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IAEA 거래' 의혹 보도, 한국 언론은 세 번 외면했다

오태규 2023. 7. 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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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주요 매체, 핵오염수 관련 내용 외면... 일본·중국 공식 반응도 무시

[오태규 기자]

<시민언론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는 6월 말부터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원전의 핵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검은 거래를 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를 잇달아 내놨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일본 정부로부터 100만 유로(약 14억2150만 원)를 받고 일본 정부의 입맛에 맞게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전후 맥락으로 볼 때 매우 개연성이 큰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두 매체는 6월 21일(더탐사)과 22일(민들레) 일본의 '외무성 간부 A 메모'라는 제목의 문서 3장을 입수해 처음 보도한 이래, 7월 4일 국제원자력기구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관련 보도를 거의 날마다 이어갔습니다. 그런데도 국내 주요 매체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두 매체의 보도를 그림자 취급했습니다.

'더탐사'와 '민들레'의 연일 보도... 주요 매체는 그림자 취급
 
 6월 22일 <더탐사>의 [긴급 단독 속보-요약본] 일본외무성 간부, IAEA 간부에 뇌물줬다! 증언.
ⓒ <더탐사> 유튜브 갈무리
 
국내 주요 매체들이 이 보도를 외면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고, 작은 신생 매체의 존재를 무시하는 언론계의 못된 버릇도 작용했을 겁니다. 35년 전 <한겨레> 창간 당시에도 기존 매체들은 <한겨레>의 수많은 특종 및 단독 보도를 아무 일도 없는 양 거들떠보지도 않곤 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기억이 생생합니다.

최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심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마는, 자기 매체의 논조나 '내러티브(이야기 구조)'에 따라 사실을 취사선택해 꿰맞추는 탈진실 보도 풍조도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보도에 대해 즉각 보복과 탄압으로 대응하는 윤석열 정권의 야만적 언론 정책도 위력을 과시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바이든-날리면' 보도 이후 <문화방송(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고 정순신씨 아들 학교폭력 단독보도 등 불편한 보도 이후 <한국방송(KBS)>의 수신료 분리 징수를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는 윤 정권의 반민주적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작부터 후쿠시마 핵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용인하기로 작정한 윤 정권의 뜻에 정면으로 거슬리는 사안을 취재하고 보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중대한 내용이라도 취재원의 신뢰성 약하면 보도 못할 수도

제가 다른 미디어의 편집 책임자였다면 과연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널리즘을 옥죄고 있는 정치 환경을 배제하더라도, 즉 사실에 기초해 투명하게 진실을 찾아가는 저널리즘의 정신에 기초한다고 해도 판단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떤 기사를 보도할 때, 취재원의 신뢰성(투명성)과 내용의 중대성이 주요한 기준이 됩니다. 두 기준을 짝짓기하면 모두 4가지 경우가 나오는데, '신뢰할 수 있는 취재원-중대한 내용'과 '신뢰할 수 없는 취재원-중대하지 않은 내용'의 경우는 누구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취재원은 신뢰할 수 있으나 중대하지 않은 내용도 판단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울 경우는 취재원의 신뢰성은 부족하나 내용이 중대할 때일 겁니다. 자칫 악의적인 꾐에 걸려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민들레>와 <더탐사>의 보도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이런 점에서 <민들레>가 6월 28일, '후쿠시마 오염수 익명 제보, 민들레는 왜 보도했나'라는 기사를 내보낸 것은 보도의 책임성과 투명성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저는 첫 보도가 매우 중대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 보도를 다른 매체가 그대로 받아쓰기는 무리였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두 매체는 나름대로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도했을 테니 두 매체에 그런 판단을 내린 이유를 묻는 전화가 쇄도했겠거니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두 매체에 그런 문의를 한 매체는 한 곳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 외무성-중국 외교부 논평' 무시, 언론 역할 방기 
 
 6월 22일 일본 외무성이 낸 '외무성 간부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ALPS 처리수 취급에 대한 면담에 관한 보도에 대하여' 입장. '관련 링크'를 누르면 <더탐사>의 유튜브 영상이 나온다.
ⓒ 일본 외무성 누리집 갈무리
 
저는 이번 사안과 관련한 한국 미디어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외무성과 중국 외교부가 공식 반응을 했는데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에 있다고 봅니다.

<더탐사>의 첫 보도가 나온 다음날(6월 22일), 일본 외무성은 이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고 허위 유포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그 자료에는 <더탐사> 보도의 링크까지 붙어놨습니다. 한 나라의 외교부가 다른 나라 작은 매체의 보도에 대해 반박 보도자료까지 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보통은 '괜히 건드려 덧낼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으로 못 본 체하고 지나칩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일본 외무성은 이 보도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얘기겠죠. 제대로 된 기자라면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일본 외무성이 이례적으로 반응했는데도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무시했습니다. 첫 보도의 내용이 중대하지만 취재원의 신뢰가 낮아 기사를 쓸 수 없었다면, 외무성의 반응은 보도의 좋은 기회를 제공해줬다고 봅니다. 일본 정부가 대응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도 다룰 수 있었을 겁니다.

일본 외무성의 첫 반응 이후에 '조르세티(Jorseti)'라는 외무성 내부 인사 또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것으로 짐작되는 익명의 인물이 첫 보도가 맞는다면서, 외무성의 움직임과 국제원자력기구와 일본 정부의 거래를 엿볼 수 있는 보고서 초안 등을 몇 차례 연이어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두 매체는 조르세티라는 인물의 신빙성을 여러모로 확인해가며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첫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일본 외무성은 조르세티의 더욱 구체적인 폭로에 관해서는 무대응 방침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지켜만 보고 있던 중국 외교부가 입을 열었습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조르세티의 제보에 근거한 보도가 두 차례 더 나간 뒤인 6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민들레> 보도에 대해 질문을 받고 "우리는 심각하게 그 보도를 주목하고 있다"라면서 "일본 정부는 신뢰할만한 설명을 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리고 IAEA 사무국도 답변해야 한다"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또한 중국 외교부의 매우 이례적인 반응입니다. 이때도 국내 주요 매체가 기사를 쓸 좋은 기회였지만 외면했습니다. 또 7월 3일에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재차 돈거래를 통한 보고서 작성 의혹을 해명하라고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에 촉구했습니다. 이때도 한국 언론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6월 29일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이 정례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중국 외교부 누리집 갈무리
 
선택적, 자의적 보도로 자멸하는 '한국 저널리즘'

<민들레>와 <더탐사>의 보도가 일본과 중국의 대응과 함께 점차 국제적인 문제로 번져갔지만, 국내 주요 매체의 철저한 무시로 국내 대다수 시민은 실제 벌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한 의혹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국내 주요 매체들이 독자적으로 일본 정부나 국제원자력기구를 상대로 취재를 한 흔적도 없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려는 움직임도 없습니다. 일본 정부에 보고서를 전달한 뒤 우리나라를 방문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은' 조중동을 비롯한 매체들이 인터뷰했으면서도 이런 의혹에 관해 한 마디 질문도 하지 않은 것이 많을 것을 보여줍니다.

자기 의도에 맞는 기사는 근거가 약해도 마구 부풀려 떠벌이면서, 의도에 맞지 않는 기사는 아무리 중요해도 파헤치려는 시늉은커녕 아예 입구에서부터 문을 닫아거는 국내 주요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 시대에 저널리즘은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의 저널리즘은 자멸하고 있고, 이번 사건은 그것을 더욱 재촉하는 촉매제 노릇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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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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