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이 뭐라고, 내 코가 석잔데!
[이정희 기자]
EBS는 지난 6월 14일부터 10부작으로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을 방영하고 있다. 초저출생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 세대와 지역, 데이터와 심리를 넘나들며 이와 관련된 우리 삶의 전반적 조건을 탐색해보자는 취지에서다.
▲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3부<2030 심리 보고 시대 현상소>. |
ⓒ EBS |
침대 사이즈가 달라졌다고?
그 중 1인가구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대형 침대'. 2년 전 한 비혼 커뮤니티에서 침대 사이즈 변화 추이 살펴봤더니, 대형 침대 수요의 지속적 증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출처: sometrend, 2016.01.01~2019.06.30). 대형침대가 반영하는 건 혼자 사는 삶의 정착이다. 예전에는 혼자 사는 게 결혼을 위한 잠정적 단계였다면, 이제 혼자서도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대형 침대를 구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빅데이터를 통한 트렌드 분석을 통해 젊은이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관심사를 해석하면, '주관의 객관화', 즉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사고를 분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의 안정화로 대변되는 큰 침대처럼 말이다.
젊은 1인 가구가 서울 56.5%, 전국 46.3%에 육박하고 있다(출처: 통계청 인구총조사). 아껴도 집을 살 수 없는 2030세대는 취향을 반영한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3부<2030 심리 보고 시대 현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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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파고를 잘 넘어서고 싶다는 취지에서 자신을 인생 서퍼라고 소개하는 하소정씨는 마케팅 기획자, 이모티콘 기획자, 작가 등 이른바 'N잡러'다. 평생 직장을 기대할 수 없는 세대, 하고 싶은 일에 영역을 국한하고 싶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는 비혼주의이다.
남친도 있다. 하지만, 삶에 선택지가 많았으면 좋겠고, 내 삶을 온전히 내 선택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에게 결혼과 출산은 의도치 않은 변수가 너무 많은 부담스러운 선택지이다.
▲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3부<2030 심리 보고 시대 현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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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개념도 달라진다. 나이대 별로 모범답안처럼 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던 우리 사회에서 애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얻은 것'들이 아니라, 일상적인 행복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먹다', '맛있다'가 부각되는 반면, '사랑' '함께', 만나다' 등의 키워드는 하락하는 추세다. 심지어 '결혼'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즉 결혼이나 출산이 더는 행복의 조건이 되지 않는 것이다(출처: sometrend, 2018.01.01~2022.12.31).
어른들 세대는 그런 2030을 가리켜 "이기적인 세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자기들은 "이타적이지 않은 거라고'". 어른들이 나보다 가족, 주변을 챙기며 살아왔다면 자신들에게는 나를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자신들도 저출생이 걱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처럼 시국을 걱정해서 그런 건 아니란다. 국민연금을 못 받으면 어떻게 하지, 노년기에는 누가 돌봐주나 등 스스로가 걱정되기 때문이란다.
1997 IMF, 2008 글로벌 금융 위기, 세월호, 팬데믹, 저성장기를 겪은 세대는 그래서 삶의 효율을 추구한다. 결혼도·연애도 효율적으로 하려다 보니 MBTI, 데이팅앱,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에 거부감이 없다. 이렇게 효율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효율적이지 않은 힘든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3부<2030 심리 보고 시대 현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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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이나 출산이 효율적이지 않게 되었을까. 다양한 연령과 직업, 배경들을 가진 2030 세대 10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공의 중요 요인을 묻자, 열 명중 단 한 명만 노력이라고 답했다. 반면, '우리 사회가 불평등한가'라는 질문에는 10명 전부가 '매우 그렇거나',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그 격차를 벌이는 요인은 뭘까'라는 물음에 9명이 입을 모아 말한다. '부모의 재력'이라고.
중국과 일본의 경우, 학벌을 좌우하는 게 재능이라고 답하는 것과 상반된 결과다. 즉, 2030 세대는 문화적-인적 자본은 많은 가지고 있지만, 기회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다. 노력하면 행운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생 이유진씨는 영화 감독이 되기 위해 서울로 진학했다. 권리금 500만 원에 45만 원짜리 자취방도 얻었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고달프다. 전단지 돌리기, 과외, 학습지 교사 등 알바를 가리지 않고 해야 한다. 여어가 대단한 스펙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의 처지에서 교환학생을 꿈꾸는 것도 사치다. 젊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유진씨는 결혼을 약속한 친구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유진씨에게 아이를 낳는다는 건, 기회를 얻거나, 커리어에 걸림돌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대신 2030 세대는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와 '갓생'(신을 의미하는 'GOD'와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세상을 아득바득 살아가느냐',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의 차이일뿐 혹독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는 용어일지도 모른다. 삶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니, 비효율적인 결혼이나, 출산은 자꾸 선택지에게 제외된다. 그 결과가,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다.
오찬호 사회학자는 젊은 세대들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시그널이 바로 저출생이라고 정의한다. '비혼이 문제야' 하는 식의 기성 세대 사고로는 더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박현영 V빅데이터 연구소 소장도 덧붙인다. 작금의 저출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가 잘못되었다고. 저출생을 어떻게 막지 하는 식의 단편적이고 고답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이다.
'왜 그러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변해야 저출생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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