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좁은 마당, 높은 장벽’…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핵심 분야 지키되 ‘넓은 마당, 낮은 담장’ 강조해야
최근 미국의 대중 전략이 중국과의 단절을 강조하는 ‘디커플링’에서 중국발 위험을 최소화하는 ‘디리스킹’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디리스킹’이 경제 안보를 설명하는 새 프레임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중국과 디커플링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유럽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지난 3월 말 ‘디리스킹’을 처음 공식화했다. 가치 동맹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던 미국 정부의 핵심 인사들도 ‘디리스킹’과 ‘다변화’를 강조하면서 올 5월 일본 히로시마 G7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이 채택됐다.
핵심 기술 보호에는 같은 입장이지만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대해 온도 차이를 보이는 유럽 주요국 입장,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의 디커플링 반대 때문에 미국이 ‘디리스킹’을 앞세우게 된 것은 맞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전략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다. 가치 공유를 내세웠지만, 본질은 장기적인 ‘실사구시’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뤘던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 직후 바이든 정부 외교 전략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알려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좁은 운동장, 높은 장벽(Small Yard With High Fence)’ 전략이 미국의 대중 견제 핵심 기조임을 밝혔다. 중국과 분리할 건 분리하고 협력할 건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 같은 산업 정책을 통해 국내 제조업 기반을 재건하고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민감한 최첨단 기술이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우려 국가들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기술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디리스킹에는 미래 위험의 선제적 방어를 위해 중국과의 선별적 디커플링을 지향하는 적극적 전략도 포함돼 있다. 첨단 반도체 같은 핵심 선도 분야의 ‘조임목(Choke Point)’을 확실하게 쥐고 있는 것이 국가 안보와 기술 패권 유지의 요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스스로 중국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좁은 운동장, 높은 장벽’ 전략을 무시할 수도 없고, 무조건 수용할 필요도 없다. 반도체, 2차전지 등 핵심 산업 제조 능력을 보유해 주변 국가가 아닌 중심 국가로서의 레버리지도 갖췄다.
중국에 대한 공급망 재편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경제 안보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긴 호흡의 실사구시적 정책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 아래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우리도 무리한 탈중국보다는 체계적인 탈위협과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 ‘넓은 마당, 낮은 담장’은 ‘좁은 마당, 높은 담장’의 반대 개념이기도 하지만,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의 정체성과 지향점이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개방적인 통상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핵심 분야는 지키되 ‘넓은 마당, 낮은 담장’을 강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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