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법원 "트랜스젠더의 여성 화장실 사용 제한은 위법"
재판관 전원일치…사기업·공공기관 대응 고민
일본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가 직장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직원의 여자화장실 사용을 제한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성소수자의 직장 내 근무환경에 대한 소송에서 일본 최고재판소가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본 언론은 앞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사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의 처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일 NHK에 따르면 전날 일본 최고재판소는 경제산업성(경산성)에 근무하고 있는 50대 트렌스젠더 직원이 경산성의 여자화장실 사용제한 조치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직원은 경산성 입사 후인 1999년 신체상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성 동일성 장애' 진단을 받고 주기적으로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2010년부터는 경산성에 이를 밝히고 여성 복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원고는 건강상의 문제로 성전환 수술을 받지 못해, 주민등록상에는 성별 정정을 받지 않은 남성으로 돼 있다.
이 직원은 여자화장실을 쓰게 해 줄 것을 경산성에 요구했으나, 경산성은 '다른 여직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무하는 곳에서 2층 이상 떨어진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원고는 인사혁신처에 해당하는 인사원에 경산성의 제한을 폐지해 달라는 취지의 행정 조치를 요구했으나 2015년 반려당했다. 이에 국가 대응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최고재판소 심리에서는 '경산성의 화장실 사용 제한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인사원 판정의 위법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마자키 유키히코 재판장은 "직원이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남자 화장실을 쓰거나 일하는 곳에서 떨어진 여자 화장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일상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원이 현재 여성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다른 직원과 사내 갈등을 빚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인사원의 판단은 다른 직원에 대한 배려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오히려 직원의 불이익을 경시한 것"이라며 타당성이 결여된 조치라며 인사원의 판정을 취소했다.
참여한 재판관 5명의 의견도 이같은 판단에 전원 일치했다. 이는 인사원의 판단이 위법이 아니라는 2심 판단을 아예 뒤집은 것이다.
당시 1심에서 도쿄지방법원은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에 맞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중요한 법적 이익으로 보호돼야 한다"며 인사원 판정을 취소하고 국가에 130만엔가량의 배상을 명령했다.
그러나 2심에서 도쿄고등법원은 "경산성은 다른 직원의 불안감을 고려해 모든 직원에게 적절한 직장환경을 만든 책임이 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어 논란이 됐다. 이번 최고 재판소의 판결로 인사원의 판단은 취소됐으며, 경산성도 대응을 재검토해야 한다.
인사원은 판결 이후 "판결의 내용을 충분히 논의한 뒤 적절히 대응하고 싶다"고 밝혔다. 경산성도 "관계부처의 협의 하에 직원의 다양성을 존중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오후 기자회견에서 "관계부처에서 적절히 대응하겠다"면서도 "국가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은 최고 재판소의 판결이 앞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공공 기관과 민간 기업의 처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NHK는 가나자와 대학교와 민간 기업의 여론조사를 인용해 "트랜스젠더가 아닌 5만6000여명에게 지난해 11월 성중립 화장실 사용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거부감이 없다'는 응답이 직장 화장실의 경우 71.5%, 공중화장실의 경우 66.9%였다"며 "이는 '거부감이 있다'는 응답을 크게 웃돈 수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간 기업에서 시작되는 변화를 함께 보도했다. 도쿄 주오구에 지난해 문을 연 오피스 빌딩에는 '레스트룸 플러스'라는 성중립 화장실이 생겼다. 이곳은 '젠더리스 화장실' 등이라는 명칭을 붙일 경우 성소수자가 오히려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 오피스 빌딩에는 이 밖에도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화장실도 각 층에 배치했는데, 빌딩 관리를 하는 부동산 개발 업체 관계자는 "다양성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NHK에 전했다.
NHK는 "최고재판소가 성소수자의 직장환경에 관한 소송 판결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성소수자가 일하기 좋은 환경 정비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며 "경산성 이외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도 이를 의식한 대응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원고는 승소 뒤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에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판결이지만, 차별이 남아 있는 다른 인권 문제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화장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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