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 무용도 새 도전에서 출발…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파"

김희윤 2023. 7. 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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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뉴욕 링컨센터 공연 '일무' 정구호 연출 인터뷰
9월 선보일 ‘그리멘토’ 무용 최초 학교폭력 주제로
무용 다음엔 영상작업 도전 " 드라마 대본 작업 중"

“무용에 처음 도전하게 된 계기요? 전통을 가장 현대적인 모습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옛 정신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대로 답습하는 데서 끝나면 의미가 없죠.”

연출가 정구호.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오는 20일 미국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오르는 전통무용 ‘일무’를 연출한 패션디자이너 정구호(58)는 낯선 무용계에 도전장을 내민 지 10년 만에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첫 연출을 맡은 '단'(2013)을 시작으로 '묵향'(2013), '향연'(2015), '산조'(2021), '일무'(2022) 등 그의 손을 거친 전통무용 작품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처음 무대에 오른 ‘일무’는 종묘제례악에서 의식에 쓰이는 전통 무용으로 수십 명의 무용수가 열을 지어 같은 춤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정 연출은 “일무를 처음 봤을 때 이만큼 모던한 전통춤은 없다고 생각했다”며 “정제된 움직임, 심플하지만 그 속엔 균형과 절제를 위한 호흡이 필요했고 그만큼 엄격한 형식에 따라 추는 춤이기에 그 이면에 새로운 창작을 할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형식과 규칙, 전통과 규정이 오히려 새로운 창작의 배경이 됐다는 그는 “처음 한국무용 작업을 시작할 땐 전통과 모던이 반반씩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또 지나치게 모던하면 관객이 어렵게 느낄 수 있어 점진적으로 그 작업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가 ‘일무’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전통은 1막 일무, 2막 춘앵전과 가인전목단을 거쳐 3막에서 신일무로 구현됐다. 이 작업에는 현대무용 안무가 김성훈(영국 아크람 칸 무용단 단원)과 김재덕(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 해외상임안무자)이 참여해 안무를 맡았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일무’ 초연 장면. [사진제공 = 세종문화회관]

디자이너였던 그가 무용 연출을 맡으면서 통상 안무가가 연출을 맡던 관행이 깨졌다. 그는 공연의 시나리오와 무대디자인, 음악과 조명을 연출하고 안무는 안무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무용을 안무로만 보면 1차원적인데 그 동작 너머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가면서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는 정 연출은 “안무와 전체 공간이 하나로 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최고의 이미지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일무’의 경우 전통방식을 따르면 정사각형 무대에서 진행돼야 하지만, 그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직사각형 무대가 오히려 더 한국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대극장의 규모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했었는데) 오히려 직사각형 무대에서 자로 잰 듯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열을 맞춰 추는 안무를 더 한국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며 “큰 무대에선 더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던 만큼 뉴욕에서도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그가 선보인 한국무용은 국내에서도 젊은 관객을 공연장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 폭의 수묵화” 같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그는 “대신 늘 안무가를 비롯한 스태프의 의견을 경청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품의 메시지와 철학을 완성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출가 정구호.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전통무용에 집중된 그의 작업은 올해 새로운 장르로 이어질 예정이다. 오는 9월 세종문화회관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 무대에 오르는 현대무용 ‘그리멘토’는 무용 작품으로는 최초로 학교폭력을 주제로 다룬다. 정 연출은 “학교폭력에 대한 뉴스와 이를 다룬 OTT 작품들을 보면서 무용을 통해 직접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며 “미디어를 통한 계몽적 메시지가 다소 식상하게 다가갈 수도 있지만, 나는 학교 폭력만큼은 문제가 해결되고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수백 번 강조하고 표현해도 부족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교실을 무대로 한 이야기고, 학생이 주인공인 만큼 소품도 등장하기 때문에 안무작업에 더 집중하는 한편 춤의 움직임에 맞춘 영상작업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일무'에 이어 김성훈 안무가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30대에 자신의 패션브랜드로 큰 성공을 거두고 이후 리움·호암 미술관 리뉴얼 총괄,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 등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그는 무용에 이어 최근 드라마 대본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하루 다섯 시간, 20쪽 분량의 글을 쓰고 있는데 글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연상 작업이 익숙해서인지 일단 쓰는 데 집중하고 있고 써놓은 시놉시스는 다섯 편 정도 된다”는 그는 “패션도, 무용도 모두 새로운 도전에서 출발했고, 그 창작의 열망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영상도 그렇지만 그 결과를 넘어서 나는 죽을 때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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