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산조 명인 부자 "남은 생, 대금의 아름다움 알리는 데 바칠 것"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 관리를 합니다. 호흡이 조금만 달려도 대금을 불 수가 없기 때문에 대금 연습만큼 운동도 열심히 하는 거죠."
대금 연주의 대가 죽향(竹鄕) 이생강(86)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 보유자의 말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하고 다부진 모습이었다. 아들 이광훈(56) 대금산조 전승교육사도 그의 뒤를 이어 대금 연주자가 됐다. 이들 부자를 최근 서울 성북구의 대금산조 전수관에서 만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간 이생강 보유자의 선친은 고향이 그리울 때면 피리와 단소를 불었다고 한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악기로 토해내는 한 맺힌 소리가 어린 아들에게 마음의 응어리로 남았던 것일까. 이 보유자는 다섯살에 처음 단소를 손에 쥐었다. 붙들고 가르쳐준 사람이 없는데도 금세 소리를 냈다.
취구에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하는 관악기는 두드리기만 하면 소리가 나는 타악기나 건반 악기와 달리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폐활량이 약한 어린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쉽게 소리를 내니 아버지가 눈여겨봤던 것 같다"고 이 보유자는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재능을 알아본 그의 아버지는 "무엇이든 불어보고, 어떤 소리든 내보라"며 퉁소·소금 금 같은 동양 악기 뿐 아니라 플루트와 색소폰 등 당시 일반인들은 구경도 하기 어려운 서양 관악기를 구해다 주곤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첫 음악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이 보유자는 가족과 함께 귀국해 전라도로 향했다. 선친은 "일단 소리꾼과 예인이 많은 남도로 내려가자"고 했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결단이었다.
명태를 파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아들은 모객용으로 악기를 연주했다. 그러다 1947년 전주역에서 한주환(1904~1966)의 눈에 들었다. 한주환은 대금산조의 창시자 박종기(1879~1941)의 제자였다. 그때부터 이생강 보유자는 80년 넘게 국악 외길을 걷고 있다.
하고 많은 악기 중 왜 대금이었을까. 그는 "대금은 중·임·무·황·태 5음계 뿐이지만 미분음으로 나눠 불면 무궁무진한 음을 낼 수 있다.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즈나 크로스오버 음악에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와 함께 연주하는 크로스오버 공연을 수차례 선보였다. "퉁소나 단소는 일본과 중국에도 있지만 대금은 우리나라에만 있어 더 특별하다"고 덧붙였다.
이광훈 전승교육사는 "여러 국악 관악기 중에서도 대금은 악기가 길고 취구가 크기 때문에 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일단 대금을 불 줄 알면 다른 악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그게 대금의 매력"이라고 했다. 여성 대금 연주자가 드문 것도 같은 이유다. 무겁고 긴 대금을 들고 강한 입김을 불어 넣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이 전승교육사는 대금 명인인 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며 자랐다. 좋은 대금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그의 피에 녹아 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혼나면서 대금을 배웠다고 한다. 이 전승교육사는 "대금에서는 반음 내린 '플랫'을 '숙인다'고 표현한다"며 "아버지가 '음을 더 숙여라' 말씀하시면 '어떻게 더 숙이라는 건가' 생각하며 화도 났다. 그렇게 안 쉬고 4~5시간 연습하면서 아주 조금씩 귀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숙이고도 더 숙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더 숙일 수 있다"고 가르쳐온 이생강 보유자는 지금도 매일 6~8시간 대금을 연습한다.
"여덟 살 때부터 대금을 불기 시작해 아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대금을 익히는 일에는 끝이 없습니다. 남은 생을 대금 연주와 후학 양성에 바치고 싶습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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