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오소리 발자국 수두룩한데, 여기 꼭 파크골프장 지어야 할까
[정수근 기자]
▲ 다산파크골프장 전경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파크골프장 조성공사 현장. 삽차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조경 작업을 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지난 11일 다시 찾은 다산파크골프장 조성공사 현장은 간간이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바닥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세 대의 삽차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위로 고라니와 너구리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 있었다. 이들도 변해버린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것인지 발자국이 많지는 않았다. 지난번 보았던 삵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양수장은 파크골프장 잔디 생육을 위해 설치하는 것이다. 대략 1만평이나 되는 드넓은 잔디밭 파크골프장에 물을 대야 하니, 이런 대규모 토건 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 멸종위기종 삵의 배설물.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양수장을 빠져나와 파크골프장 조성 현장으로 다시 향했다. 파크골프장 현장 바로 직전 오른쪽으로 난 오래된 길이 보였다. 그곳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갔다. 삵의 배설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색이 하얗게 바랜 오래된 배설물이다.
▲ 백여 그루는 넘어 보이는 나무들이 숲에서 제거됐고, 이렇게 나무 무덤으로 남았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까치둥지로 보이는 새 둥지가 그대로 엎어져 있다. 새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쓰러진 큰 나무에는 대형 조류의 둥지로 보이는 새 둥지가 있었는데,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저 있있다. 그 안의 새끼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무 무덤엔 뽕나무와 왕버들 등 버드나무 종류가 많았다. 지난달 12일 고령군 관계자는 "고령숲 나무를 베어내고 파크골프장을 조성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카시아 나무들만 제거했을 뿐 대부분의 나무들은 그대로 살렸다"라고 해명했으나, 그의 말과 다른 상황이 목격된 것이다.
다산면 주민 임병준씨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고령숲은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조성한 숲"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무에 이름표까지 달려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아름다운 꿈이 그대로 뽑혀버린 안타까운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나무 무덤을 뒤로 하고 파크골프장 조성공사 현장 안으로 들어가봤다. 큰 나무들은 뽑아내기 어려웠던지 그대로 살려두고 그 테두리에 조경석으로 쌓아서 그럴듯한 조경을 해놓았다. 그 현장을 뒤로 하고 걸었다. 곳곳에서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 오소리의 발자국, 깊은 산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오소리를 낙동강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발가락이 네 개고 발톱이 찍히지 않는 삵의 발자국.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고라니의 발자국은 지천으로 찍혀 있었다. 발자국만으로 그 개체수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새로운 발자국들이 나타났다. 발톱 모양이 선명한 것이 자주 보이는 발자국이 아니다. 그 발자국을 폰으로 찍어서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한상훈 소장께 보냈더니 오소리란 설명이 돌아온다.
많은 발자국을 목격했지만 오소리 발자국은 처음이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오소리까지 이곳에 살고 있단 것을 확인한 것이다. 오소리 발자국 바로 위엔 멸종위기종 삵의 발자국과 그 보행렬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발톱 자국이 없는 작고 앙증맞은 삵의 발자국. 앙증맞은 발자국과 달리 삵은 담비와 함께 이 땅의 최고 포식자다. 삵의 배설물과 발자국까지 선명하게 찍혀 이곳이 이들의 영역임을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 삵의 보행렬. 삵의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렇다면 이 일대를 서식처 삼아 이들이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한상훈 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발자국이 자주 목격된다는 것은 이 일대를 기반으로 터를 잡아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이곳에 대형 파크골프장이 조성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 이들은 이곳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고 이들의 서식처는 그대로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잦은 출몰은 이곳이 강 건너 있는 천혜의 자연습지인 달성습지의 영역이란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은 아마도 달성습지에서 건너온 개체들일 가능성이 크다. 달성습지 면적은 200만㎡에 이르지만 그 안에선 이미 많은 개체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을 것이고 더 넓은 영역을 찾아 강 건너인 이곳 다산면 낙동강 둔치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 대구시 습지보전실천계확안에 따르면 고령군 다산면 낙동강 둔치도 달성습지에 속한다. |
ⓒ 대구시 |
▲ 대구시 습지보전실천계획안에 따르면 고령군에서 짓고 있는 파크골프장도 달성습지에 속한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렇게 보면 지금 고령군은 달성습지에다 파크골프장이라는 초대형 인간 편의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야생동물 입장에선 엄청난 교란 행위이다. 한상훈 소장의 설명처럼 고령군은 야생동물들을 서식처에서 내쫓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그 안에 멸종위기종 삵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고령군은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셈이 된다.
조건부 동의를 받고 통과한 본 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에는 "공사 전 법정보호종의 서식 여부를 면밀히 재조사하고, 서식이 확인될 경우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해당종의 특성에 따른 적정 보호 대책 수립·실시 후 공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폐기물과 관계된 협의 의견에는 "공사 시 발생하는 폐기물과 운영 시 생활쓰레기는 하천변에 보관하지 않도록 하고, '폐기물관리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즉각 처리하여 환경오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함"이라고 명시돼 있는데도 고령군은 나무 무덤을 방치하고 있다.
▲ 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 공사전 법정보호종의 서식 실태를 면밀히 조사해 멸종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되면 대책을 수립 후 공사를 하란 협의 의견. |
ⓒ 환경영향평가정보시스템 |
▲ 폐기물과 생활 쓰레기를 적법하게 치우라는 협의 의견. 그러나 고령군은 이 협의 의견을 무시하고 페기물을 무단 방치했따. |
ⓒ 환경영향평가정보시스템 |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주무부서인 고령군 가족행복과 담당자는 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무 벌채와 관련해서는 현장을 보지 않아서 뭐라 대답할 수 없지만 바로 현장을 확인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멸종위기종과 관련해서는 공사 전에 용역업체를 통해 현장조사를 했지만 그때는 나오지 않았다"라며 "그래서 지금이라도 삵의 발자국 정보를 주면 그것을 가지고 용역업체 등을 상대로 확인해보겠다"라고 답변했다.
이는 환경영향평가 사후관리를 맡고 있는 대구지방환경청이 나서 철저한 지도점검이 이루어져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환경영향평가법에는 협의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환경영향평가법 제49조에 의하여 "협의기관의 장은 협의 내용의 이행을 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사중지, 원상복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방환경청이 행정조치를 취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는 가운데, 고령군은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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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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