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17] 첫 번째 의뢰인 Betty 할머니
Hospice Care Volunteer 훈련을 받고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Coordinator로부터 연락이 왔고 첫 번째 의뢰인인 Betty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Heaven(천국)이 아닌 Haven(피난처)이라는 Life Center에 가서 가슴에 걸고 있는 신분 확인증을 보여주고 방명록에 만날 사람과 시간 등을 기록하자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 주었다. Betty 할머니는 일반 환자가 아니라 치매 환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만나보니 예쁘고 얌전한 분이셨다. 웬일인지 말씀도 하지 못하신다. 눈에 초점도 없으시다. 웃으며 인사를 드리고 누워 계신 침대 옆에 가서 앉았다. 손을 잡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까지 내내 교회에서 반주하셨다는 Betty 할머니, 그 영혼의 인도하심을 위해.
치매라는 병은 참으로 고약한 병이다. 기억을 잊어버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주위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감지를 하지 못한다. 혼자만의 먼-나라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구원에 대한 이슈다.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했느냐는, 그 마당에 별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현실(베드로전서 5:8)과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자고 덤벼드는(마태복음 24:24) 상황에서 어둠의 세력을 대적하거나 떨쳐 버릴 수 있는 방어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Betty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안타까움의 시간이었다. 오전에 다녀오고 나서 저녁에 다시 갔다. 곁으로 가자 아래를 자꾸 잡아당겼다. 혹시, 기저귀가 너무 젖어서?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간호사 실에 가서 “와서 봐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담당 간호사가 보조원을 부르자 그녀가 기저귀를 가지고 오면서 하는 말인즉슨, Betty 할머니는 유난히 깔끔해서 기저귀가 조금만 젖어도 견디지를 못한다고 투정스럽게 말을 한다. 나 같은 봉사자가 일부러 부탁하지 않으면 더러 무시를 당하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고단하고 힘들 것이다. 보수는 적고 감당해야 할 환자 수가 많다면. 그들도 딱했지만, 정작 딱하기로 하면 가실 날이 가까운 분들이다.
다음 날 오전에 다시 방문했다. 누워 계신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옆에 앉아 손을 붙잡아 드렸다. 가능한 짧은 문장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하며 그 연세에 좋아할 만한 찬양을 조용조용히 불러 드렸다. 한 열 곡 정도를 부르자 할머니의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교회에서 반주하시던 기억이라도 나신 걸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본인 스스로 앙상한 팔을 뻗쳐 갈퀴 같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신다. 등이 아프신 것 같아 베개를 등 뒤로 고이고 손바닥으로 등을 문질러 드리니 편안해서 하셨다. 그렇게 대화 없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이나 미국, 아니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식들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Betty 할머니는 그래도 자식들과의 사이가 좋은 듯했다. 내가 방문하는 시간에 딸들도, 드물게 아들과 며느리도 보였다. 심지어 딸들은 다른 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와서는, 엄마가 알아보든 말든, 엄마의 볼을 쓰다듬고 뽀뽀를 하곤 했다. 그 모습들이 너무 고마워서(같은 엄마의 한 사람으로), 그다음 날에 Betty 할머니의 두 딸을 위해 점심을 챙겨 가지고 갔다. 요새는 한식을 마다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안 해줘서 그렇지 만들어 주면 너무 좋아하는 추세이고, 특별히 불고기, 잡채, 김치까지도 우리보다 더 잘 먹는다. 수입도 없는 상황이라 불고기까지는 그래서 잡채와 김밥을 해다 주었다. 참, 이상도 하지? 바로 그날 밤 Betty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날 이후로 그 딸들 역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갑자기 증발이라도 된 것같이.
호스피스 환자들은 Life Center뿐 아니라 자기 집에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루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수발을 들고 계신 아내분이 잠시 외출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치고 지친 아내는 모처럼의 나갈 준비를 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여위어서 앙상한 남편분이 침대에 누워 계셨다. 아무리 늙고 아픈 환자라 할지라도 아무도 없는 빈집에 여성이 아닌 남성과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다음부터는 이런 경우를 만들지 말아 달라고 Coordinator에게 당부했다.
한번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매우 가까운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오빠의 집에 와서 아픈 엄마를 돌보고 있는 집이었다. 딸 역시 너무 지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려고 봉사자를 요청한 것이었다. 상황 설명을 듣고, 환자의 침대 곁에 가서 앉았다. 기도를 드린 후, 조용조용히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면 상태에 있는 환자의 천국 가는 길에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기도와 찬양을 계속하다 보니 3시간 정도가 흘렀고, 그 시간에 다른 주에서 달려온 아들과 손자가 도착하고 다른 방에 누워있던 딸도 일어나고 해서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왔다. 놀라운 일은, 내가 그 집을 떠난 1시간 후에 그 Janet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아래는 그 딸이 내게 보낸 카드 내용이다.
Dear Pastor Kim, on May 10th you came to my brother’s home to give me companionship and my mother comport. During the 3+ hours you were at the home, you offered my mother with praise & prayer. As I rested in another room, I could not help, but hear the beautiful voice of an Angel! A little more than an hour after you left, my mother passed away. It gives me great comfort. Knowing that in her final hours, my mother was blessed with your presences, prayer and praise. Thank you sincerely, God bless! From daughter of Janet Mills.
(김 목사님, 5월 10일, 나를 도와주고 내 어머니를 위안해 주러 내 오빠의 집에 오셨습니다. 3시간 이상을 집에서 찬양과 기도로 섬겨 주셨습니다. 나는 다른 방에서 쉬고 있으므로 도울 수는 없었지만 천사의 아름다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한 시간 정도 후에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일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알기는, 내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에 당신이 같이 있어 주심, 찬양과 기도는 내 어머니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쟈넷의 딸 드림.)
이렇게, 방문 후 곧 소천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드물게는 몇 달을 계속해서 방문을 하게 되는 분들도 계시다. 한번은, 유난히도 예쁜 할머니를 방문하고 와서 며칠을 앓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몸의 모든 기관이 쇠퇴하여서 말을 못 하기도 하고 귀 역시 잘 들리지 않는다. 귀가 어두운 그 할머니의 귀에다가 내 얼굴을 붙이고 복음을 전해야 했다, 그분의 들숨과 날숨을 함께 들이키고 뱉으며. 옆에 앉아 계신 남편 할아버지도 휠체어로 거동하시는 분. 그럴망정,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옆에 있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모든 인생은 살기 위해 태어나서, 누구도 예외 없이 이 세상을 떠난다. (히브리서 9:27) 영생 =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요한복음 17:3)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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