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악플에 자식 잃고 기업 망하는데…언제까지 '선처'만
일반인도 무차별적으로 공격…우울증 극단적 선택 등 폐해 심각
사회적 비용 年 35조원 이르는데…가해자 대부분 벌금형 그쳐
인터넷 포털 및 게시판 등에 악의적 비방이나 비하 내용이 담긴 악성 댓글, 이른바 ‘악플’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개인을 향한 악플은 피해자를 우울증 또는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간다. 사회적 신뢰가 중요한 기업의 경우 힘들게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거나 기업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경우도 나타난다.
반면 악플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해 익명성 뒤에 숨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드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만 앞세울 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할 경우 강력한 처벌로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댓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국민은 10명 중 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성 댓글로 인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변호사 선임비 및 의료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국내에서만 연 35조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만큼 악성 댓글의 폐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악플 폭탄 맞은 기업…이미지 하락, 영업 차질에 존폐 기로까지
악플을 올리는 자는 근거 없는 자의적 또는 악의적 잣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극단적 혐오를 조장한다.
악플로 인해 멀쩡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악덕 기업으로 낙인찍혀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영업 차질이나 주가 폭락으로 존폐 기로에 놓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2021년 한 직장인 SNS 사이트에 올라온 비방글로 큰 고충을 겪은 A기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스로를 이 회사 직원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자신의 상사들이 ‘굉장한 꼰대’로 “마치 조현병 말기 환자들 같다”며 비난했다. 내용 중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CEO의 여직원 성희롱 발언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기업은 작성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강력 반발했다. 조사 결과 글을 올린 직원과 CEO의 사무공간은 전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었으며,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미 회사가 입은 피해는 되돌릴 수 없었다.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리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2019년 3월, 인터넷 육아 정보 카페 등에 “B유업 우유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 “B유업 목장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 등 특정 기업을 비방하는 댓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피해를 입은 B유업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쟁 업체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50개의 아이디로 조직적 비방 댓글 작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밖에 모 주류사가 경쟁사 소주에서 경유가 검출됐다는 의혹 글을 퍼나르거나, 온라인 입시교육업체가 댓글 전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악플 20만여 건으로 경쟁 업체와 소속 강사를 비난한 사실이 적발돼 법원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 한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상에 퍼지게 되면 영업과 채용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면서 “사실무근임이 밝혀져도 피해를 회복할 길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개인 향한 무분별한 비방…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악플의 공격 대상은 기업인이나 공인은 물론, 일반인도 가리지 않는다. ‘참교육’이라며 신상 털기를 하거나, 한 번 악성 댓글이 달리고 나면 경쟁적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댓글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10대 생존자가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 있었다. 숨진 참사 생존자의 가족은 “숨진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며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비난 댓글을 보고 무너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참사 직후 인터넷 포털과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놀러가서 죽은 것인데 애도하지 않겠다”, “죽어도 싸다” 등의 비방성 댓글은 물론, 이번 참사가 마약과 연관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담긴 악성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올라왔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역시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희생자의 삼촌은 “한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등의 댓글을 보며 “같이 숨 쉬고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에 따르면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35조3480억원에 이른다.
악성 댓글 대응을 위한 변호사 선임과 손해배상비용 등으로 3조5000억원 이상이 쓰였고, 피해자의 병원 진료 및 치료 비용으로 550억원이 지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넷 뉴스 이용자 중 약 1%에 불과한 댓글 작성자들로 인해 지난해 국내 GDP의 약 1.6%에 달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악성 댓글 적발돼도 대부분 '벌금'내면 끝…"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도입해야"
현행법상 악성 댓글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고, 만일 댓글 내용이 허위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법 적용에서는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 일회성 악성 댓글로 처벌받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댓글이 허위라 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없었다거나 공익 목적이었다고 주장해 처벌을 피해가기도 한다.
21대 국회 들어 악성 댓글 작성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사이버 혐오‧차별 정보 유통죄 신설 등 총 9건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어떠한 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사처벌 강화 주장이 표현의 자유 약화 우려에 번번이 가로막힌 탓이다.
이처럼 형사 처벌에 한계가 있는 만큼 민사적 해결책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 역시 유사한 규제를 이미 시행 중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비방성 악성 댓글은 익명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욕설과 모욕을 쏟아내 사회적 소모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행복추구권 등 다른 국민들의 헌법상 권리 역시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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