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手談)]인생의 반집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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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수담(手談)은 말이 없이도 뜻이 통한다는 의미로 바둑 또는 바둑을 두는 일을 의미합니다.
바둑을 둘러싼 인물과 사연을 토대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의 연재 칼럼입니다.
작은 차이로 결과가 뒤바뀌는 상황은 바둑에서만 경험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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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수담(手談)은 말이 없이도 뜻이 통한다는 의미로 바둑 또는 바둑을 두는 일을 의미합니다. 바둑을 둘러싼 인물과 사연을 토대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의 연재 칼럼입니다.
반집 승부에 강한 대표적인 바둑 기사를 꼽으라면 이창호 9단을 빼놓을 수 없다. 1995년 이창호는 73승 15패로 승률 0.830을 기록했다. 당시 반집 승은 10승에 달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를 확인하려면 다른 기사 성적표와 비교하면 된다.
인공지능(AI) 알파고에 승리한 것으로 유명한 이세돌 9단은 2010년 75승 17패로 승률 0.815를 기록했다. 당시 반집 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세계 최고 기력의 바둑기사라고 모두 반집 승부에 강한 것은 아니다. 반집 승부는 경기 막판까지 피가 마른다. 이창호는 유독 그런 승부에 강했다.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결과다.
바둑에서 승리 여부는 흑과 백의 집을 헤아려서 결정한다. 호선(互先)의 경우 흑의 집은 6집 반을 공제한다. 첫수를 먼저 두는 흑의 유리함을 상쇄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흑이 60집을 얻고, 백이 54집을 얻는다면 누가 승리할까. 흑은 6집 반 공제에 따라 53.5집이 된다. 결과는 백의 반집 승이다. 승리한 쪽은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을, 패배한 쪽은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는 반집 승부.
작은 차이로 결과가 뒤바뀌는 상황은 바둑에서만 경험하는 일일까. 누구나 인생의 반집 승부를 경험한다. 태어나서 자라고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인생은 승부의 연속이다. 수많은 승부 가운데 반집 승부도 있다.
때로는 반집 승부로 결과가 갈리게 된 것을 모른 채 넘어간다. 결과의 내막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아깝게 미끄러졌음을 깨닫는다면 그 고통이 어떻겠는가. 하지만 반집 승부로 인한 결과임을 알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대학 입시에서 자기가 지망한 곳의 합격선을 확인할 때, 주요 자격시험에서 본인이 취득한 점수와 합격점의 차이를 확인할 때가 대표적이다. 단 한 문제만 더 맞았어도 합격점에 이른다면 얼마나 아깝게 느껴지겠는가. 본인이 지금껏 들였던 노력과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장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실수를 줄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란 후회가 밀려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깝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앞으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될까. 그렇게 되기 어려운 게 인간의 심리다. "이 정도면 됐지", "할 만큼 했어"….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많은 명분이 귓가에 속삭인다. 충분히 노력했기에, 결과에 운명을 맡기자는 속삭임.
그런 유혹에 초연할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정신력의 빈틈을 노린다. 방심을 막아섰던 마음가짐의 안전판에 조금씩 균열이 가해지고, 혹독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린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임시완(장그래 역)의 대사는 인생의 교훈으로 곱씹어 볼 만하다.
"정말 안타깝고 아쉽게도 반집으로 바둑을 지게 되면 이 많은 수가 다 뭐였나 싶었다. 작은 사활 다툼에서 이겨봤자 기어이 패싸움을 이겨봤자 결국 지게 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하지만 반집으로라도 이겨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이 반집의 승부가 가능하게 상대의 집에 대항해 살아준 돌들이 고맙고 조금씩이라도 삭감에 들어간 한 수 한 수가 귀하기만 하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집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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