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별세

홍지유 2023. 7.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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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 [중앙포토I]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가 11일 별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2일(현지시간) 현지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체코 공영방송(ČT)은 쿤데라가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1929년 체코 브르노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쿤데라는 작곡과 영화를 공부했다. 당시 공산 체제였던 체코에서 시와 극작품을 쓰며 프라하 고등 영화연구원 교수로 일했다. 이때 남긴 초기작으로는 소설 『농담』,『우스운 사랑들』,『이별의 왈츠』 등이 있다.

쿤데라는 196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농담』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체코의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에 참여하면서 외압에 시달렸다. 1975년 46세의 나이로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1984년에 대표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펴냈다.

체코 브르노에 있는 밀라노 쿤데라 도서관 내부. [AFP=연합뉴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가 '프라하의 봄'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39세의 나이로 1968년 '프라하의 봄'에 참여해 공산당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쿤데라는 저서가 압수당하고 집필과 강연 활동에 제한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쿤데라의 저작은 1989년 벨벳 혁명으로 체코의 공산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모국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영문판·불문판(1984)이 먼저 나왔다. 체코어판은 1985년에 나왔고 체코에서의 금서 해제는 1989년에서야 이뤄졌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다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역사에 짓눌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은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국내에서도 100만부가 팔렸다.

이 작품은 1988년 미국 감독 필립 코프먼에 의해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지만 쿤데라는 영화를 두고 "작중 인물의 성격이나 소설의 근본적인 주제와 영화 사이에 어떤 유사성도 없다"며 애석함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는 자신의 소설을 영상화하겠다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민음사가 펴낸 밀란 쿤데라 전집.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국내에서 100만부가 팔렸다. 사진 민음사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에도 쿤데라는 과거 체코에서 겪은 비밀 경찰의 감시를 의식한 듯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렸고 대부분의 미디어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쿤데라가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경찰이 사생활을 파괴하지만, 민주주의 나라에선 기자들이 사생활을 위협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질 정도다.

쿤데라는 민주화 운동을 했음에도 '공산당의 부역자'라는 모함을 받기도 했다. 2008년 체코의 한 언론은 쿤데라가 1950년 일어났던 간첩사건의 밀고자이고, 그의 제보 덕분에 체코 공산정부가 체코 출신 미국 간첩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때 쿤데라는 20년 만에 언론과 접촉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금도 전혀 알지 못하며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모함을 받고 있다"며 "문제의 기사는 나에 대한 살인 시도로 간첩으로 지목된 인물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체코 출신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지난 201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행사에 나타난 모습. [AFP=연합뉴스]


1981년 프랑스 시민이 된 후 쿤데라는 자신의 작품을 '프랑스 문학'이라고 강조해왔다. 쿤데라는 1990년대부터 아예 프랑스어로 작품을 집필했고, 체코어로 쓴 그 이전 작품들은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후기 작품들은 프랑스어로 쓰이고 그다음에 체코어로 번역돼 체코로 역수입됐다. 그가 망명 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로서의 조국은 프랑스이며,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이 파리라는 사실을 귀중하게 여긴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쿤데라는 2008년 체코민족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쿤데라의 체코 국적은 2019년에서야 회복됐다. 1979년 국적을 박탈당한 지 40년 만이었다.

쿤데라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그랑프리, 유러피안문학상, 커먼웰스상, 카프카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프란츠 카프카,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 문인으로 꼽혔지만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르몽드는 그의 부고를 전하며 "지칠 줄 모르는, 소설과 소설에 대한 권리의 옹호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썼다.

홍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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