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돈 모아 채무 상환…분노하는 개미들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7. 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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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유증’만 하면 주가 급락할 수밖에

# 지난 6월 20일. CJ CGV는 보통주 7470만주를 신규 발행하는 유상증자(유증)를 계획 중이라고 공시했다. 유증을 통해 조달하는 금액(발행제비용 제외)은 5640억원. CJ CGV는 이를 미래 사업을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자금 중 대부분(3800억원)이 채무 상환에 쓰일 예정이다. 유증 결정 직후 CJ CGV 주가는 그야말로 내리막이다. 6월 30일에는 장중 최저 9020원까지 떨어졌다. 7월 4일 기준 주가는 9310원. CJ CGV 주가가 1만원 아래로 내려온 것은 2008년 10월 이후 15년 만이다.

# KC코트렐은 지난 6월 1일 보통주 1460만주를 발행하는 35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후 정정 공시를 통해 조달 규모를 285억원으로 수정했다. 자금 조달 목적은 운영자금(250억원)과 채무 상환자금(35억원)으로 명시했다. 3월 말 기준 총차입금 규모가 1000억원을 넘어서고, 영업 활동 현금흐름 마이너스(-)가 지속되자 유증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KC코트렐 주가는 유증 공시 직후 첫 거래일인 6월 2일 2865원으로 마무리됐다. 전장 대비 12.4% 떨어진 수준이다. 7월 4일 기준 종가는 2285원까지 하락했다.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는 총 10건의 유증(8개사, 정정 공시 제외) 결정이 공시됐다. 유증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2조2017억원. 지난해 6월(8926억원)과 비교하면 약 2.5배 늘었다. 기업이 유증 카드를 꺼내드는 건 현재 금융 환경과 연관 있다. 일단 금리가 높아 은행권 차입을 통한 자금 조달 부담이 크고, 채권 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부담되는 상황이다. 결국 남은 카드가 증자뿐인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증자를 결정한 회사 주가다. 이들은 유증 결정을 발표한 직후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 6월 유증을 결정한 코스피 기업은 총 8곳. 이 중 경영진의 횡령 등으로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을 받고, 현재까지 주식 거래가 중지된 청호ICT를 제외한 7곳 중 6곳의 주가가 유증 결정 발표 직후 떨어졌다. 특히 KC코트렐, CJ CGV 등은 유증 결정 건을 공시한 뒤 두 자릿수 주가 하락률을 기록했다. 채무 상환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유증을 결정한 SK이노베이션, SD바이오센서, 삼부토건, 이지스밸류리츠도 주가 하락을 마주했다. 이에 소위 ‘개미’로 불리는 소액주주들은 그야말로 ‘유증 포비아(공포)’ 상태다.

기업들의 유상증자 결정 공시 직후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매경DB)
유증은 왜 투자 적신호가 됐나

신주 대거 풀려 주주 가치 희석

유증은 그야말로 기업의 주요한 자금 조달 창구다. 그런데 왜 유증 소식만 전해지면 해당 기업 주가가 곤두박질칠까.

이유는 단순하다. 주주 가치 희석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유증은 새로운 주식(신주)을 발행해 주주 혹은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형태다. 기업은 판매 예정인 신주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할인율’을 적용한다. 쉽게 말해 기존 주식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보다 최대 30% 저렴한 가격에 신주를 발행해 판매하는 것. 동일한 가치를 지닌 주식이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풀리는 셈이다. 기존 주식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모든 유증이 주주 가치 희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지분을 팔 가능성이 낮은 대주주만을 대상으로 유증을 진행하는 식이다. 일명 제3자 배정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 중 제3자 배정 방식 유증을 진행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그 반대다. 일반 공모를 활용하거나,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반 공모는 제한 없이 모든 투자자를 대상으로 신주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기존 주주들이 제일 꺼리는 형태다. 최근 기존 주주 대상 유증 없이 일반 공모로만 유증을 단행한 SD바이오센서가 일반 주주들의 극심한 비판을 받은 배경이다.

SD바이오센서는 6월 14일 3100억원 규모 유증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진단키트 특수가 끝을 맞이하면서, 실적 부진과 신성장동력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소식이 전해진 직후 SD바이오센서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6월 14일(종가) 기준 1만5110원이던 주가는 6월 15일 1만4730원으로 떨어지더니, 7월 4일 기준 1만2410원까지 추락했다. 퍼센트로 따지면 17.8% 감소했다.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은 말 그대로 신주 구매 권리를 기존 주주에게 먼저 나눠 준 뒤 남는 물량을 일반 공모로 판매하는 형태다. 주주에게 해당 기업 주식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할인 찬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주주들 입장에서 기업의 유증 사유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 유증으로 확보한 자금을 신규 사업이나 타법인 인수 등에 활용하면 기업가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 유증 사유는 대부분 채무 상환 혹은 운영자금 확보다.

