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산에서 전해내려오는 애틋한 이야기

이완우 2023. 7. 12.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실 오수면 노산 술바위와 응봉 흔들바위 탐방 기행

[이완우 기자]

 주천 마을 귀노재
ⓒ 이완우
임실군 오수면의 북쪽을 병풍처럼 두른 산줄기에 노산(魯山, 540m)과 응봉(鷹峰, 608m) 두 봉우리가 이웃하여 있다. 산수국이 산뜻하게 피는 계절이다. 10일 오전에 노산 기슭 주천(酒泉) 마을의 술바위와 응봉(鷹峰) 아래 한암 마을의 흔들바위를 찾아서 향토 지역에 전해오는 역사와 설화의 현장을 답사했다.
이 지역에서 노산은 이름이 노산(魯山)인 산이면서 단종의 군호인 노산(魯山)으로 중의적 의미이다. 이 노산은 낮은 산이지만 세조(世祖, 1417~1468)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운의 단종(端宗, 1441~1457)을 상징하는 산이다.
 
 노산 기슭 아래 술바위
ⓒ 이완우
단종의 슬픈 역사가 흐르는 강원도 영월의 유적지와 충절의 대명사가 된 사육신과 생육신의 역사는 세월이 지났어도 뚜렷하다. 이 지역에는 단종의 군호와 같은 노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으며 뿌리 깊은 여러 가문에서 노산을 단종 임금을 섬기듯이 오백 년 이상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 왔다.
이 지역의 여러 가문에서는 입향조(入鄕祖)가 이 지역의 어떤 마을에 정착할 때 노산에서의 방향과 거리를 재실(齋室)의 편액이나 여러 문집 등에 기록했고, 세상의 명리보다 의리에 가치를 두고 단종 임금을 의미하는 노산을 바라보고 추모하며 살았다고 한다.
 
 술바위의 술샘 구멍
ⓒ 이완우
곽도(郭都, 1390~1485)는 호가 노재(魯齋)이다. 그는 1455년에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의분을 못 참아 벼슬을 버렸고,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치악산에 은거했다.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자 임실(당시는 남원부)의 노산 아래 귀노재(歸魯齋)에 칩거하고 노산(魯山)을 향하여 충심을 잊지 않았다.
이수(李洙, 1519~1582)는 호가 술병에 숨는다는 뜻의 호은(壺隱)이고 아호는 주천(酒泉)이다. 그는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무오사화에 연루될 것을 염려하여 이곳 호산재(壺山齋)에 은거하였다. 마을 앞 냇가 옆에 작은 동산인 독산(獨山)이 있는데 이곳에 술바위라는 반석이 있다. 이 바위에 사발 같은 구멍이 파여 있어서 주천리(酒泉里)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다. 이 술바위에 앉아서도 노산이 잘 보인다.
 
 주천 마을 독산 소나무
ⓒ 이완우
이수는 이곳 술바위 구멍에 술을 채워 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개울물에 낚시하면서 어지러운 세상을 잊었다고 한다. 이수는 왕실의 종친으로 단종 임금의 손자뻘이므로 노산을 향하여 술잔을 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수는 자손들에게 효와 충을 강조하고, 과거에 응시하지 말고 공명(功名)을 멀리하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노산과 이웃하고 있는 응봉의 아래 기슭에 있는 한암 마을 깐닥바우골의 오수암(獒樹庵)을 찾아갔다. 오수암으로 가는 오르막 산길의 소나무 숲을 지나니 산수국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오수암 암자 옆에 높이 4m, 폭 4m, 너비 1.5m의 크기의 흔들바위가 있는데 애틋한 설화가 전해 온다.
 
 응봉 흔들바위 정면
ⓒ 이완우
매봉 아랫마을에 오누이가 살았다. 혼기가 찬 누이동생을 두고 오빠는 전쟁에 나갔고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누이동생은 날마다 매봉에 올라가 큰 바위 옆에 서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었다. 오빠가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와 누이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누이가 서서 기다렸던 큰 바위를 내리쳤다.
큰 바위에 몇 갈래 금이 갔고 이후로 바람만 불어도 저절로 흔들거렸다고 한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이 흔들바위에 정성을 들이면 영험하여 소원바위라고 부르며 요즘도 이 흔들바위를 가끔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오수암의 흔들바위는 풍화되어 남겨진 바위에 수직 절리와 수평 절리가 선명하게 직교하는 토르(Tor) 지형을 보여준다.
 
 응봉 흔들바위 측면
ⓒ 이완우
한암 마을의 흔들바위는 백성들의 애달픈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주천 마을의 술바위는 충절의 대쪽 같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노산과 응봉 두 봉우리가 품은 산줄기의 푸른 숲에서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고려 속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가락이 울려오는 듯하다.
노산을 주산으로 하는 임실군 삼계면은 박사가 200명 넘게 배출되어 박사골로 손꼽힌다. 오수면과 지사면은 의로운 오수 개 설화가 전승되고, 지사면에는 서원이 6개 있는데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서원이 제일 많은 곳이라고 한다.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산봉우리 노산을 단종 임금으로 섬기고 기억하는 이러한 정신적 토양에서 뿌리 내렸을 것이다.
 
 응봉 흔들바위 아래 수국
ⓒ 이완우
술바위 앞 개울은 좁아지고 술바위 앞까지 논이 경작지로 다가왔다. 술바위 가는 길은 풀숲이 무성하고 가시덩굴이 뒤덮어 헤치고 통행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술바위가 자리한 독산에 한 그루 소나무는 김정희의 세한도 풍경을 이룬다. 술바위 앞의 개울 물소리를 노산별곡(魯山別曲)이라고 여기며 들어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노산에 살어리랏다
명리랑 출세랑 버리고 노산에 살어리랏다
 
 임실 노산과 응봉 전경
ⓒ 이완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