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사라진 애인, 경찰은 나를 의심한다

김성호 2023. 7. 12. 11: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509] 제27회 BIFAN <어브로드>

[김성호 기자]

 
▲ 어브로드 포스터
ⓒ BIFAN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커플이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서 어려움에 처하는 일 말이다. 시작은 어느 공항이다. 미국 미네소타 공항 화장실 변기 칸에서 사내 태민(장성범 분)은 한참이나 구토를 한 듯 보인다.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잔뜩 지친 모양새로 화장실에서 겨우 나온 그를 여자친구 민지(임영주 분)가 맞는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사내가 고생을 한 이유가 드러난다. 다름 아닌 비행공포증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내내 고생을 한 그에게는 이번 여행이 꽤나 고역인 모양인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항을 빠져나와 예약한 자동차를 찾으려 하는데 또 문제가 생겨난다. 담당자가 협조를 않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는 여자친구가 앞에 나서 이유를 물으니, 이미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답이 돌아온다. 약정엔 마지막 비행편까지 서비스를 한다고 되어 있지만 비행기가 도착하고 한 시간이나 지났기에 차를 빌려줄 수 없다는 얘기다.

더는 따져볼 수 없는 둘은 결국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한다. 어플을 통해 카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행히 차가 잡히고 둘은 기사와 먼저 탄 다른 여자 한 명과 함께 빗길을 뚫고 숙소를 향해 간다.
 
▲ 어브로드 스틸컷
ⓒ BIFAN
 
여행지에서 갑자기 애인이 사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서 둘은 한 차례 가볍게 충돌한다. 숙소까지 오는 내내 투덜대기만 하던 태민을 민지가 더는 참아내지 못한 것이다. 불평 좀 그만하라는 민지의 말을 듣고서야 태민은 제가 한 잘못을 알아차린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멀리까지 떠나온 여행길, 사소한 일로 다퉈서야 여행 전체를 망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행은 일순간 재앙으로 변한다. 샤워를 하던 민지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샤워기는 틀어진 채로 남겨져 태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상함을 느낀 태민이 집 주변을 돌아보아도 민지의 행적을 찾을 길 없다. 태민은 민지가 납치된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태민의 신고로 찾아온 보안관은 마치 태민이 현행범인 것처럼 거칠게 다룬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태민으로선 당혹스러울 뿐이다. 이대로는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겠단 걱정이 들 무렵 태민 앞에 빛이 한 줄기 새어들어온다.

연착된 비행기, 문 닫은 렌터카 업체,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 사라진 여자친구, 저를 범인으로 모는 형사, 그리고 이어지는 도주극과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까지 일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영화는 말조차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 당해내기 어려운 재난이 거짓말처럼 밀려드는 상황을 넘어 영화가 마침내 제 안에 든 진실을 꺼내보일 때 관객들은 이 영화가 가진 가능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 어브로드 스틸컷
ⓒ BIFAN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움을 도모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미국에서 마주한 위기를 그린 이 영화는 한국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이탈리아 연출자 조반니 푸무의 작품이다. 2014년엔 한국 대기업의 광고프로젝트에 참여했고 2016년에 찍은 단편 <굿 뉴스>에선 서울 한 모텔에 든 10대 커플의 이야기로 제법 관심을 모았던 그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후에도 계속돼 지난해 제작한 <어브로드>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탈리아 연출자가 미국에서 찍어낸 한국 관광객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기존 한국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타자의 시선에서 더욱 날카롭게 드러나는 한국인의 모습이 신선하고, 그로부터 강조되는 정서 또한 더욱 선명하게 엿보인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하게 유지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장치는 영화를 흥미롭게 감상하도록 이끄는 장치다. 꾸준히 다져져온 조반니 푸무 감독의 영화를 이제부터는 주목해 볼 만 하지 않은가 하는 기대가 절로 들 정도다.

기존 한국영화에서 익숙하지 않은 배우를 선택한 점도 여러모로 신선하다. 20대 젊은 배우인 장성범과 임영주는 장편영화를 전면에서 이끌어가는 데 부족하지 않은 안정된 연기를 펼친다.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은 배우들을 발견하는 건 정식 개봉에 앞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영화제의 커다란 재미다.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움을 도모하는 <어브로드>와 같은 작품이 있어 영화제가 풍요로워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른다.

한편 영화는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과 배우상(장성범)을 각각 수상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