 형성한 자유무역, 즉 ‘세계화’가 붕괴하고 있어서다. 그간 인류는 세계화 덕분에 경제 개발과 산업화, 기술 진보를 이뤄냈다. 인류는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누리며 인구가 크게 늘었다.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2020년대 세계의 붕괴가 본격화되고 2030년대 마무리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곡물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데다 2020년대 들어 주요 국가의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한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자이한은 “에너지와 원자재·식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난관에 직면할 것”이라며 “우리가 알던 세계가 완전히 끝나면 지금과는 다른 성공을 부르는 지리적 여건이 작동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세상이 영원이 끝날 것처럼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꽤 오랜 기간 ‘위기의 상시화’를 예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韓 둘러싼 위기, 단기간 극복 힘들어
출산율 하락, 한국 경제 근간 흔들 수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인들도 ‘퍼머크라이시스’를 외치기 시작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 ‘영구적 위기(Perma-crisis)’ 시대의 도래는 우리가 당연하게 해왔던 일과 해묵은 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우리를 둘러싼 지금의 경영 환경은 ‘퍼머크라이시스’라는 단어가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양강 사이에서 기술 경쟁을 벌이는 것도 힘든데, 한국만의 독특한 ‘상시적 위기’도 적지 않다. 출산율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인 0.78명이다. 2023년 4월 출생아 수는 1만8000여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하며 인구는 42개월째 자연 감소 중이다. 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데 별다른 사정없이 ‘쉬었다’고 답변한 20대는 3만6000명에 달한다. 출생률 급락과 청년 고용 불안은 한국 경제를 힘겹게 만드는 최대 굴레 중 하나다.
OECD는 고금리와 이에 따른 한국의 주택 시장 부진을 언급했고, 지나치게 높은 자영업 비중이나 눈에 띄게 늘어난 생계비 부담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계속 늘어나는 무역 적자는 한국 경제 전반을 흔들 수 있다.
‘상시적 위기’를 헤쳐 나갈 주체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잘돼야 경제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난다. 매경이코노미는 데이비드 티스 UC버클리대 교수가 제안한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ies)’을 키울 것을 제안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달성하려면 핵심 역량과 유무형 자산을 그저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하는 경영 환경과의 적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부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재결합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상시적 위기에 대응하는 임원, 즉 ‘CWO(Chief Worry Officer)’를 둘 필요도 있다. 새로운 위험의 출현을 신속하게 인식하고, 실시간으로 해결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요컨대, 상시적 위기 국면에서는 ‘예측’이 아닌 ‘대응’이 기업인이 기억해야 할 키워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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