6월 발표된 유증 결정 공시 10건에서 조달 예정 자금 규모는 2조2017억원, 이 중 채무 상환에 들어가는 자금이 7975억원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36.2%로 가장 크다. 운영자금까지 더하면 45.3%로 불어난다.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31.2%), 시설자금(23.5%)은 후순위다. 조달 예정 자금의 절반가량을 빚을 갚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쓰는 셈이다. 그야말로 주주들에게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꼴이다. 주주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할인 찬스’인 셈이다. 그렇다고 참여를 안 하기도 불안하다. 실권주가 일반 공모로 풀리는 만큼, 가만히 앉아 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 유증 결정 기업을 두고 “경영 실패를 왜 주주 책임으로 돌리느냐. 주주 주머니 털어 기업 운영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지는 이유다.

‘주주 소통’ 외치더니…유증은 예외

1조원 조달하는데 ‘올빼미 공시’

지난 몇 년 동안 기업 화두 중 하나는 ‘주주 소통’이었다. 기업들은 주주총회 당일 주주와 ‘경영 현안’을 소통하는 자리를 별도로 만들기도 하고, 기업 실적 설명회를 앞두고 주주들을 위한 ‘사전 질문’도 접수했다. 언론을 통해 수차례 주주와의 소통을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증은 예외였다. 주주 돈으로 자금을 조달하면서도 소통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꼼수를 통해 회피하기 급급했다.

대표적인 회피 전략은 ‘올빼미 공시’다. 상장사들은 주식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경영 상황을 공시 형태로 공개한다. 투자자는 공시를 보고 기업 상황을 파악한다. 이를 근거로 주식을 사고판다. 투자자들이 공시를 집중해 들여다보는 시간은 장 개시 이후부터 장 마감 직전까지다. 상대적으로 장 마감 이후 올라오는 공시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진다.

올빼미 공시는 이 같은 허점을 파고든 형태다. 장 마감 이후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공시하는 것. 주가에 나쁜 흐름을 미치는 악재성 이슈가 대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일부 기업은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식을 장 마감 이후 전해야 불공정거래 세력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명확하게 잘못된 가치관”이라며 “공정공시제도 취지상 정확한 내용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SK이노베이션도 올빼미 공시로 도마 위에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은 1조1777억원 규모 주주 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공개했다. 819만주를 신규 발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주주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였지만, SK이노베이션은 어떤 소통도 없이 장 마감 이후 유증 계획을 발표했다. 공시 시점도 금요일인 탓에 주주들은 주말 내내 속앓이를 하며 불만을 쏟아냈다.

유증 결정 이전 소통이 있었다면 주주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소통은커녕 낌새도 없었다. 증권가도 예상을 못했다. 정황상 유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재무 부담 요인이던 자회사 SK온은 프리IPO를 마무리, 급한 불은 끈 상태였다. 그렇다고 SK이노베이션 유동성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다. 3월 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 SK이노베이션의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45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1분기 영업 활동 현금흐름(연결 재무제표 기준)도 8067억원을 기록, 현금이 순유입되는 상태였다.

조현렬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자본 시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증자였던 만큼 단기적으로 투자 심리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희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임대나 기존 건물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안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지만, 유상증자로 타인 자본을 상환했다”며 “일부 조달 금액이 장기 투자에 쓰이지만, 단기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 자체 이익에 기반한 재원이 아닌 주주 지분 희석을 통해 결정한 것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일방적인 유증을 통한 ‘주주 주머니 털기’는 한국에서만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었다면 별도 소통 없이 기존 주주 이익을 일방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유증의 경우, ‘주주대표 소송’ 등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이 무턱대고 유증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주주대표 소송은 경영진의 무책임으로 인해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을 때 이사회에 회사에 대한 손실 보전을 요구하는 제도다.

국내 상법에도 주주대표 소송이 있지만, 다른 국가들과 소송 제기 조건이 다르다. 미국과 일본은 주식을 한 주만 갖고 있어도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상장 회사 기준 총 발행 주식의 0.01%를 6개월간 보유해야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주요 대기업 주주 중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주주는 많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에서는 주주대표 소송을 ‘경영 간섭’ 등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고, 정치적 스탠스와 결부해 보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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