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다보니 그놈이 바로…강남 마약음료 필로폰 제공조직 검거 전말

손성배 2023. 7.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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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근 수원중부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장(경감·가운데)과 수사팀원들. 일선 현장을 누비는 수사관들은 ″얼굴을 노출할 경우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촬영을 한사코 거부했다. 왼쪽부터 최성식 경위, 우승현 경위, 신승원 경사, 노경현 경장. 손성배 기자

“마약 범죄자가 남긴 작고 사소한 흔적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추적했습니다.”
지난 4월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유통된 마약 음료의 원재료(필로폰)를 공급한 조직이 일망타진됐다. 이들을 검거한 수원중부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 우승현(52) 경위는 “범죄자가 아무리 차명 계좌와 대포폰을 쓰면서 피해 다닌다고 해도 흔적은 남는다”며 “단순 투약자 수사로 시작해 상선의 상선을 추적하다 보니 국내 공급 총책까지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중부서는 총책 박모(36, 중국 국적)씨와 중간판매책 김모(50대)씨 자매 등 25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향정) 위반,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12일 밝혔다.

수사의 시작은 2월 마약 소매상 검거였다. 수사팀은 2월 21일 오전 9시부터 소매상이 귀가하는 밤 11시까지 면목동 소매상의 집 앞에서 잠복했다.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유수근 수원중부서 마약범죄수사팀장(경감)은 “마약 사범은 수사망이 좁혀온다는 낌새를 알아차릴 경우 소지하고 있던 마약류를 변기에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남은 털까지 남김없이 없앨 여지가 있어 ‘급습’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결국 소매상은 증거인멸할 시간 없이 수사팀에 검거됐다.

수사팀은 이후 2개월 간 유통경로를 추적해 총책 박씨 검거까지 도달했다. 4단계를 거치자 중국에서 지난 2월 입국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약을 대량 유통하던 국내 총책 박씨의 턱밑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수사팀은 4월 4일 낮 서울 가리봉동에서 박씨를 붙잡았다. 우 경위는 “마약 수사는 중간 판매책이 검거됐다는 소식만 퍼져도 범죄자들이 모두 숨어버리기 때문에 신속성이 생명”이라며 “국내 최상위 상선을 잡은 뒤엔 다시 하선의 하선, 판매 유통책으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고 했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12일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일대 필로폰을 유통하고 투약한 혐의로 국내 총책 중국인 A씨 등 77명을 검거했다. A씨는 지난 4월4일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남부경찰청


‘강남 마약음료 사건’의 원료 공급책을 붙잡았다는 타이틀은 의외의 성과였다. 유수근 팀장은 “마약음료 사건이 4월 3일이고, 공교롭게도 4월 4일에 우리가 총책 박씨를 검거했다”며 “처음에는 이 조직이 마약음료 사건에 연루된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거 사흘 뒤, 서울 강남경찰서가 박씨를 조사하겠다는 뜻을 알려오며 이들과 마약음료 사건과의 연관성이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총책 박씨는 지난 3월 25일 인천 십정동의 한 주택가에서 마약음료를 제조한 길모(20대·구속 기소)씨에게 필로폰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총책 박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해외 총책의 존재도 드러났다. 박씨와 고종사촌 지간으로 2019년 5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 확정판결을 받은 이모(37)씨였다. 이씨는 징역형과 함께 마약 판매 수익 2286만3010원 추징 명령을 받고 만기 출소한 뒤 2021년 6월11일 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한국 입국길이 막히자 사촌지간인 박씨를 한국으로 보내고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들을 포섭해 마약 유통 조직을 꾸린 것이다.

경찰은 이씨를 해외 총책으로 범죄단체 계보도에 올려두고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 총책 이씨의 소재가 파악되면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할 계획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판매책 검거부터 지난 11일까지 수사팀은 경남 밀양, 부산, 충북 제천·청주 등 지방과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등지에서 10대 단순 투약자부터 60대 판매책까지 총 77명을 검거했다. 11일까지 구속한 사람만 25명에 이른다.

수원중부경찰서가 강남 마약음료에 들어간 필로폰을 공급한 조직을 검거하며 압수한 필로폰 등 마약류. 경기남부경찰청


추징보전 등의 성과도 냈다. 중간판매책 김모(50대)씨 자매의 경우, 약 1억원 어치 필로폰을 판매한 것을 확인하고 그가 소유한 벤츠 승용차를 기소 전 추징 보전했다. 또 하부 판매책을 통해 유통된 필로폰은 약 2.5㎏으로, 수사팀은 필로폰 1.65㎏과 마약 대금 5700만원을 압수했다. 필로폰 시세는 1g에 70만원 가량인데, 이들은 마약 중독자들에게는 1g당 100만~120만원에 필로폰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판매상들끼리는 100g 이상 거래시 1g당 20만~25만원에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22년 강력·마약 수사 경력의 우 경위는 “압수한 필로폰은 5만5000여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세관에서 단번에 다량을 입수하는 수사가 아니라 국내에서 활동 중인 공급책과 판매책을 수사하는 과정에 수거해 뜻깊다”며 “지인이나 가족 돈을 훔쳐 마약을 구하러 다니는 중독자도 있었다. ‘검거가 예방’이라는 자세로 마약 사범들을 끝까지 뒤쫓겠다”고 말했다.

필로폰 매수, 투약자 검거 장면. 경기남부경찰청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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