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나스닥·반도체 하락에 3배 베팅…겁 없는 개미, 커지는 곡소리?
30대 직장인 A씨는 요즘 스마트폰 증권 앱으로 미국 주식시장을 확인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뉴스에 지난 3월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면서다. 더욱이 한 번에 큰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3배 레버리지 상품에 2000만원을 투자했다가 석 달 새 20% 넘게 손실을 보고 있다.
A씨는 “시장 금리(채권 금리)가 하락해서 큰돈을 벌 줄 알았는데 기준금리는 인하는커녕 인상될 분위기”라며 “시장보다 앞서 판단해 3배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한 게 후회가 된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B씨는 지난달 미국 반도체 지수를 역으로 3배 추종하는(인버스 레버리지) ETF에 1억원을 투자했다. 반도체 업종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판단에 과감히 ‘하락’에 베팅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재 계좌엔 마이너스 20%가 찍혀있다. B씨는 “버텨야 할지, 지금이라도 정리를 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올여름 잠 못 드는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 과감히 ‘하락’에 베팅했다가 손실을 보고 있어서다. 간 큰 개미들은 2배 베팅도 부족해 수익률 3배 상품으로 몰려들고 있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올해 서학개미의 순매수 상위 3개 종목은 지수 움직임에 따라 3배 수익률이 결정되는 레버리지 ETF다. 전체 순매수액은 13억508만 달러(약 1조6835억원)에 이른다. 지수 방향만 정확히 맞추면 3배 수익을 손에 쥘 수 있지만,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가장 많은 자금(6억5042만 달러)이 몰린 건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국채 불 3X(이하 종목코드로 통일, TMF)’ ETF다. 이 채권 ETF는 만기 20년 이상 초장기 미국 국채로 구성된 지수((ICE U.S. Treasury 20+ Year Bond Index)에 따라 3배로 수익률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이 상품은 미국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가격 상승) 3배 수익을 낼 수 있다.
서학개미는 올해 지수 하락에 3배 베팅(인버스 레버리지)하는 ETF도 선호했다. 순매수 2위 종목은 올해 4억975만 달러가 쏠린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숏 QQQ(이하 SQQQ)’ ETF다. 미국 대형 기술주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나스닥100 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역방향으로 3배 추종하는 구조다.
기술주와 함께 미국 반도체 업종도 단기간에 급등했다고 판단해 하락을 예상한 투자가도 많다. 서학개미 순매수 3위 종목은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를 역으로 3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베어 3X 셰어즈(이하 SOXS)'로 2억4489만 달러 투자했다.
베팅은 과감했지만, 수익률은 시원치 않았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기준 3배 레버리지에 투자하는 미국 ETF의 한 달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다. 이 기간 TMF ETF의 손실률이 8.6%로 가장 컸고, SQQQ(-7.3%)와 SOXS(-3.8%)의 수익률도 저조했다. 연초에 투자에 나섰다면 손실 폭은 더 커진다. SOXS(-75.6%)와 SQQQ ETF(-65.2%)의 연초 이후 손실률은 50%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TMF ETF의 수익률도 마이너스(-11.5%)다.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가장 큰 이유는 서학개미의 기대와 달리 미국 장기채 금리는 들썩이고, 반도체 지수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시장금리의 벤치마크(기준점)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6일 연 4.038%를 찍더니 사흘 연속 4%대를 이어갔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4%대로 올라선 것은 실리콘밸리은행(SVB)등 지역은행 파산사태가 이어진 3월 이후 처음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달 15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멈췄지만(동결), 물가를 안정을 위해 연내 한두 차례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강한 ‘긴축 의지’를 내비치면서다. 12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패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이번 달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은 92.4%에 이른다.
나스닥100지수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올해 고공행진 중이다. 나스닥100지수는 지난 11일 1만5119로, 연초 이후 39.2% 급등했다. 같은 기간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6% 뛰었다. 세계적인 챗GPT 열풍을 이끈 엔비디아 몸값이 치솟은 데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다.
증시 전문가들이 시장 방향성을 예측한 뒤 ‘2~3배’ 베팅하는 레버리지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특히 올해 국내외 증시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국제 유가, 경기 침체 우려 등 각종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 변동성이 크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연초 전문가의 예상과 달리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연되고 있다”며 “변동성이 큰 장에서 시장 방향을 맞춰서 돈 버는 건 리스크(위험)가 크다”고 조언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하반기엔 반도체 업종을 비롯해 미국 기업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당장 반도체나 나스닥 지수가 조정받을 것으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2~3배 레버리지 상품에 장기 투자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으로 레버리지 상품은 누적 수익률이 아니라 일간 수익률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금융교육 컨설팅사인 웰스에듀의 조재영 부사장은 “특히 레버리지 인버스 ETF는 지수 등락을 반복하더라도 ‘음(-)의 복리 효과로 원금을 잃을 우려가 있다”며 “공격적 투자성을 보이는 상품은 장기 투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염지현, 강광우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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