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2 11:42최종 업데이트 23.07.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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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6월 23일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등 활동가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특수활동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자료를 수령하고 있다. ⓒ 이희훈


지난 6월 23일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공개되었다. 대법원이 3개 시민단체와 <뉴스타파>가 공동으로 신청한 행정소송에서 특활비를 공개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보낸 서류를 분석한 <뉴스타파>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년 5개월간 총 292억 원이 전액 현금으로 일부 검사들에게 지급되었다. 그러나 한 장짜리 영수증이나 현금입금증, 이체확인증 외에 다른 증빙서류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서류가 지급 금액과 지급일자를 빼고는 모두 새까맣게 칠해지거나 복사가 흐릿하여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디에 쓰려고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심지어 수억 원의 세금이 검찰 누군가에게 지급되었지만 용처를 알 수 있는 카드 사용은 단 한 건도 없었고, 74억 원의 현금은 영수증조차 없었다.

이처럼 엄청난 세금이 현금으로 지출되었지만 법무부는 검찰의 '특수활동비 내부 지침' 공개를 거부했다. 292억 원의 세금이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받은 사람도, 쓴 장소도, 쓴 목적도 알 수 없이 그저 지급날짜와 지급 금액만 알려주는 숫자만 무수히 적힌 6805장만 공개된 것이다. 검찰은 모두 수사상의 기밀이라고 말하지만 그 기밀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민간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비리를 단죄하라고 수사를 지시했다. 대통령은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검찰이 아닌 민간단체에 한 말이다.

양심이란 '집단적인 상식' 의미
 

6월 29일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열린 '검찰 특수활동비 등 자료 증발 및 정보은폐에 대한 입장표명' 기자회견에서 카드사용 시간과 상호 등의 정보가 가려진 특수활동비 지출 증빙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뉴스타파가 공동 개최했다. ⓒ 연합뉴스

   
19세기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월든>의 저자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무려 6년 동안 인두세를 내지 않았다. 노예제에 반대했던 소로는 사람을 사고파는 국가에는 도저히 세금을 낼 수 없다며 시민의 주요 의무인 납세를 거부했다.

소로는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소로의 감옥살이는 숙모가 세금을 대납해주는 바람에 하루 만에 끝나지만, 이때의 경험으로 소로는 정부에 대한 시민의 의무와 정의, 그리고 법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간디와 톨스토이, 마틴 루터 킹에게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유명한 정치 에세이 '시민 불복종'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원제가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소로는 비록 시민들이 선거로 뽑은 합법적인 정부라 할지라도 그 정부가 시민의 양심에 반하는 통치를 하는 경우, 시민에게는 그런 정부에 불복종하고 저항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법보다 양심을 우위에 놓았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인 정치사상이었다. 법의 정의가 아닌 양심의 정의를 따르기 위해, 나아가 시민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소로는 불의에 저항하고 기꺼이 감옥행을 택하자고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양심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영어로 풀어본 양심은 '함께 안다(con-science)'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양심은 사람들이 모두 같이 알고 있는 것이기에 양심이란 개인의 도덕심을 넘어 집단적인 상식을 뜻한다. 세금을 내는 입장에서 상식은 우리가 내는 세금이 올바른 곳에 공정하게 쓰이고 그 집행과정은 투명하게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은 소위 잘나가는 권력기관의 눈먼 특별활동비를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양심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 곳곳에 정부가 대신 나서서 우리의 양심이 거리끼지 않도록 일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좀 더 공정한 사회가 되어 그 누구도 살면서 마지막 희망까지 놓아버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법조차 무시하는 검찰공화국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시민공화국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권보다는 법이, 법보다는 양심이 우리 사회의 원칙이 될 때 비로소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혜영 / 인하대 영문과 교수 ⓒ 박혜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박혜영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낭만주의 영시를 전공했습니다. 생태정의, 기후위기, 탈성장 전환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으며, 생태 문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룬 저서로 <느낌의 0도: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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