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전에 실컷 먹자"…'복날' 민어횟집은 만석 됐다
11일 오전 3시 노량진수산시장 경매장. 전국 산지로부터 각종 활어와 패류를 실은 트럭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2500평 넓이 경매장에 들어서자 생선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경매대 오르기 전, 중도매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생선 아가미를 뒤집으며 선도를 수시로 확인했다. 상인들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경매인의 ‘호창(呼唱)’과 함께 시작된 경매 분위기 속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위기감은 느낄 수 없었다.
‘복달임 음식’ 민어, 오염수 방류 논란 뚫고 웃어
초복인 이날 경매장의 주인공은 ‘복날 보양식’으로 인기 있는 민어. 9.5kg 대민어를 낙찰받은 중매업자는 들뜬 표정으로 “물건 좋다”며 전화를 걸었다. 실제 이날 경매장에 입고된 활 민어는 모두 900㎏으로 지난해 초복(848㎏)보다 다소 늘었다. 수산물 유통업자 김모(46)씨는 “오염수 방류 소식으로 뒤숭숭하지만 실제 체감하는 물량은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 속에서도 수산물 소비는 예년과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올 4~6월 수산물 매출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이마트 수산물 판매는 0.4% 줄었고, 롯데마트는 5% 늘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해 4~6월과 대비 수산물 매출은 소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주요 수산물의 출하량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국내산 양식 광어와 전복의 5월 출하량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 5.2% 증가했다. 이남수 수산업관측센터장은 “김·미역 등 저장 후 섭취하는 수산물이 아닌 양식어는 출하량이 곧 소비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아직은 오염수 방류 논란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자 “방류 전에 실컷 먹어두자”, 방류 후엔 “찝찝해”
이날 점심시간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횟집. 13개 모든 테이블이 만석인 식당에선 민어 회, 민어 전, 민어 곰탕 등을 제공하는 인당 5만원짜리 ‘민어 코스’를 팔고 있었다. 식당 관계자는 “민어 코스를 개시한 이후 점심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예약이 줄을 잇고 있다”며 “오염수 논란으로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식당을 찾은 김모(61)씨는 “수산물을 워낙 좋아해 민어로 보양하러 왔다”면서도 “방류 후에는 걱정돼서 다른 음식을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남성 A씨는 “식사 중 오염수 이야기가 나왔는데 ‘방류 전에 실컷 먹어두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수협을 통해 입수한 ‘차량 입차 내역 및 상장 금액 비교’ 자료에 따르면, 올해 노량진수산시장의 이용객과 매출은 4~5월 감소세를 보이다 6월 회복 국면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량진 수협은 이용객 수를 추정할 수 있는 차량 입차 내역과 중도매인 거래금액을 뜻하는 상장금액을 전년과 비교했다. 입차 내역의 경우 4월 5%(15만5786건), 5월 1.5%(16만2171건)로 집계돼 지난해 동월 대비 감소했지만, 6월은 오히려 3.9%(14만9208건) 증가했다. 상장 금액의 경우 지난해 동월 대비 4월 12%(2679억원), 5월 1.5%(2848억원) 줄었지만, 6월은 0.6%(2526억원)로 소폭 늘었다.
노량진 수협 관계자는 “지난해 4~5월은 사회적 거리두기 완전해제로 이용객이 폭증했던 시기”라며 “아직 이용객 수와 매출이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산시장 상인들, 소비 위축 체감 달라도 불안감은 같아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체감하는 소비 위축 우려는 제각각이었다. 고급어종을 취급하는 차덕호씨는 “내 주변엔 매출이 증가했거나 비슷한 가게가 10곳 중 7곳”이라며 “엔데믹 특수가 사그라지고 불경기가 겹쳐 매출은 향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매상 이진용(52)씨는 “매출이 지난해 대비 30%는 감소했다”며 “거래처 중에선 폐업한 곳도 많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염수 방류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컸다. 이씨는 “실제 방류가 이뤄지면 타격이 더 클 텐데 정치권에선 서로 싸우기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했다. 10년 차 경력의 김상준(39) 경매사는 “아직 경매장에 들어오는 물량은 비슷하다지만 실제 방류가 이뤄지면 국면이 달라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다만, 방류 후에도 평소처럼 수산물을 소비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횟집에서 국내산 삼치와 참치회를 먹었다는 고모(31)씨는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잘 먹어왔는데 인제 와서 안 먹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한 달에 4회 이상 스시 오마카세를 즐긴다는 직장인 최모(28)씨도 “고급 스시에 사용되는 ‘오오마(大間)산 참다랑어’ 등 최고급 수산물은 대체 불가한 수준”이라며 “일본을 찾아가서라도 먹겠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수산인이 체감하는 피해는 통계 이상인데, 방류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정부는 현재 상태를 낙관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과 보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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